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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것이 얻어지는 메커니즘

샐러리맨이라면 누구나 임원이 되고 싶어 할 것이다. 높은 연봉과 많은 혜택들 그리고 기업 내에서 높은 위치의 서열에 따른 권한과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 나는 자동차 산업 분야에선 꽤 알려진 기업의 한 계열사 대표이사였다. 지난날을 반추해 보며 내가 그럴만한 인성이나 자질을 갖추고 있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가정환경과 공부에 대한 열정이 그다지 없던 나는 '일찍 졸업하여 돈이나 벌자' 하는 마음으로 경기도 안양에 있는 공업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내가 공고에 가는 걸 말리거나 대학을 나와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별다른 특별함 없이 2년의 시간이 지난 어느 날 3학년 선배들이 기업체 현장 실습을 끝내고 학교에 돌아왔다. 아마 그때부터 변화가 시작된 듯하다. 기름 묻은 작업복을 입고 손과 손톱 사이에 잔뜩 낀 시커먼 때, 그 들의 모습은 내가 원하는 삶은 아니었다.


'대학을 가야 하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잠을 잘 못 자서 고민이지만 그때는 잠이 너무 많아서 고민이었다. 때로는 밤을 새우고 하루 4시간 이상 잠들지 않기 위해 잠 안 오는 약을 먹으며 공부했지만 아침이 되면 바닥에 누워 자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며 깨어나곤 했다.


잠결에 비몽사몽 눕지 않으려고 끈으로 의자에 몸과 다리를 묶어 놓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아침이 되면 의자에 묶인 채 쓰러져 자고 있는 나를 발견해야만 했다. 지금 생각하면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그땐 잠이 참 많았다. 그렇게 어찌어찌 공부하여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 진학은 했으나 벼락치기로 공부한 탓에 기초가 안되어 있어 교수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나는 더 이상 교실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고 1학기 1/4의 수업일수가 지나기 전에 휴학을 했다. 지식을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이 어떤 것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휴학 후 책은 도무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스무 살의 방황이 시작됐다. 입시 준비 1년 동안 저하된 체력은 점점 더 약해져 걸을 때 다리가 휘청거렸고 매일 밤 가위에 눌려 밤만 되면 공포가 온몸을 휘감았다. 그런 날이 몇 달간 이어지더니 이젠 반대로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세월의 아이러니다. 삶은? 항상 원하는 것은 달아나고 원치 않는 것은 쫓아온다.


어느 날 밤 온몸이 찢겨 나가고 알 수 없는 무서운 존재가 더 깊은 심연의 바닥으로 나를 질질 끌고 내려가고 있었다. 한계에 다다랐을 때 더 이상 끌려가면 진짜로 죽을 것 같은 생각에 몸부림치고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어났다. 어두운 밤, 문간방을 쓰고 있던 내방 방문 창호지 뒤에 조금 전 그 무서운 존재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나는 겨우 문을 열고 안방으로 들어가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 누워 잠을 잘 수 있었다.


나이 스물에 심신이 비틀거리고 있었다. 처음 맛보는 좌절과 고통,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에 쓰러져 매일 잠만 잤다. 그리고 어느새 6개월이 지났고 계절은 가을에서 겨울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뜬금없이 20만 원을 주었다. 1980년 늦가을, 나는 그 돈을 가지고 술집에 갔다. 태어나 처음으로 술을 진탕 마시고 비틀 거리며 집에 들어가 쓰러져 방바닥에 몸속의 것들을 모두 토해냈다. 다음날 아침 속이 뒤집어지는 고통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복학까지 4개월 남았고 무기력의 시간을 더 이상 방치해선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나쁜 고리를 끊어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선 자신에게 형벌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 가지 생각이 떠올라 문방구에 갔다.


B4 사이즈의 화선지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 위에 혈서를 썼다. 참을 인[忍]. ‘칼날의 아픔을 견디는 마음’, 심장을 찌를 듯이 아픈 감정을 인내하고 견뎌야 한다는 마음으로. 그날 밤부터 4개월 동안 집중과 몰입의 힘을 처음으로 경험하며 입시 준비 1년 동안 보다 더 많은 지식을 습득했다.


다음 해 3월 복학을 하고 또 죽어라 공부만 했다. 그땐 공부만이 나의 살 길이라 생각했다. 학교 도서관에 좋은 자리 그리고 내가 정한 나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매일 새벽 문 열기도 전에 경비실에서 자고 있는 수위 아저씨를 깨웠다. "아저씨~! 문 열어 주세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착하고 고마운 아저씨였다. 불평 한마디 안 하고 눈 비비고 일어나 문을 열어 주었다. 전국이 데모도 들썩일 때도 나는 늘 도서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렇게 공부했는데도 한 번도 1등을 해보진 못했다. 200명 중에 2등을 한번 해 본 것이 최고 성적표이다. 나는 아이큐가 그다지 높지 않았고 늘 남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만 했다. 나보다 아이큐 수치가 20~30 높은 딸아이의 학습능력을 보면서 사람 간의 큰 차이를 실감했다. 그러나 세월이 좀 더 많이 지난 뒤 나에게 있어 성공의 열쇠는 학습능력만이 아닌 다른데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래 그림은 2014년에 실시한 나의 심리 행동 특성 검사 결과다. 이 검사는 전 세계의 글로벌 기업에서 팀장 이상의 사람들을 주로 대상으로 하여 실시하는데 아래 표에서 숫자는 그중에서의 백분위를 의미한다. 총 12 페이지의 결과 리포트 중 일부를 발췌했다]

여기에는 없지만 심리적 회복 탄력성도 백분위 92%에 위치해 침체로부터 비교적 빨리 벗어나곤 하였다.



어머니는 그때 왜 뜬금없이 나에게 20만 원을 주었을까? 지금도 알 수 없지만 그로 인해 나는 완전히 망가졌고 혈서를 쓰고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때로는 상식에서 벗어난 남다름과, 적어도 인생의 어느 한순간은 온몸이 불타고 찢어지는 아픔까지 사랑하며 이성적 판단을 배제한 채 그것이 아니면 죽음을 택하겠다는 각오로 앞뒤 재지 않고 돌진하는 열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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