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6펜스> 스트릭랜드의 화가 브뤼겔, 그리고
피터 브뤼겔.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 속에서 스트릭랜드가 유일하게 흥미를 가졌던 화가다. 브뤼헐이라고도 불리는 네덜란드 화가로 책 속에서 불린 이름대로 브뤼겔로 쓰기로 한다. 스트릭랜드는 마흔 줄에 전업화가의 길에 들어섰고 제대로 미술교육을 받았다 하기 어렵다. 그는 유명 화가들에 대해 세간과는 다른 평가를 했다. 그는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으면 다듬지 않고 거칠게 표현했기에, 좋은 평가를 받는 화가들이 별로 없었다. 단 브뤼겔에 대해서는 나름 긍정적으로 표현했다.
‘이 사람은 괜찮아’ 스트릭랜드는 말했다.
‘틀림없어. 이 사람은 그림 그리는 일이 아주 끔찍했을 걸’
p.233 <달과 6펜스> 서머싯 몸, 민음사
저것은 분명 칭찬이었다. 그림 그리는 일이 아주 끔찍하다는 것은 대상을 속속들이 잘 안다는 것과 통하는 걸까. 당연히 부조리를 보게 되고 그래서 끔찍해질 수 있다는 것일까. 알 듯 말 듯하다. 스트릭랜드에게 괜찮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 꼭 축복처럼 느껴지진 않는다. 스트릭랜드의 거칠고 신랄한 위트가 있다. 브뤼겔에도 있다, 특유의 신랄한 위트가.
브뤼겔의 작품은 여럿이 있지만 내가 스트릭랜드였다면 '이카루스의 추락'을 특히 마음에 두었을 것 같다. 그 작품이 닿을 수 없고 바라만 봐야 하는 이상, 하늘의 '달'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이카루스는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밀랍과 깃털로 날개를 만들어 하늘을 날았던 최초의 인간이다. 그의 아버지 다이달로스는 미노스의 미궁 설계자다. 그가 만든 미궁은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로 굽어지고 꺾어졌으며, 시작도 끝도 없는 것 같았다고 한다. 어쩐지 생을 닮았다. 역설적이게도 아버지 다이달로스는 아들 이카루스와 이 미궁에 갇혔다. 아버지는 밀랍과 깃털로 날개를 만들어 땅 위의 길이 아닌 하늘로 탈출을 시도한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하늘을 날 때 태양 가까이 가면 밀랍이 녹아 떨어질 것이고, 너무 낮게 날면 바다의 습기 때문에 무거워져 추락할 것이라 충고했다. 그러니 꼭 곁에 붙어있으라고. 아이 인생이 어디 아비 뜻대로 되던가. 이카루스는 하늘을 나는 사실에 도취했고. 높은 태양 가까이 날아, 결국 추락한다. 자기 앞에 날고 있는 새를 따라갔던 걸지도 모르고. 날개 조절 법이 미숙해서였을 수도 있다. 어쨌든 그는 날았고 추락했다. 비범한 시도를 했고 죽었다.
브뤼겔의 그림 속에서 이카루스는 거의 숨은 그림 찾기다. 일상을 계속 사는 보통 사람들, 어디 부두의 풍경화 같은데, 제목은 이카루스의 추락이다. 잘 찾아보면 거대한 망망대해 구석에 거꾸로 처박혀 허우적대는 다리가 물 위로 조그맣게 보인다. 깃털도 날린다. 제목은 분명 이카루스의 추락인데 그림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미미하다. 이카루스가 주인공 맞나?
웃긴데, 웃으려니 좀 슬프다.
누군가 위대한 시도를 하건 말건 우리 앞에는 처리해야 할 일상이 있다. 쟁기질해야 할 밭이 있고, 돌봐야 할 양 떼가 있고, 낚아야 할 물고기가 있었다. 하루하루 먹고살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이다. 서머싯 몸의 역작 <달과 6펜스>를 마음에 두고 끄적거리고 있지만 한편으론, 중소 제조업체 직원으로서 다가오는 월말 대금결제를 걱정하고 있다. 진작 입금이 되었어야 하는데. 다른 업체에 결제해 줄 것도 많은데 어떡하나 걱정이 된다. 달은 달이고, 6펜스는 6펜스다. 6펜스가 나의 달빛을 꺼뜨릴 수도, 더 환하게 할 수도 있다.
후에 나는 비엔나에서 피터 브뤼겔의 그림을 몇 점 보았는데, 그때서야 스트릭랜드가 왜 그에게 끌렸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거기에 또한 자기만의 세계에 대한 비전을 가진 인간이 있었다. 그때 나는 브뤼겔에 대해 뭔가 써볼까 하고 노트를 꽤 해두었는데 다 잃어버리고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어떤 감정에 대한 기억뿐이다. 그는 인간을 그로테스크하게 보는 듯했다. 인간이 그로테스크했기 때문에 인간에 대해 분노를 느꼈다. 인생은 우스꽝스럽고 지저분한 일들의 뒤범벅이고 웃기에 적절한 소재였다. 하지만 웃으려니 슬펐다.
