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son과 나는 같은 중국에 있었지만 직업 특성상 주말에 한가한 나와 주말에 바쁜 그였기에 거의 만날 수가 없었다. 대신 우리는 서로 카톡으로 하루를 공유하였다. 1월 내 생일에는 갑자기 전화해 내가 당시 배우러 연습했었던 주걸륜의 칠리향 이라는 노래를 직접 불러주었으며 다음엔 꼭 만나서 같이 보내자며 내 마음을 흔들었다. 서로에게 스며들어간다 라는 느낌이 이런 거구나.,.
내가 그에게 짧은 시간 특히나 강하게 끌렸던 이유는 한국 남자들 앞에선 상품이었던 내가 그의 앞에선 물건이 아닌 온전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내 외모, 출신 대학, 부모 재산, 직업 이런 것이 아닌 그냥 나를 궁금해했다. 내가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 매 순간 감정은 어떤지 어떤 음식을 먹고 또 나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가 좋아지면 좋아질수록 나는 내 마음을 주체하지 못할까 봐 겁도 났다. 나는 이제는 연애보다 결혼이 더 하고 싶은 30살 노처녀였다. 나는 그를 내 마음속 추억으로 훗날 언제라도 꺼내보면 예뻤던 기억으로 남고 두고 싶어졌다. 내 사심을 채우는 것으로 추억을 더럽히고 싶지 않았다.
20대에 3번의 만남과 이별을 겪은 후 하나 배운 것이 있다면 사랑은 변하지만 추억은 영원하다는 것이었다. Jason을 보면 대학교 CC였던 그 아이가 생각이 났다. 그는 바보처럼 나를 좋아했었다. 하지만 나는 그를 좋아한 게 아니라 그의 인기를 좋아했었다. 과에서도 꽤나 인기가 있던 그가 내 친구의 고백을 거절하고 나를 선택해주었을 때 나는 미운 오리 새끼가 백조가 되는 기분을 경험하였다. 나는 내 사심을 채우기 위해 그 착한 아이의 모든 것을 받아먹고 군대에 보낸 후 이별을 고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그는 군대에서 탈영하고 싶었을 정도로 괴로워했으며 휴가 나올 때마다 내 자취방 원룸 앞에서 밤을 새우다가 군대에 복귀했다고 하였다. 나는 죄스런 마음에 그의 고백에 고개를 끄덕였던 그 순간을 수천만 번 후회했다. 할 수만 있다면 그때로 돌아가 내 목을 후려치고 싶었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우리가 지금까지 계속 친구로 남았더라면 나는 인생의 귀한 사람을 곁에 두었을 텐데...
나는 또 이와 같은 어리석은 선택을 할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하루는 내가 잠시 카톡을 멈췄다. 우린 하루 중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16시간 이상을 카톡으로 일상을 공유하였기에 나는 그것을 통해 그에게 더 이상 다가오지 말라는 신호를 주고 싶었던 것이다. 하루가 지나 열어본 카톡에서 그는 이대로 연락을 끊고 한국으로 가버리면 자기는 나를 찾을 수가 없다며 이유가 뭐든 이대로는 나를 보내줄 수 없다고 가지마라고 말했다.
두 달 후 나는 청도행 버스에 다시 몸을 실었다. 왜냐하면 윈디가 학원 봄방학을 맞이하여 나와 Jason을 만나러 오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윈디는 Jason이 예약해놓은 호텔에 미리 체크인을 한 상태였으며 나는 밤늦게 그녀와 재회하였다. 와인 한잔씩을 한 우리는 조금 취기가 올랐다.
"윈디! Jason이 나를 친구로 대하는 거 같지 않아. 솔직히 내 전 남자 친구보다 나한테 더 잘해줘... 날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거면 어떡하지?" 갑작스러운 내 고민상담에 윈디는 말했다, "나 저런 남자의 부류를 잘 아는데 솔직히 엄청 헷갈릴 스타일이야"라고 했다. "선생님! Jason은 원래 모든 사람들을 그렇게 대해~ 우리 손가락 하나 까딱 못하게 하고 이번 여행도 다 자기가 계획했잖아요. 내가 여기 오는 동안만 해도 Jason에게 몇 통의 카톡을 받았는지 알면 선생님 놀랄걸? 무슨 나를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 마냥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기더라니깐요.
'그래! 오버하지 말자. 그럴 리가 없지....' 친한 친구의 결혼식에 다녀온다는 그는 그날 오후쯤 우리와 합류하였다. 그런데 결혼식 하객 정장을 입고 나타난 그는 너무나도 멋있어서 내 마음을 또 완전히 무장 해제시켜버렸다. 내 가슴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고 얼굴은 곧 터질 홍시처럼 붉게 물들었다.
그는 우리를 가볍게 안아주며 인사했고 중국 결혼식에서 쓰이는 빨간 봉투를 내밀었다. 그 봉투 안에는 청도 국제공항에서 윈디가 Jason에게 버리듯 투척했던 돈 봉투가 그대로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