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에게도 아플 권리가 있다는 것
어렸을 적부터 언니와 동생에 비해 유독 잔병치례가 많았다. 담임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 지각이나 결석을 알려야 할 때가 잦았고 이런 나에게 개근상은 먼 나라의 이야기였다. 학기 말에 개근상을 타가는 친구들을 보며 나에게 에너지는 한정된 자원이라는 걸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다. 성인이 되어서는 서른 줄에 접어들어 우울증을 앓더니 이 시기에 이십 대 초반부터 조짐을 보이던 자궁내막증이 급격하게 악화돼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호르몬 치료를 병행하는 바람에 월경이 끊긴 지 벌써 1년 6개월이 다 되어간다.
한 번씩 아파서 드러누울 때면 주위의 어른들은 나를 딱하게 여겼다. "돌도 씹어 먹을 나이에 이렇게 아프면 어떡해." 보통 이런 말이 자주 동반됐다. 걱정이 되어 하신 말씀이겠지만 젊은 사람은 아프면 안 되는 것처럼 들려 괜히 마음 한 구석이 찝찝했다. 나도 아프고 싶어서 아픈 게 아니었는데. 물론 나이가 어릴수록 건강한 게 생리학적으로는 맞는 이치이지만 젊음이 꼭 건강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지금도 대학병원의 어린이 병동에는 무수히 많은 아기들과 어린이들이 건강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고, 많은 청년들이 다양한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다. 그들 중 원해서 아픈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젊음과 건강이 비례한다는 식의 말은 듣는 젊은이에게 상처만 될 뿐이다.
건강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재산이라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모두가 기를 쓰고 건강해지고 싶어 한다는 것도. 이런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하듯 오랜만에 와서 거닐어 보는 서울 거리에는 병원이 정말 많다. 옷과 화장품을 쇼핑하듯 마음에 드는 의사를 골라 쇼핑하는 이 사회가 오늘따라 런던 촌놈에게는 너무 낯설다. 병원이 즐비한 서울의 거리는 내 몸에 한 치의 흠이나 쉼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보이기도 한다. 감기에 걸리면 그냥 며칠 푹 집에서 쉬면 나을 텐데 한국 사회는 그런 쉼을 허용하기에 아직도 바쁜가 보다. 회사 앞 병원에서 링거 투혼을 보여가며 출근하는 언니를 보며 가슴이 갑갑해진다. 젊은이들이 아픈 걸 융통성 있게 허용해주지 않는 이 사회가 밉다.
몇 년 전에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수필이 한창 유명세를 탄 적이 있다. 불안하고 막막한 게 청춘이니까 젊은이들은 아파도 괜찮다는 내용의 책이었다. 한쪽에서는 아픈 게 청춘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 우리 사회는 '청춘이니까 아프면 안 된다'는 메시지도 함께 날리고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면서 지병이 있는 젊은 사람들은 혹시라도 아파서 지각이나 결석을 하게 될까 봐 눈치가 보인다. 직장생활이 장난이냐는 소리를 들을까 봐 겁이 난다. 이중 잣대를 들이미는 어른들의 태도에 젊은이들은 점점 더 어리둥절해지고 가뜩이나 아픈 젊은이들은 기가 죽는다.
젊어도 아플 수 있다. 아픈 게 자랑은 아닐지언정 그렇다고 부끄러워할 것도 아니다. 원치 않게 아프게 된 젊은이들을 청춘이라는 이름 아래 차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럴 시간에 이 사회와 나라가 엄마의 마음으로 청년들을 품어주길 바란다. 청춘은 건강하든 아프든 그저 존재 자체로 아름다운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