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흔들! 잠에서 깬 나는 눈을 떴고 내 눈 앞에 대만 영화 청설에서나 봤었던 앳된 미소년 얼굴이 보였다. 그 대만 영화 속 남주는 낮은 목소리로 "It's time to walk up."이라고 속삭였다. 순간 나는 소파에서 스프링처럼 일어났다.
윈디와 재스민은 벽시계를 가리키며 우리 2시간이나 잠들었어요!~라고 속삭였다. 매니저는 우리들을 찾으러 방송을 여러 차례 했으나 아무런 응답이 없어서 30분 동안 온천 구석구석을 찾아 헤맸고 드디어 찾아 다행이라고 말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우리가 온천에 들어간 5시 이후 해천만 리조트와 거래 중인 모든 차량 에이전트와 연락을 취해 봤지만 현재 예약 가능 차량은 8인승 단체손님을 위한 벤 뿐이다고 말했다. 들어왔을 때보다 5배가 넘는 터무니없는 가격을 들은 우리는 그 가격은 현재 우리가 가진 예산을 초과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고민하더니 곧 우리에게 한 가지 제안을 더 했다. 그건 바로 본인 개인차로 우리를 공항까지 데려다준다는 제안이었다. 나는 그의 제안이 고맙긴 했지만 이상하리만큼의 과한 친절함과 마치 걸려들 수밖에 없는 덫같은 시나리오에 불안감이 확 몰려왔다.
Jason은 갑자기 소파 앞 유리 탁자에 자신의 지갑을 꺼내 그 안에 있는 자신의 신분증과 온천 매니저 사원증 그리고 핸드폰까지 차례대로 나란히 펼쳐 놓았다. 그러고 나서 그는 어떤 결정을 할지는 전적으로 우리들의 선택이며 만약 그의 차를 이용한다면 안전을 위해 자신의 신분증을 찍어서 지인들에게 보내도 좋다고 말했다.
나는 잠시 생각해볼 시간을 달라고 했으며 윈디와 재스민의 팔을 잡아끌었다. "선생님! 나는 좀 불안해요. 우리 그냥 벤을 빌리자." 내 말을 들은 윈디는 차분하게 반박을 시작했다. "선생님! 근데 그 벤이라고 안전할까? 나는 차라리 직장도 알고 얼굴도 아는 이 매니저가 더 안전할 거 같은데?"
윈디의 말을 들은 재스민이 윈디 말에 동조하며 말했다. "나도 차라리 저 매니저 차를 타는 게 더 좋을 거 같아요~ 너무 걱정하지 마요. 우린 세명이고 젠 한 명 이잖아." 윈디와 재스민의 말을 들은 나는 그 말도 아예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 신분증을 지인에게 카톡으로 미리 보내 놓는다면 듣보잡 여행사에서 보낸 이름 모를 기사가 모는 벤을 타는 것보단 더 낫지 않을까?'
로비 소파에 돌아온 우리는 Jason에게 우선 잠도 못 자고 우리들 찾아주고 도와줌에 고마움을 표했고 Jason의 차량을 이용하고 싶으니 30분 후에 온천 프런트 데스크에서 만나자고 약속했다. 나는 불안한 마음에 만에 하나 일이 잘못된 다면 어떤 최악의 상황들이 일어날 수 있을지를 생각해봤다.
'여자들에게 친절을 베푼 척 다가와서 중간에 차를 이상한 곳으로 돌려서 다른 패거리들을 태운 후 우리에게 나쁜 짓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면 가는 길에 우리에게 약을 탄 음료를 먹인 뒤 장기밀매업자에게 팔아넘길 수도 있지 않을까?'
자정이 가까운 그 시각 Jason의 차는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았으나 언듯 보기에도 청도 거리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꽤 비싸 보이는 차였다. 나는 히터를 켜놓기 위해 미리 차에 탑승한 Jason의 눈을 피해 핸드폰 셔터 소리를 죽여가며 차의 번호판과 차의 기종을 식별할 수 있는 차의 여기저기를 찍어 카톡으로 친구에게 전송했다.
그는 윈디와 재스민의 호기심 어린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변을 해주었다. 그리고 신호에 걸릴 때마다 자신의 핸드폰으로 친구와 여행했던 중국의 아름다운 장소들과 자신의 가족들도 소개해 주었다. 기계부품 공장 사업을 하는 아빠가 너무 바빠서 얼굴을 볼 시간도 없이 자랐으며 그래서 누나와 함께 외로운 엄마를 위로하기 위해 여행을 많이 다녔다고 했다.
