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세베리아 Oct 30. 2022

8. 일상으로의 복귀

흐트러진 마음 정리하기

2달 만에 만난 Jason과 우리는 세상에 우리만 있는 듯 서로에게 집중하며 청도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Jason 은 여행객의 블로그를 통해선 결코 알 수 없는 중국의 옛 정취가 있는 골목골목을 누비며 그의 추억도 함께 알려주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꿔바로우(찹쌀 탕수육)와 지단관삥(중국씩 타코) 그리고 시홍스차오지단(토마토 계란 볶음밥)으로 배를 채운 우리는 함께 노래방도 갔다. 그는 거기서 내 생일날 불러주었던 주걸륜의 칠리향 이란 노래를 불러주었다. 시적인 내용과 그의 따뜻한 음색에 심취한 나는 그가 나를 보고 웃을 때마다 그럴 리 없었지만 마치 나만을 위한 세레나데를 불러주는 듯한 착각에 빠져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나는 그가 알려주었던 아적가성리를 불렀다. 남자가 떠났지만 그는 여전히 내 마음 내 노래에 남아있다는 슬픈 가사의 내용이었다. 나는 그 노래를 부르며 더 추해지기 전에 Jason을 내 마음속에서 보내주기로 했다.

 

밤엔 요트경기장을 산책했다. 날씨가 많이 춥지는 않았지만 바람이 차갑게 불었다. 내가 춥다고 말하며 몸을 움츠릴 때였다. 갑자기 Jason이 내 손을 자기 주머니에 가지고 가서 따뜻이 녹여주었다. 내 가슴은 순간 쿵하고 내려앉았다 마치 성덕한 팬처럼 얼굴엔 기쁨이 넘쳐흘렀으며 요트 경기장의 조명 아래 부서지는 파도를 내려다보며 이 순간을 숨결 하나까지 눈과 귀에 저장하며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장담컨대 아마 그때까지 내 인생을 통틀어서 이보다 더 영화 같은 장면은 없을 것이다.


일요일 아침 나는 윈디와 Jason을 두고 위해로 떠날 준비를 해야 했다. 교사라는 직업은 연가 내기가 거의 불가능했기에 윈디와 마지막까지 추억을 하나라도 더 남기려고 새벽부터 일어나 호텔 주변 산책을 하였다. 나는 이미 토요 한글학교 수업도 펑크를 내고 대체 선생님을 구해놓고 왔던 터라 흥분을 가라앉히고 어서 빨리 내 자리로 돌아가야만 했다. 어젯밤 찬바람을 맞고 무리해서인지 몸이 으슬으슬 추워서 조식 후 헬스장에 가자는 윈디 선생님을 혼자 보내고 나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


깜박 잠이 들었던 나는 창밖의 시끄러운 새소리에 잠에서 깼고 창밖을 바라보는 키 큰 남자의 뒷모습을 발견하였다. Jason이었다. 나는 누워있는 채 밖에 뭘 보고 있냐고 그에게 물었다. 그는 뜸을 들이더니 우리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나는 더 이상 헷갈리기도 싫고 그와 이만큼 가까워진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에 그에게 장난스럽게 물었다.


 "Jason! 나중에 여자 친구가 생겨서 그녀가 우리랑 같이 여행하는 너를 못마땅해하면 어떻게 할 거야? 그땐 아마 넌 지금처럼 하루 종일 네 시간을 투자해가면서 우리와 만나지 못하겠지?" 내 질문을 들은 그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대답했다. "난 그런 여자 친구는 안 만날 거 같아."


그가 내 침대 위에 앉아 나를 일으켜 세우더니 이마를 짚어보았다. "다행히 열은 없다."라고 말하며 다정하게 웃어보았다. 그는 무언가를 더 말하려고 한 듯 보였으나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 나는 그런 그를 이해한다는 듯이 말했다. "너 같은 동생을 알게 돼서 너무 기뻐! 그러니 앞으로도 나는 너의 하나뿐인 한국인 누나가 되어줄게! 우리 오늘부터 정말 끝까지 가는 누나 동생 사이 하자~" 나는 그의 새끼손가락을 끌어당겨 내 새끼손가락에 걸었다.


터미널 맥도널드에서 파인애플 파이를 먹고 있는 나를 보며 그는 하루만 더 있어주면 안 되겠냐고 물었다. 전날 뾰로통해진 윈디에게 무수히 들었던 말이었다. 나는 윈디는 내 손님인데 에게 맡기고 혼자 가버려서 미안하다고 했고 둘이라도 좋은 시간 보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대답 대신 나에게 영수증으로 접은 하트를 건네주었다.


버스에 오르려던 순간 나는 왠지 모를 서운함에 다시 뒤를 돌아 내게 손을 흔드는 윈디와 Jason에게 달려가 그들을 확 껴안았다. 그리고 그렇게 내 버스는 청도를 떠났다. 창밖을 바라보는 나는 한동안 선글라스를 벗을 수 없었다. 아쉬움의 눈물이 벅차올라 뺨 아래로 계속 떨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나 스스로에게 잘했어. 잘했어라는 말을 수도 없이 되풀이해 주었다. 이것으로 된 거다, 나의 이번 선택은 틀렸을 리가 없었다.


다음날 아침 윈디를 한국으로 잘 배웅해준 Jason은 나에게 전화를 했다. 그는 대뜸 이상한 질문을 하였다. 한국인과 중국인과 흑인이 있는데 네가 무인도에 갈 때 캐리어에 한 명만 넣을 수 있다고 한다면 누구를 넣겠냐는 질문이었다. 나는 질문이 너무 엉뚱해서 흑인이라고 답했다. 그는 그럼 자신이 흑인이 되어보겠다고 말하더니 전화를 끊었다.


일상으로 돌아온 나는 다시 수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흐트러졌던 내 마음을 다잡고 영어 스피치 대회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너무 바빴기 때문에 카톡도 더 이상 하지 못했다. 하지만 하루 종일 열심히 일을 한 후 녹초가 되어 돌아온 기숙사에서 외로움이 몰려올 때면 비밀 수첩을 꺼내보듯 Jason의 페이스북을 몰래몰래 염탐하였다.


어느 날 밤 나는 우연히 그의 심정이 적힌 글을 읽게 되었다. 그는 무언가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며 괴로워했고 이런 적이 처음이라 고통스럽다고 적어놓았다. 나는 그게 무엇이 되었든 그를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댓글로 내가 도울 수 있으면 좋겠고 오늘 밤은 꼭 깊은 잠을 자길 바란다고 글을 남겼다. 그런데 며칠 후 그의 그 긴 글이 흔적도 없이 지워진 걸 확인했다. '내가 분명 본거 같은데? 이상하다...

이전 07화 7. 사심 채우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