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6펜스> 스트릭랜드와 스트로브 사이에서
<달과 6펜스>는 화가 이야기다. 증권중개인으로 일하던 중년남성이 어느 날 홀연히 가족을 떠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폴 고갱의 인생을 모티브로 했다는데. 실상은 폴 고갱에 서머싯 몸의 상상과 인간에 대한 통찰이 덧대어져, 찰스 스트릭랜드라는 완전히 새로운 어느 예술가의 마이 웨이 스토리가 되었다.
20대의 젊은 나는 이 책이 사랑이야기가 아니라서 좋았다.
이 기괴한 주인공 화가한테는 말랑말랑한 연애 이야기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미술이나 철학을 동경하기도 했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예술 절반 이상이 사랑타령인 게 마음에 안 들었던 어린 나에게, 이 책은 그야말로 매력덩어리였다. 과감히 자신을 내던지고 진정 원하는 바를 성취하기 위해 훌쩍 떠나는 인물이라니. 와 멋있다, 언젠가 나도 저렇게 변신할 수 있을까 했다.
40대가 되어 다시 본 <달과 6펜스>는 차갑다.
사랑얘기도 결국 인간 테두리 안의 것이라 받아들이는 나이가 되면서, 아이 낳고 나서, 그래서 내 마음이 너무 말랑말랑해진 것일까. 특별하고 위대한 화가 주인공 보다, 주변인물들에서 나를 더 많이 발견하게 되어서일까. 주변인물 면면마다 작가 특유의 예리한 관조의 날이 서있다. '차가운 비웃음이 깃들어 있다(p.17)'. 수많은 인간상에 대한 작가의 관심과 통찰이 집요하게 다가왔다.
남편이 돌아가기를 바라는 것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 때문인지, 아니면 그저 구설수가 무서워서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부인의 상심 가운데에는 버림받아 괴로워하는 마음과 자존심을 상해 고통스러워하는 마음이-내 젊은 마음에는 그런 자존심이 야비하게 여겨졌다-뒤섞여 있지 않나 해서 마음이 어지러웠다.
그때만 해도 나는 인간의 천성이 얼마나 많은 모순투성이인지를 몰랐다. 성실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가식이 있으며, 고결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비열함이 있고, 불량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선량함이 있는지를 몰랐다.
P.56 <달과 6펜스> 서머싯 몸, 민음사
그녀 역시, 고상한 여자가 흔히 갖는 속일 수 없는 본능, 그러니까, 남의 돈으로 살아야 정말 체면이 선다고 여기는 그 본능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P.306 <달과 6펜스> 서머싯 몸, 민음사
사건은 어느 여름날 찰스 스트릭랜드가 아무 언질 없이 가족을 떠나면서 시작된다. 주변 사람들은 그가 누군가와 눈이 맞아 도망간 연애사건이라고 확신했다. 평소 예술가들과 교류하던 그의 부인은 책의 서술자인 작가를 만나 메신저 역할을 요청한다. 집으로 되돌아오도록 잘 설득해 달라고. 그가 떠난 이유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작가는 상실감에 목놓아 손수건이 모자라도록 우는 그녀를 도와주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감정이 뭔가 앞뒤가 안 맞는다고 느꼈다. 그녀가 구설수가 무서워 우는 연기를 한 것인지, 정말 그 남자를 사랑해서 괴로운 것인지 마음이 어지러웠다고 말했다. 그 모두가 그녀의 실제이자 감정이었을 것이다. 작가가 콕 찍은 것처럼 인간은 모순투성이니까.
내가 그녀의 입장이 된다면 어떨까?
만약 남편이 어느 날 가족여행을 마치고 왔는데 사라졌다면? 당장 아이들 사교육비용, 쓰레기 버리는 일, 가족 경조사 등을 치를 일이 걱정될 것 같다. 그리고 아이들이 받을 걱정 어린 시선과 혹시 모를 비난을 떠올릴 듯. 나의 짝꿍이 나를 버렸다는 배신감과 상실감이 있겠지만, 분노나 슬픔보다 앞으로 나와 남겨진 가족이 맞닥뜨릴 불편한 일들이 막막할 것 같다. 내 안의 가식과 비열함.
내가 스트릭랜드가 될 수도 있을까?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무엇을 위해 가족을 떠난다? 오직 나만을 위해 부양가족을 저버리는 일은 상상만으로도 너무 무책임하고 불손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한편으론 내가 선택하지 않은 화가로서의 삶, 삼류 철학가로서의 인생, 미혼의 일생을 가끔 상상해 본다. 궁핍하고, 편협하고, 그러나 영감 넘치도록 온전히 나로만 사는 이기적인 삶을 가끔 그려본다. 그래. '유리창을 보면 벽돌 조각을 집어던지고 (P.219)' 싶어지는 충동이 내 안에 있음을 인정한다. 내 안의 또라이.
