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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샘을 아는 사슴 Aug 13. 2023

비팝니다(2)

사랑하는 것을 계속 사랑하는 것은 쉽지 않다. 미워하는 것을 계속 미워하는 것 역시 쉽지 않다. 그 둘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이 글로 적지 않으면 너무 당연해 모를 만큼 당연하다.


왜 우리 마음은 변할까. 왜 나는 너를 미워하고 사랑할까. 이러다 사랑하는 것과 미워하는 것을 동일시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 지점까지 느꼈다면 당신과 나는 점점 세상을 살아가기가 어려워진다.

가는 것이 오는 것이 되고, 뛰는 것이 서는 것이 되고, 끝내 사는 것이 죽는 것이 된다.


날씨는 사람들에게 자주 사랑받고 자주 미움받았다. 그럼에도 휘둘리지 않아 왔다. 우리는 그가 우리의 말을 들어주면 극진히 감사하는 척했고, 그렇지 않으면 쉽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가장 쉽게 시작점으로 내세웠던 것.


오시는 길 더우셨죠 / 어제 첫눈 보셨어요? / 가을 하늘이네요 / 다음 주부터 장마래요


그는 우리의 전 생보다 후 생에 더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너무 거대해서 아이스브레이킹 소재 따위로는 감히 꺼낼 수도 없게. 우리는 아주 긴 역사 상 그의 눈치를 가장 많이 봤던 종족들로 기록될지 모른다.


장마가 이어지고 폭염이 이어지면 당신은 덜컥 짜증이 난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을 겪는 데에는 나도 분노가 치민다. 그 분노와 짜증을 내기는 아주 쉽다. 나면 낸다.


당신은 해결책이 딱히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서로의 불쾌한 숨을 겨우 피하며 자기만의 짜증을 내고 삭히는데 익숙해진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그럴수록 짜증의 역치는 낮아진다. 쉽게 열받고 쉽게 짜증 내고 쉽게 무기력해진다. 나 역시. 그러다가 나는 문득 두려워진다.


아무도 모르게 팔 안 쪽에, 나만 아는 서늘함이 쓱 지나간다. 지금은 짜증이라면 그다음 해는? 그리고 그다음 해는? 답을 듣지 못한 채 질문이 끝없이 이어진다. 짜증 불쾌 습함 찝찝

앞으로는 날씨에 대한 부정적인 언어가 늘어나겠구나.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도망가고 싶다. 이 행성을 탈출하고 싶다. 나이를 먹고 노쇠한 몸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만큼 두려운 건 날씨를 두려워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토록 사랑하는, 나의 낭만의 전유물이던 비가 미워진다.

이렇게나 애정을 쏟았는데 비는 내 애정을 받아주지 않았다. 사실 처음부터 나만 아는 외사랑이었다. 내가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비는 미움이라고 받고 있었을지 모른다.

내가 사랑하던 시간보다 훨씬 더 길고 긴 시간, 비는 꾸역꾸역 미움을 먹어왔다. 먹고 먹고 또 먹었다.


그 사이, 그와 함께 우리의 언어가 변한다. ‘장마’에서 ‘우기’로.

‘지구 온난화‘에서 ’ 지구 열대화‘로.


당신이 아닌 누군가는 말한다. 고작 말 좀 바뀌는 게 뭐 대수라고. 그냥 그렇게 부르면 되는 거잖아. 말하는데 돈 들어? 힘들어? 당신과 나는 고개를 젓는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틀리는 이를 멍청하다는 듯이 바라보는 자였다.


언어는 생각을 바꾸고, 생각은 생활을 바꾸고, 생활은 개인을 바꾸고, 개인은 세계를 바꾼다. 아픈 역사나 찬란한 역사나 이 단계를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나의 애인을 전 애인이라 불렀다가 끝내 남이라고 부르는 과정은 달갑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하게 착잡하고 더 심하게 괴롭다.

한 단계의 같은 종과 맺은 관계의 변화에 비해 범지구적 관계의 변화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다. 나는 그것을 견딜 자신이 없는 것이다.




그가 변하지 않아도 세상은 충분히 변해간다. 대부분의 변화는 빠르고 쉽고 경제적인 방향으로 이루어지지만, 그것이 옳은 것과 반드시 같은 선상에 놓이는 게 아니라는 걸 우리는 안다. 우리는 사실 아주 잘 안다. 기술과 과학만큼은 아니더라도 사유하는 능력도 약간씩은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혹 아니더라도 그렇게 믿고 싶다.


그가 완전히 변해버리기 전에 내가 먼저 변해버리기로 한다.

모든 일에는 총량이 있을 거라고 미신적으로 믿으면서. 내가 변하면 그는 변하지 못하겠지라고 꾀를 쓰면서.

내가 가진 유일한 얇은 사유를 놓지 않은 채로, 기술과 과학보다는 현저히 느리고 어렵고 영향력 없게 말이다. 이와 같은 변화가 얼마간 지속될지 알 수 없다. 변화의 크기보다 유무를 우선 생각하기로 한다.


누군가 나의 변화를 보고 함께 변하면 좋겠다고 차마 말은 하지 못하고 글이나 쓰고 생각만 좀 한다.

나쁘게 변할 때, 마음이 변했다고 하는 것 말고. 보이진 않지만 확실히 느껴지는 눈부신 변화에, 변했구나! 하는 감상을 얻고 싶어 진다.


물론 당신은 어느 쪽이든 고개를 끄덕이고 눈길을 거둘 수 있다. 나는 당신이 나와 같은 지점에서 고개를 끄덕일 때까지 묵묵히 변하고 있겠다.


변화의 유무에서 한 단계 올라온 내가 생각하는 것은 역시나 변화의 크기보다는 변화의 길이이다.

얇고 길게 가는 것이 나의 생존 전략인 셈이다. 누군가가 알아보지 못할지라도, 심지어 가끔은 나 자신조차 가고 있나? 변하고 있나? 하고 눈을 가늘게 떠 나의 변홧길을 살피게 되더라도. 그것이 존재하고 이어져있다면 그걸로 된 것이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나의 변화조차 완벽하게 해내고 싶진 않다.


여전히 지고, 자주 진다. 전적을 굳이 따지자면 진 편이 더 많다. 중요한 건 이기기‘도’ 한다는 것이다. 승리의 맛을 본 이상 이는 끊을 수 없다.



저녁메뉴를 고를 때 비건 메뉴를 슬쩍 들이밀고, 필요 없는 선물 주고받기를 하는 대신에 어색한 손 글씨가 죽죽 담긴 종이를 건네고 싶다. 서로 안 입는 옷을 돌려 입고, 나눠 입고 싶다. 열심히 번 돈을 열심히 좋은 데에 쓰고 싶다. 그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싶다. 나도 당신도 아직은 모르는 더 나은 방법을 함께 고민하고 싶다.


사랑한다는 말과 미워한다는 말이 같다면, 마음으로나 입으로나 사랑한다고 느끼고 사랑한다고 말할 것이다. 어차피 같은 것이라면, 사랑을 행하는 쪽이 더 아름답다. 왜인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당신도 알 것이다. 이게 더 세상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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