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을 가는 마음으로
내가 우울증에 허덕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친구들은 나에게 다양한 위로의 말을 건네주었다. 힘내 보람아, 응원할게, 필요한 게 있으면 뭐든지 말해 등등. 솔직히 말하면 그 당시에는 그런 따뜻한 응원의 말들조차 힘이 되지 않았다. 물속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사람에게 물 밖의 사람이 아무리 소리쳐봤자 잘 안 들리는 것처럼 그냥 멍멍한 기분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친구들도 나에게 어떻게 위로를 건네줘야 할지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그때 한국에서 내 소식을 들은 동생 한 명이 내게 이런 말을 해줬다. "언니, 우리 그냥 대충 살자." 아프기 전에는 모욕적으로 들리던 이 말이 희한하게 그 순간만큼은 큰 위로로 다가왔다. 위로를 넘어 따습게 들리기까지 했다. 많은 것을 내려놓은 지금, 이제 이 말은 내 인생의 모토이기도 하다. 대충 사는 삶.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을 정말 열심히 살려고 한다. 단기간에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낸 한국 사람들은 특히 더 그렇다. 한국은 지독한 결과주의 사회다. 그럴싸한 결과물이 눈에 보이지 않으면 내가 열심히 노력한 과정이 물거품이 되어 버린다. 비록 근사한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노력하며 겪은 경험이나 감정은 내 속 어딘가에 남아 단단한 자양분이 되었을 텐데 이걸 좀 봐달라고 누군가에게 요구하는 건 한국 사회에서 수치스러운 일이다. 그저 성적표에 찍힌 점수나 통장에 찍힌 잔고만이 내가 살아온 인생을 대변해 줄 뿐이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악착같이 살아야 한다. 내 인생을 압축해 보여줄 결과를 단 하나라도 더 만들기 위해. 오죽하면 한국어에는 '열심히 공부해요', '열심히 일해요'를 넘어 '열심히 살아요'라는 표현까지 있다. Study hard, work hard까지는 이해하겠는데 live hard는 뭐란 말인가. 사람이 어떻게 매 순간 전력을 다해 일 분 일 초도 낭비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을까. 나는 지금도 열심히 살라는 말의 의미를 잘 모르겠다. 숨이 붙어있으면 알아서 자연스럽게 살아지는 게 인생 아닌가? 내가 할 일은 그저 내 몸이 숨을 잘 쉴 수 있도록 돕는 것뿐이다.
그때 동생이 말한 '대충 살자'는 의미는 분명 개차반처럼 막살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말 그대로 대강을 추리는 정도로 기본기에 충실하며 살자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는 시간과 정성을 쏟아 열심히 하되, 인생 자체를 마치 하나의 거대한 퀘스트처럼 도장깨기 하듯 살 필요는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인생을 하나의 여행으로 본다면 엑셀만 밟을 것이 아니라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도 감상하고 내 옆에 앉은 사람의 얼굴도 한 번씩 보면서 즐거운 소풍을 다녀오는 마음으로 사는 삶 - 이게 기본기에 충실한 인생이 아닐까.
너무 열심히 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Live hard 대신 live well, 건강하게 숨 쉬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인생은 이미 살아지고 있다. 요즘 말대로 낄끼빠빠, 낄 땐 끼고 빠질 땐 빠지는 인생을 살아보고자 한다. 계속 끼기만 하다가 에너지가 방전되는 대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