파리에서 만난 화가 스트로브에서도 나는 나를 본다.
스트로브의 그림은 그럭저럭 팔리지만 심금을 울리진 않는다. 위대하거나 훌륭하다 수식할 수 없는 그냥 그렇고 그런 직업 화가이다. 나 역시,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결코 두드러지는 인재는 아니다. 그럭저럭 밥벌이는 하고 있는 그렇고 그런 회사원이다. 회사에 별 불만도 없다. 심지어 딱 스트로브 같은 남편과 함께 산다. 내 안의 그럭저럭.
단 영화, 그림, 음악, 책을 고르는 데에는 나름의 가치판단 기준이 있다. <달과 6펜스> 같은 책을 보면 전율한다. 스트로브가 스트릭랜드의 그림을 보고 전율한 것처럼. 그가 스트릭랜드가 그린 그의 아내 블란치 그림을 차마 찢어버리지 못한 것처럼 말이다. 나의 심미안.
궁핍한 생활에 다 죽어가던 주인공을 간호해 주고 화실도 내어줬지만 이들의 관계는 결국 비극으로 끝났다. 지옥으로 가는 길을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했던가. 블란치가 자살한 이후 스트로브는 고향에 돌아갈 거라며 인생의 지혜에 대해 언급한다. 다른 곳에 눈길 돌리지 않고 그저 부모님이 간 길을 밟는 평범하고도 지키기 힘든 위대한 지혜를.
그런데 이게 어쩌면
이렇게나 공허하게 들릴까.
아버지는 내가 당신처럼 목수가 되기를 바라셨네. 우리는 오대(五代)를 같은 직업으로 이어왔지. 하기야 그게 인생의 지혜일지도 몰라. 다른 곳에는 눈길을 돌리지 않고 그저 아버지가 간 길을 밟는 것 말이야. 어렸을 적에 나는 마구 만들던 옆집 딸에게 장가를 들겠다고 했지. 눈이 푸르고 아마색 머리칼을 곱게 땋아 내린 조그만 계집아이였어. 그 애와 결혼했더라면 아마 집안을 아주 깔끔하게 정돈하고 살면서, 나도 가업을 이을 아들 하나쯤 두었을지도 몰라.
P.183 <달과 6펜스> 서머싯 몸, 민음사
쉽게 일어날 일 같으면서도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이
파랑새를 옆에 두고 평범하게 사는 일 같다.
스트릭랜드는 파랑새 따위 믿지 않고 뛰쳐나갔다.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요.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 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P.69 <달과 6펜스> 서머싯 몸, 민음사
스트릭랜드처럼 거침없는 예술가 인생은 지금도 여전히 멋있어 보인다. 그의 단호한 변신이 부럽다. 나는 그러나 그 변화가 초래할 것들을 감내하고 싶지 않다. ‘아버지의 충고’, 세상의 ‘위대한 지혜’로부터 너무 떨어지긴 싫고, 그렇다고 넙죽 엎드려 지내지도 못하고. 아직도 어정쩡하게 이럴까 저럴까 우물쭈물 서 있다. 나는 그대로인데 내 주변이 알아서 변화한 것 같다. 무대가 바뀌고. 내 모습도 바뀌었다. 영화, 그림, 만화, 책 좋아하던 나도 내 주변 지인들도 이제 중년이 되었고,
대체로 스트릭랜드는 되지 못했다.
그래도, 나도, 내 주변도, 그럭저럭 살고 있다. 누군가는 맛있는 것을 먹고 혼자 술 마시면서 재미를 찾고, 누군가는 소소하게 목수 일을 시작하며 의미를 찾고, 누군가는 수녀원에 들어갔다가 가족에게 돌아와 가치를 찾아가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책 읽는 모임에 나가서 읽고 떠들면서 존재감을 만끽한다. 나는 이렇게 뒤늦게나마 공개적으로 끄적거리면서 살고 있다.
들여다보면, 스트릭랜드 정도는 아니더라도, 누구 하나 완전히 6펜스의 세계에서만 머물진 않는 것 같다. 은은하게 빛나는 자기만의 이상향, 달이 분명히 있긴 하다. 이상적인 면에서 실패한 듯 한 스트로브도 따지고 보면 아름다움을 찾아 고향을 떠나 파리로 오지 않았나. 이후 스트로브는 어떻게 살았을까. 고향으로 갔을까. 거기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려냈을까. 화가는 접고 목수가 되었을까. 스트로브의 이야기는 내가 이어 써야겠다.
중년이 되어버린 나는 여전히 <달과 6펜스>를 보고 위안을 얻는다. 20대 때와는 또 다른 격려를 받는다. 달은 몰락하지 않았다. 달이 그 모습을 자꾸 바꾸기도 하고, 보이지 않을 때도 있지만. 언제나 거기 있었고, 지금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