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여러분의 나이는 몇 살 이신가요?
나이 자신 있게 말하는 방법
"실례지만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나이에 대한 물음은 누구라도 살면서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상대방과 대화를 하다보면 실례가 될지 몰라도 언젠가는 조심스럽게 하게 되는 질문이다. 이러한 물음에 태연하게 대답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적잖이 당황하는 사람도 있다. 간단하게 생각해보자면 젊은 사람들은 아직 한창이기 때문에 당당하게 대답했을 것이고, 비교적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당황하며 얼버무렸을 것이다. 이때 말하는 젊음은 육체적으로 건강한 상태이거나, 아직까지 굳지 않은 열려있는 사고에 기반한 대답일 수 있다. 만약 둘 다 아니라면 청년기본법에 의해 정의된 '청년', 만 34세 이하이기 때문에 당당하게 대답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위의 세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듯싶은 '내 나이'를 밝히기에는 왠지 모를 망설임이 생겨났다. 무엇이 나를 망설이게 하고, 무엇이 그들의 대답을 당당하게 만드는 것일까? 어떻게 하면 나도 당당하게 내 나이를 말할 수 있을까?
나이에는 무게가 있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가벼운 나이와 그렇지 않은 나이, 매 년 더해지는 삶의 무게에 대해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내가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가 다른 사람들 보다 조금이라도 더 무겁다면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을 것이리라. 이러한 관점에서 보았을 때 열아홉 살의 고등학생과 마흔 살의 직장인 중 누구의 삶이 무거운 것일지, 둘 중 누가 더 당당하게 나이를 밝힐 것인지 궁금해진다. '먹은 밥그릇'의 개수가 엄연히 다른데, 당연히 마흔 살 직장인이 견뎌온 삶의 무게가 무거울 것이다. 어쩌면 책임져야 하는 가정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이의 무게를 측정하는 저울은 마흔 살 직장인 쪽으로 기울어진다.
열아홉 살 고등학생의 입장을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또 달라진다. 넉넉하지 않은 집안 형편 아래 부모님의 희생으로 악착같이 버텨낸 19년을 떠올리자면 저울은 다시금 열아홉 살 고등학생 쪽으로 서서히 움직인다. 앞으로의 미래가 결정될 수도 있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있노라면 추는 조금 더 고등학생 쪽으로 기울 것이다. 마흔 살의 직장인은 수능 따위 인생에 있어서 잠깐 쉬어가는 반점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고등학생의 입장에서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지금까지의 힘겨운 인생을 전환시킬 수 있는 큰 기회인 만큼 그가 느끼는 무게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이렇듯 삶의 무게는 지극히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당당하게 나이를 밝히기에는 아직 무엇인가 부족하다.
사람의 나이에는 무게뿐만 아니라 가치도 있다고 한다. '나잇값'이라는 말처럼 나이에 어울리는 말과 행동을 통해 내 나이에 대한 값어치를 충분히 해야 한다.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먹는 것이 나이라는 말이 있지만, 사실 그렇지가 않다. 나이의 가치를 다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나이를 찾아 먹어야 한다. 논어에서 이르기를 50세는 지천명(知天命)이라 하여 '하늘의 뜻을 아는 나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를 모두에게 그대로 대입하기는 어렵다. 혹자는 50세 보다 이른 나이에 천명을 깨달았을 수 있고, 천명은커녕 아직 인생의 목표도 정하기 어려운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인생의 목표는 나잇값을 확인하는대 중요한 기준이 된다. 도착지를 알아야 출발할 수가 있듯, 현재 내가 가는 길의 방향이 맞는지 확인하고 다른 길에 들어섰다면 방향을 조정할 것이며, 나아가 내 나이 값어치만큼의 노력을 충분히 하였는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내 나이'를 당당하게 말하기 어려운 까닭은 지금, 내 나이에 부합하는 값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위에서 말하는 인생의 목표란, '인생의 마지막에서 달성할 법한 목표'라고 정의하고 싶다. 덧붙이자면, 사소한 것이 아니라 거창하고 위대한 목표였으면 한다. 당당하게 말한 그들의 나이는 삶의 무게, 가치, 노력 등이 어우러져 밖으로 드러난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라고 생각한다. 목표를 위해 착실하게 나아가는만큼, 남들과 조금 다를지라도 부끄러워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반면에 뚜렷한 목표 없이 다른 사람들이 가는 길을, 주변에서 가라고 하는 대로 걸어온 경우 대답이 망설여진다. 노력이 부족하다는 문제가 아니라, 목표가 명확하지 않은 채로 일단 따랐기 때문에 자신이 없는 것이다. 또래의 사람들과 비교하여 상대적인 위치만을 확인할 수 있으며, 지금까지 겪은 시행착오가 그저 허송세월일까 봐 두려운 것이다. 우리 사회는 경쟁에 특화된 만큼 자신만의 뚜렷한 목표를 갖는 것이 쉬운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나름의 목표를 세워야만 한다. 너무 이른 나이부터 고민할 필요는 없겠으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간절하게 숙고해야만 한다. 느릴지언정 확실히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언젠가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도록 말이다.
"저는 올해로 서른 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