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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보람 Nov 14. 2022

저는 고소공포증인데 어떡하나요?

끊임없는 경쟁 속에서

한국은 유독 경쟁이 심하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내가 청소년일 때만 해도 성적표에 반 석차와 전체 석차가 기록되어 있었다. 중고등학생이면 만으로 12살부터 많아봐야 18살인데 그 어린 학생들을 성적순으로 줄 세운다는 관념 자체가 혐오스럽다. 아기일 적 밥만 먹고 똥만 싸도 예뻐해 주던 어른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성적 때문에 아이들이 받을 상처에는 관심을 가져다주지 않는 어른들이 야속하기만 하다.


졸업과 동시에 레이스도 끝이면 좋을 텐데 학교를 졸업하면 더 큰 경쟁들이 기다리고 있다. 대졸자는 너무 많은데 대기업의 취업 관문은 좁기만 하다. 대기업 위주로 돌아가는 한국 사회에서 중소기업의 고용 복지는 불안정하기만 하고, 자진해서 중소기업에 취업을 하고 싶어 하는 청년들은 별로 없다. 결국 안정적인 곳에서 일을 하려면 스트레스를 받으며 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이 떨어져야 내가 그 자리에 들어갈 수가 있다.


이런 점에서 영국 사회는 한국보다 분명 더 자유롭다. 공무원 시험과 대기업이 취업 시장을 잠식하지 않는다. 고용 복지가 탄탄한 중소기업들이 많고 노동 시장이 유연해 한국에 비해 이직이 쉽다. 그렇다고 경쟁이 없는 건 물론 아니다.  영국은 승진을 시킬 때 특정한 직업을 제외하고는 나이나 입사 연도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회사에서 성과를 내는 만큼 정직하게 보상받는다. 그래서 한국 버전의 꼰대 같은 상사는 별로 없을지언정 깍쟁이 같은 동료들은 여럿이다. 하하호호 웃으며 함께 점심을 먹고 일이 끝나면 펍에 가서 맥주도 한 잔씩 하지만 보이지 않는 기싸움이 존재한다.


내가 잘하는 만큼 위로 올라가는 게 쉬워서 그럴까? 영국에서는 ladder, 사다리라는 표현을 참 많이 쓴다. 첫 집을 장만하고 점점 평수를 넓혀 이사 가는 것을 property ladder라 하고 더 높은 연봉을 받고 이직을 하며 커리어를 쌓는 것을 career ladder라고 한다. 한국도 영국도 모두가 인생을 하나의 수직 상승하는 레이스로 보는 것에는 별 차이가 없다. 모두가 계속 더 높은 하늘로 올라가려고 손을 뻗는다.


문득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에게는 이런 삶이  피곤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로 올라갈수록  몸을 움직일 공간도, 주변 사람을 돌아볼 여유도 없는 사다리에서의 . 오직 떨어질 공간만이 존재할 뿐이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런 삶이 공포스러울  있다. 내가 그렇다. 나는 깊이가 가늠되지 않는 곳에서 발이 땅에 닿지 않으면 무섭다. 이런 나도 사다리를 올라야 하는 운명이라면 밑을 내려봤을  땅이  보이고 떨어져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만 올라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어차피 사람이라면 모두 각자의 인생 끝에서 승천해야 하는 팔자 아닌가. 살아 있는 동안만큼은 두 발로 땅을 딛고 지상에서의 삶을 정성껏 즐기고 싶다.


공중에 떠 있기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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