P.223
그로테스크. 동굴을 뜻하는 그로테에서 비롯된 말로 앞뒤가 맞지 않고, 이것저것 융합된 상태. 조화롭지 않고 기괴함. 부조리. 우스꽝스러움. 슬픈데 웃긴, 비극적 희극. 기러기 아빠 송강호가 라면 먹으면서 가족 영상편지 보다가 펑펑 울던, 어느 영화의 장면이 떠오른다. 라면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나오는 건지 모르겠어서 웃기면서도 슬픔의 눈물이 났었다. 그리는 일이 분명 끔찍했을 것이기에 이 화가는 괜찮다던 말이 ‘그로테스크’란 단어에 착 달라붙는다. 그로테스크. 그로테스크. 메아리친다. 이 소리에 브뤼겔의 또 다른 작품 ‘교수대 위의 까치’가 떠오른다.
스트릭랜드의 마음에 있었을 것이 확실한 브뤼겔의 그림 하나를 추가한다.
'교수대 위의 까치'는 참 앞뒤가 안 맞는다. 우선 교수대를 바라보는 시점이 일치하지 않는다. 원근법이 어긋나 있어, 위쪽 따로 아래쪽 따로다. 교수대에서 죽어간 이들의 이유 앞뒤가 맞지 않았을까.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기 때문에 두 가지 시선을 다 담아 그린 걸까.
교수대 앞에서 춤추는 이들과 저 구석에 똥 싸는 사람도 뜨악하다. 까치는 수다쟁이라는데, 춤추는 남녀와 똥 싸는 사람들의 가십을 저 까치 한 마리가 어디까지 퍼뜨릴까. 교수대 뒤로 보이는 풍경은 한없이 평화롭기에, 그림 안에서 펼쳐지는 앞 뒤 안 맞는 이야기들이 더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진다.
순전히 내 마음이지만, 스트릭랜드가 브뤼겔의 저 두 그림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을 것 같다. 인생 전반의 흐름을 보여주는데 웃기기도 하고 섬뜩하기도 하다. 한편으로 체념하는 기분도 들고, 괜히 뾰족해지는 것도 같다. 그렇다면 정작 스트릭랜드의 그림은 어떤 것일까. 그렇게 중년에 가족을 팽개치고 떠나와서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하며 그린 그림은 무엇일까.
찰스 스트릭랜드의 모델이 된 폴 고갱의 대표작으로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가 있다. 미국 보스턴 미술관 한쪽 벽면을 채우는 엄청나게 커다란 작품이다. 그림의 한가운데에 선악과를 따는 내가 있고 그 주변으로 삶이 펼쳐져있다. 그리고 인간이라면 한 번쯤 고민해 보는 원초적인 질문이 있고, 기괴함과 성스러움이 함께 묻어 있다. 기괴함은 탄생에도 죽음에도 묻어나고, 성스러움 역시 죽음과 탄생 모두에 묻어난다. 스트릭랜드가 그렇게 표현하고 싶었던 그 무엇이 이 그림에 있는 것 같다.
서머싯 몸이 <달과 6펜스>에 부제를 붙였다면 이것 아니었을까 싶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무엇인가, 어디로 가는가.
지혜로운 이들은 점잖게 자기들의 길을 간다. 그들의 그윽한 미소에는 너그러우면서도 차가운 비웃음이 깃들여 있다. 그들은 자기들 역시 지금의 젊은이들처럼 소란스럽게, 그들처럼 경멸감을 가지고 안일에 빠져 있던 구세대를 짓밟아왔던 일을 기억한다. 또한 지금 용감하게 횃불을 들고 앞장선 이들도 결국은 자기들의 자리를 물려주게 되리라는 것을 안다. 마지막 말이라는 것은 세상에 없다. 옛 도시 니네베가 그들의 위업을 하늘 높이 쌓아 올렸을 때 새로운 복음은 이미 낡은 것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말하는 당사자에게 자못 새롭게 여겨지는 용감한 말도 알고 보면 그 이전에 똑같은 어조로 백 번도 더 되풀이되었던 말이다.
추는 항상 좌우로 흔들리고,
사람들은 같은 원을 늘 새롭게 돈다.
P.17
서머싯 몸은 책 속에서 분명하게 말한다.
모순투성이 인간은 같은 원을 늘 새롭게 돌고 있다고.
스트릭랜드는 그 그로테스크한 루트에서 살짝 비껴 서서 인간이 도는 원을 거시적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작가는 스트릭랜드를 통해 ‘그것’을 엿봤다. 달에서 바라봤을까. 나도 ‘그것’을 보고 싶어서 책과 그림을 기웃대지만. 보고도 이해를 못 하거나 금방 잊어버린다. 신경 써야 할 게 너무 많다. 내가 두발 디디고 도는 미시적인 원, 6펜스도 중요하니까.
다행히 이제 이번달 결제는 어찌 저찌 해결되었다. 그 자리를 다른 걱정이 비집고 들어온다. 이번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은 어떻게 보내야 할지, 보험갱신 때 다른 상품으로 갈아탈지 말지, 주문제작 맡긴 물품은 도대체 약속 날짜에서 얼마나 늦어질는지, 저녁메뉴로 준비한 찌개의 기묘한 맛을 어떻게 살려낼 수 있을지 등등. 너무나 미시적이고 하찮지만 종종 촌각을 다투고 피를 말리는 고민들이다.
스트릭랜드 이야기와 그림들 들여다보다
시시콜콜 중요한 일 떠올리고
잠깐 하늘을 올려다본다
하늘은 둥글다 했던가
네모의 꿈, 아니
동전의 꿈
슬픈데 웃음이 난다
끊임없이 쭈욱
6펜스의 꿈
존재는 유한한데
무한의 꿈을 꿈 꾸네 거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