그렇게 그의 가족사진까지 보게 되니 높았던 경계심이 약간 녹아 내려가는 듯도 했으나 내 등은 여전히 Jason의 차 시트에서 경직된 상태로 멀찍이 떨어져 있었으며 꽉쥔 두 손에서는 식은땀이 흘렀다.
바로 그때 갑자기 찻길에 길게 늘어선 노란 가로등 불빛 사이로 하얀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재스민이 창밖으로 손을 내밀며 "눈이다!"하고 외쳤다. "우리 29살 마지막 날 너무 영화 같지 않아요?" Jason은 라디오를 켰다. 새해를 맞이하는 카운트다운이 5분 앞으로 다가온 상태였다.
내 시선은 마침내 애꿎은 Jason의 두통수에서 창밖 금빛 가루처럼 춤추듯 흩날리는 눈으로 옮겨져 갔다.
우리는 20세의 마지막 날을 서로서로 축하했다. 빛났던 청춘 20세에 우리가 무엇을 도전하면서 좌절했고 다시 성취해내며 살아왔는지를 서로 너무나도 잘 알기에 기특하다며 칭찬했고 고생했다고 안아주었다. 나는 새해의 카운트다운을 중국에서 혼자가 아닌 우리로 같이 외칠 수 있다는 게 참 다행이란 생각을 하며 "5! 4! 3! 2! 1!" 큰 소리로 함께 외쳤다.
잠시 후 24시간 맥도널드에 잠시 차를 멈춘 Jason은 따뜻한 커피 4잔과 애플파이를 2팩 가지고 돌아왔다. 나는 차디차게 얼어버린 손으로 뜨거운 커피를 받았지만 마시지는 않았다. '이 분위기에 휩쓸리면 안 돼! 나라도 정신을 차리자!'
이른 새벽 아직 국제공항 문이 열리지 않았다는 소식에 매장 내에서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나누며 우리는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급속도로 친해졌다. 그는 공항 체크인 타임 버스 터미널 시간표등 세심히 우리를 챙겨주었으며 이윽고 청도 국제공항 입구까지 안전하게 우리를 데려다주었다.
아쉬움에 서로를 따스히 안아주며 훗날 다시 뭉치자 약속하고 아쉬움의 작별인사를 나눴다. 윈디는 여행경비가 담긴 돈봉투를 차량 앞 시트에 올려놓고 입구로 재스민과 함께 내달렸다. 당황한 Jason은 봉투를 집어 들고 나에게 돌려주려 했지만 나는 우리 마음이니 받아주라고 했으며 계속 받을 수 없다던 그에게 그럼 우리 다시 만날 때 그때 다시 돌려주라고 말했다. 그는 차 트렁크에서 캐리어 가방을 내리려는 나를 끝까지 말리며 버스터미널까지 데려다주었다.
버스 터미널 시계는 새벽 5시를 가리키고 있었으며 내 버스 티켓에 쓰인 출발시간은 6시 30분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근육이 오들오들 떨렸다. Jason은 버스 터미널 대합실이 너무 춥다며 나와 함께 다시 차에 가서 히터 바람에 몸을 녹이자고 말했다. 차에 앉은 그는 5분도 안돼 잠이 들어버렸다.
나는 곤히 잠든 Jason을 내려다보았다. 일이 끝남과 동시에 낯선 한국 여자 세명을 돕겠다고 이리저리 뛰며 새벽 운전까지 마다하지 않았던 24살 Jason을 바라보고 있자니 바로 얼마 전까지 그를 의심한 게 미안해졌다.
그는 정말 피곤했는지 미동조차 없었다. 그의 유난히 크고 깨끗하게 정돈되어있는 손톱을 보니 그가 얼마나 이 직업에 진심인지 느껴졌다. 나는 기특한 그의 엄지손가락을 잡아보았다. 내 엄지손톱의 2.5배는 돼 보였다. 나는 장난스러운 마음에 수성펜을 꺼내서 그의 엄지에 스마일 그림을 그려주었다. 그리고 한국말로 그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 24살인 네가 30살인 나보다 더 어른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