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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이 힘들고 피곤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살다 보면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거의 없다는 걸 느끼게 될 때가 있다. 누구나 행복한 삶을 원하고 사회적 성공을 꿈꾸거나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어 한다. 하지만 흙 수저로 태어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이러한 희망들은 그저 간밤에 꾼 꿈처럼 순식간에 사라질 뿐이다.  


누군가 큰 부나 성공을 이루었다는 이야기라도 듣게 되면 축하해 주고 부러워하는 것도 잠시, 여전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순간 삶은 더 초라해진다.


게다가 작은 소망 하나 가지고 묵묵히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많은 착한 사람들은 현란한 말솜씨와 처세술을 가진 나쁜 사람에게 자신이 다 해놓은 성과물조차 가로 차이기 십상이다. '일을 통한 자아실현'이라던지 '주인 의식을 가지고 일을 해야 한다' 같은 동떨어진 말은 무력감과 번 아웃에 아무런 도움도 안 된다. 착한 사람도 성공하고 싶고 원하는 것을 이루고 싶다.


돌파구를 찾기 위해 의지를 다지고 공부를 해보려 해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길을 찾을 수도 없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개인의 본성을 발전시켜주거나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위한 교육을 받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배운 것이라고는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평균적 인간이 되는 방법이나 통제받는 자로서 갖추어야 할 규율과 인센티브 같은 것들 뿐이다.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선 규정이나 규율보다는 삶의 실천적 지혜를 터득하기 위한 방법을 배워야 한다.


삶은 온통 모순 투성이다. 계획해서 태어나지 않았고 목표나 의미를 가지고 태어난 건 더더욱 아닌데 살면서는 계획이나 목표 그리고 의미가 없으면 삶이 표류한다. 살려고 태어났지만 태어나는 순간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  


또한 평범하고 안정적으로 살아선 결코 평범하게 살 수도 없다. 다시 말하면 평범하게 살려면 비범해야 하고 행복하려면 불행을 겪어야 하며 제자리에 있기 위해선 계속 달려야만 한다. [루이스 캐럴의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도 레드 퀸이 앨리스에게 말했다. “여기서는 제자리에 있기 위해 계속 달려야만 한다”라고]

 

왜냐하면 감정과 생각, 의식적 사고, 행복감등 인간이 누리는 모든 것들은 우리의 오랜 조상이 영원히 사는 삶 대신 죽는 삶을 선택 함으로써 얻어진 결과이기 때문이다.(글 챕터 7,8,9 참조)


이러한 수많은 모순들로 우리의 삶은 대부분 피곤하고 힘들다. 영웅의 삶을 산들 결국은 죽음을 맞이해야 하며 아무리 큰 부를 성취 하더라도 떠날 땐 빈손으로 떠나야 한다. 대단한 업적을 이룬 황제의 삶이나 이름 없이 죽어간 농부의 삶이나 자연의 관점에서 보면 한 생명체의 죽음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살아 있는 동안 어떻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고 자유와 행복을 획득할 것인가이다.


(다음 글부터는 어떻게 원하는 것을 이루고 경제적 심리적 자유를 이루게 되었는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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