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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세베리아 Oct 30. 2022

10. 해서는 안될 행동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우다.

한국에서 온 한나라는 음악 선생님은 주일마다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를 했다. 우리는 같은 방을 쓰진 않았지만 서로 친근함을 느꼈고 얼마 후엔 속마음도 털어놓는 사이가 되었다.


그녀는 전 직장에서 사랑했던 남자에게 이별통보를 받은 후 견디다 못해 한국을 도망치듯이 나왔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위해는 싱글남녀들에게 그런 곳인가 보다. 도망치는 곳.


그 남자는 인격적으로도 훌륭한 크리스천이었으며 음악적으로도 인정받는 선배이자 회사 동료였다. 첫 고백을 한 것도 그녀였으며 매번 약속을 잡는 것도 그녀였다고 한다. 그는 사귀는 내내 한 번도 먼저 무엇을 제안했던 적이 없었고 다만 그녀의 사랑을 받아주는 척만 했다고 했다. 그녀는 여자로서 자존감이 바닥을 쳤고 마침내 그에게서 이별을 통보받은 후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자신을 놓아버렸다고 했다.


다행히도 딸의 상태를 눈치챈 그녀의 엄마가 평소 이곳 국제학교 교장선생님과의 인맥을 동원해 그녀를 이곳에 보냈다고 했다. 이제 그녀는 지금 이곳에서 어느 정도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고 더욱이 그의 행복을 빌며 기도한다 했다. 겉으론 항상 웃고 학생들과도 너무나 잘 지냈던 그녀였기에 그런 아픔을 가진채 이곳에 왔을 것이라곤 상상도 못 했다. 나는 사랑을 통해 한층 성숙한 그녈 말없이 안아주었다.


나는 내가 언제쯤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궁금했었다. 내 눈앞의 욕망을 채울 또는 세상의 시선에 나의 가치를 인정받는 수단으로써가 아닌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의 평생 행복을 빌어주는 그런 사랑 말이다. 5월의 노동절은 중국에서 꽤나 큰 행사다. 나는 음악 교사 한나와 함께 Jason의 직장인 해천만 호텔에 휴가를 떠났다. 원래는 그의 오피스텔에 묶을 계획이었으나 화가 난 아빠는 그에게 해준 모든 지원을 끊어버릴 생각으로 오피스텔을 팔아 버렸다고 했다.


나는 우리에게 드리워진 이별의 그림자를 느꼈다. 그는 아빠를 결코 등질 수 없을 것이며 나는 그가 상처받을 것을 원치 않았다. 나는 한나가 했었던 것처럼 집착하지 않고 그의 행복을 빌어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Jason에게 아빠와의 관계를 회복해야한다고 했다. 그는 한동안 말이 없어졌다가 눈물을 보이며 내 손과 얼굴을 어루만지더니 하루만 더 시간을 달라고 했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밤 아빠는 술을 많이 마셨고 Jason의 거친 도발에 이성을 잃은 아빠는 그의 뺨을 쳤다. 다음날 우리와 호텔에서 만나기로 한 Jason은 나오지 못했다. 나쁜 일은 왜 한꺼번에 일어나는 건지 그의 누나가 유산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우리의 이별은 확실해져만 갔다. 조카를 잃은 그의 슬픔을 알기에 나는 원망도 자책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한나와 헤어져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길 원했다.  그는 계속 내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했다. 누나의 곁을 지키면서도 나의 안위를 걱정하는 이 남자를 정말 놓치기 싫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는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었으며 세상의 천대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게 나를 귀하게 여겨주었다. 그런 사람을 떠나보내는 건 정말 쉽지 않았다.


나는 그를 붙잡고 싶었다. 누나가 유산을 했건 아빠가 그에게 폭력을 행사했건 상관없이 나와 같이 도망가자고 그럴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20대의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순 없었다. 내 사심을 채우려 안 되는 것을 억지로 끼워 맞추면 그가 상처받을게 뻔했고 눈물 나게 예뻤던 우리의 추억은 비 온 뒤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짓밟힌 전단지처럼 처참하게 찢겨 더럽혀질 것을 나는 알았다.


다음날 누나가 조금 진정된 것을 확인한 후 나를 배웅하고자 했던 그에게 나는 이별을 고했다. 나는 충분히 행복했었고 네가 지금 지켜야 할 사람은 만난 지 6개월도 안된 낯선 이방인이 아닌 네 가족이라고도 말을 했다. 그리고 행복하길 바란다며 그렇게 나는 강한 척 성숙한 척하며 그를 떠나보냈다.


그 후로 내 모습은 정말 처참했다. 이별 후 고통은 내가 상상하던 것 이상이었다. 수업이 끝남과 동시에 나는 쉬는 시간마다 빈 교실에 앉아서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


그 와중에 남의 연애사업들은 왜 그리 잘 되어가는지 한나 선생님은 어느덧 지나간 아픔을 잊고  초1 담임 선생님과 주말마다 샤랄라 원피스를 입고 데이트를 하러 나갔고 25살 영국 원어민 선생님은 34살 한국 수학 선생님과 언어의 장벽을 뚫고 나를 중간 통역사로 쓰며 영국과 중국 한국을 넘나들며 만남을 이어갔다.


내 증상들은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한밤중에 잠에서 깨면 가슴이 답답해 숨이 쉬어지지 않았으며 도통 지워지지 않는 행복했었던 기억을 곱씹고 자꾸만 그의 꿈을 꾸는 내가 한심해서 이불을 찢고 가슴에 멍이 들 때까지 가슴도 쳐보았다. 나는 어른인 척하면서 그를 보내줬지만 사실은 죽을 만큼 괴로웠다. 괴로워하는 나를 보며 한나 선생님이 경고했다. "선생님! 선생님이 정리했고 서로 연락하지 말기로 했으니  Jason에게서 연락이 안 온다고 서운해한다거나 그에게 먼저 다시 연락해서 말을 번복하는 행동은 하고 싶어도 참아야 해요!"


나는 몇 달 전 바로 그녀였다. 나는 거기서 그녀의 말을 들었어야만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고 그에게 해서는 알 될 최악의 행동해버렸다. 먼저 연락을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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