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나를 지나갈 때

분명해진 흐름

by EveningDriver

언제부터인가
배달 미션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 달라졌다.
정해진 시간 안에 몇 건을 채웠는지보다,
핸들을 놓고 난 뒤
지금 내가 어떤 자리에 서 있는지가
먼저 남는 날들이 늘어났다.

예전에는 ‘최고 효율’이라는 말이
하루를 판단하는 기준처럼 따라다녔다.
조금만 더 달리면 닿을 수 있는 구간이 있었고,
그 차이를 좁히기 위해
브레이크는 종종 뒤로 밀려났다.
지나고 보니
그 몇 번의 브레이크를 참는 동안
꽤 많은 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함께 걸고 있었다.

지난 주말,
아이가 좋아하는 하남 스타필드에 갔다.
점심을 먹고 아내가 서점에 들르는 동안
나는 토이킹덤을 탐험하는 아이를 따라다녔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매장은
평소보다 화려한 장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이의 발걸음은 유난히 자주 멈췄고,
그럴 때마다 나는 늘 하던 대답을 꺼냈다.
다음에, 집에 비슷한 거 있어, 오늘은 구경만 하자.
아이의 손은 다시
다음 장난감을 향해 움직였다.

잠시 후, 아내가 아이와 함께 하기로 했다.
둘은 스타필드 앞을 지나는
2층 버스를 타고 나섰고,
아이가 그 버스를 더 타고 싶어 했는지
중간에 내리지 않고
잠실 롯데타워까지 가겠다는 연락이 왔다.

쉬면 되는 시간이었다.
그런데도 그냥 쉬지를 못하겠더라.
아무도 재촉하지 않는데
내가 나를 먼저 재촉하고 있었다.

배달기사 앱을 켰다.
이제는 어디서든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나를 안심시켰다.
마침 적당한 미션도 시작됐다.
‘오, 이건 일하라는 신호네.’
나는 늘 그렇듯
나를 설득하는 데에는 능숙했다.

하남에서 시작한 배달은
미사와 상일동을 거쳐
명일동과 길동, 둔촌동까지 이어졌다.
지도는 달라졌지만
식당 앞에 서 있는 시간이나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순간은
어디서든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마 누군가 보았다면
그저 그 동네를 달리는
평범한 배달기사였을 것이다.

그날은 눈앞에 뜨는 제안을 여러 번 지나쳐야 했다.
조금 더 멀리 갈 수도 있었고,
조금 더 챙길 수도 있었지만
나는 이미 정해놓은 방향으로
천천히 핸들을 돌리고 있었다.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가 분명하니
선택은 복잡해지지 않았고,
하나를 고를 때마다
불안은 자연스럽게 뒤로 물러났다.

달리고 있었지만
앞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지금 이 움직임 속에서
나를 어디에 두고 있는지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렇게 서 있는 사이,
하루는 를 조용히 스쳐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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