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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 성 인 Sep 08. 2024

작은 땅의 야수들, 김주혜

선의 그리고 인연

[프롤로그]


독서 모임에서 다음 토론책으로 '작은 땅의 야수들'을 추천한 친구가 있었다. 토론책으로 지정되지 않았지만, 여러 다른 책과 함께 배송된 책. 표지 그림이 호랑이라는 것을 알고 호기심이 일었다. '목차, 독자들에게,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을 꼼꼼히 읽어 본 나는 어느새 이 책이 너무도 읽고 싶어졌다.


맑은 초가을 오후, 몇 시간을 읽었는지 책을 읽다 밖에 나오니 한낮의 햇살에 눈이 아득했다. 남은 부분은 밤을 새워 읽었다. 귀뚜라미 소리와 함께, 책으로 날새는 밤이 몇 해 만인가! 역사의 장엄한 물결 속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치열하게 살다 간 인물들의 이야기는 흡인력이 대단했다. 아름답고 서정적인 문장은 작가와 번역가의 세심함 속에 다듬고 다듬어져 음악처럼 유려하게 흘러간다.

호랑이는 소설 전체를 유유히 걷고 있다




1. 호랑이, 그리고 야마다와 남경수


자주 등장하지는 않지만 소설의 시작부터 끝까지 호랑이로 맺은 두 사람의 인연은 거대한 병풍처럼 모든 이야기의 배경이 된다. 호랑이는 은유처럼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며 역사의 물줄기와 함께 위대하게 서 있다. 호랑이는 우리 민족 그 자체이자 수호신 같은 존재다. 


야마다는 깊은 산속에 배고픔과 추위에 죽어가는 남경수를 구해준다. 남경수를 구해주는 자기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 길을 잃은 야마다 일행은 호랑이를 만나게 되고, 호랑이의 공격을 맨몸으로 막아낸 남경수 덕에 야마다는 생명을 구하고 그에게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은담뱃갑을 준다. 야마다는 도저히 알 수 없다. 남경수에게서 알 수 없는 신성함을 느끼며 그를 구하고, 그의 안전을 끝까지 지키려는 정의감의 출처도 알 수 없다. 


이 순간은 그의 일생을 지배하는 사건이 된다. 오랜 세월이 흘러 남경수의 아들, 남정호의 은담뱃갑을 보고 그는 남정호가 전쟁에 끌려가지 않게 도와준다. 야마다는 생의 마지막에 비로소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이해한다. 일제의 만행과 온갖 잔혹한 역사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호랑이'라는 거대한 존재와 대자연을 통해 일본인 등장인물도 껴안는다. 

야마다가 구한 남경수, 남경수와 남정호가 구한 그들, 야마다가 구한 남정호 


2. 그녀들의 인생, 사랑


소설의 주인공, 옥희의 어린 시절부터 노년까지의 이야기가 담담하게 펼쳐진다. 기생이 되고, 배우가 되고, 한철을 만나 사랑하고, 정호와 평생에 걸쳐 우정을 나눈다. 주변 사람들의 죽음을 묵묵히 지키고 역사의 격변기에서 옥희는 끝까지 살아남는다. 어떤 상황에 내몰리더라도 옥희는 고고하게 신념을 지키며 자신의 인생을 산다. 옥희의 주변 인물들인 은실, 단이, 월향, 연화의 삶도 역사의 거대한 흐름에 요동친다. 소설 밖으로 튀어나와 그들의 호흡이 생생하게 느껴질 정도로 인물들은 선명하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킨다. 

그럼에도 살아간다


3. 정호의 인생, 사랑


거지들의 왕초였던 시절부터 죽음을 앞둔 순간까지 정호는 옥희를 사랑했다. 그는 마치 태어난 순간 어미 뒤를 따라다니는 오리처럼 옥희를 평생 사랑한다. 중요한 순간마다 나타나 옥희와 옥희의 친구들을 구해준다. 비록 한철을 사랑한 옥희에게서, 우정 이상의 마음을 받지는 못하지만 죽는 순간까지 그는 옥희와 함께 한다. 정호는 격동기 역사를 온몸으로 받아낸다. 김성수와 이명보는 역사 속 실존인물들을 떠올리게 한다. 

주인공들은 이 격동기를 살아낸다




[에필로그]


소설을 읽는 내내 거대한 강물이 유유히 흐르고 커다란 몸집의 호랑이가 어마어마하게 큰 눈을 치켜뜨고 유유자적 걷는 풍경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다. 그들은 우리를 온화하게 묵묵히 지켜준다. 소설은 방대하고 깊다. 더 읽지 못하는 게 아쉽다. 최근에 읽은 몇몇 소설들이 떠오른다. 특히 셸리 리드의 '흐르는 강물처럼'의 강인한 여자 주인공이 떠오른다. 그리고 톨스토이, 박경리 등 위대한 작가의 이름도 생각난다. 살아야 한다. 그리고 사랑해야 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소설이 있다는 게 행복하다.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작은 땅의 야수들

저자 김주혜 / 번역 박소현

출판 다산책방


By 강 성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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