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의 투병 끝에 아내를 먼저 보내고 난 뒤(12년 간 아내의 투병 이야기는 쓰지 않을 것이다) 나는 심 박수가 계속 120~150 사이를 오르내리며 가슴이 쪼이는 심한 울렁거림에 시달렸다. 열흘 내내 밤이고 낮이고 전혀 잠을 잘 수가 없었으며 가슴에서 쿵쿵거리는 진동이 발끝까지 울리는 것 같았다.
얼마 전까지도 아내와 같이 쓰던 침대에 누웠다. 둘이 눕다 혼자 누운 침대가 운동장처럼 느껴졌다. ‘이대로 누운 채 고통 없이 숨이 멈춰도 괜찮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와 사별한 남자는 오래 살기 힘들다든지 알코올 중독에 빠지는 사람이 많다든지 하는 얘기들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러나 이내 아이들이 보였고 나는 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후 술과 담배를 일절 하지 않았다.
인생에서 정말 가치 있는 것은 좌절과 절망의 벼랑 끝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다 끝내고 싶은 극한의 상황에 처했을 때, 그때가 곧 끝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아채고 죽기를 다해 한 발짝 더 나아갔을 때 비로소 얻어지곤 하였다. 적기에 알아채는 것은 삶에서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참 중요하다. 때를 알아채는 것, 그리고 딱 한 발작 더 나아가는 것, 이 한 발작에 성공과 실패가 좌우된다.
자신의 한계를 알고 이를 뛰어넘을 수 있어야 한다(마음만 먹으면 한계를 넘는 건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
그날 생전 처음 헬스를 시작했다. 체중에 대한 그동안 내가 가지고 있었던 믿음과 나에 대한 한계를 부숴 보기로 마음먹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을 빼려고 노력하지만 나는 그 반대였다. 빈약한 몸은 항상 콤플렉스였다. 살면서 한 번도 58kg을 넘긴 적이 없었고 거의 55~56kg 대에 머물러 있었다.
나는 53kg까지 빠진 체중을 15kg 늘리기로 목표를 잡았고 매일 진짜 열심히 운동했다. 어떤 음식이던 단백질 함량과 칼로리를 확인하며 음식을 섭취했다. 평소 가지고 있던 위장 장애로 충분한 양의 단백질 섭취가 쉽지는 않았지만 목표 체중 68kg를 달성하는 데는 불과 6개월 밖에 걸리지 않았다.
목표를 달성했지만 뭔가 허탈했다. 예상보다 훨씬 빨리 그리고 너무 쉽게 원하는 게 이루어져서일까? ‘6개월이면 할 수 있는 일을 여태 못했다니?’ 살면서 그동안 분명히 꽤 노력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먹고 노력해도 체중이 더 이상 불어나지 않는 자신을 보며 난 원래 살이 안 찌는 체질이라는 굳건한 믿음을 갖고 있었는데, 확신했던 55년 간의 믿음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깨지는 것이 너무 즐거웠다.
삶에 있어서 확정하고 단정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자리 잡게 되었다.
한계를 뛰어넘으려 할 때 방해되는 건 자신의 인식틀이다. 여태까지 항상 그랬으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착각, 자신은 이러이러한 사람이라는 착각, 이건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 그러나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었다. 죽을 만큼 절박하고 절실하면 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