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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ㅈㅑㅇ May 02. 2023

고전문학 속 남자, 여자, 사람

이쯤에서 짚고 넘어가는 인간 용어

 

머리카락이 그 새 많이 자랐다. 겨울을 지내고 봄을 맞는 머리카락은 한식 주변 날씨만큼이나 푸석푸석하다. 겨울바람이고 봄바람이고 내 몸에서 수분을 가져가는 데에는 전혀 봐주지 않는다. 모근마다 넘쳐나던 힘도 나이가 들면서 자꾸 빠진다. 길어진 머리카락들이 무게를 못 이기고 더 납작하게 엎드리면, 내 얼굴의 생기는 완전히 빠져나간 듯 보인다.

 

미용실에 갔다. 머리카락에 고집 한 방울 약이라도 쳐주면서 가꿔주려고. 옛날에는 할머니들이 왜 뽀글뽀글 파마를 하는지 이해가 안 됐는데. 마흔이 넘고 보니 그 마음이 너무 잘 이해가 간다. 곱슬거리는 머리카락들은 힘이 있다. 나이 들었다고 맥없이 쳐져있지 않고, 얇아진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나는 맨 두피를 가려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어릴 땐 그렇게나 맥없이 쭉쭉 뻗기만 한 머리가 갖고 싶더니, 나이가 들면서 힘 있게 굽이진 머리가 절실하다.

 

동네에 새로 생긴, 후기가 좋은, 쾌적한 미용실이었다. 내 머리카락을 담당한 미용사는 20대로 보이는 남자였다. 군대를 갔다 왔을까. 곱다. 머리카락에 살짝 웨이브가 있고 손길도 섬세하다. 말투도 조심스럽다. 주변을 둘러보니 남자 손님이 꽤 많다. 중년 이상의 남자들도 보인다. 시대가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이런 미용실에서 몸치장에 관심 있는 남자를 이렇게나 많이 볼 수 있다니.

 

아직도 이발소를 찾아가 머리를 깎는 남자 어르신을 안다. 그런 분들은 이런 미용실 어색해하는데, 여기엔 참 많기도 하다. 미용실에 온 남자들은 머리를 깎기만 하지 않는다. 살짝 펌도 하고 염색도 한다. 하긴 요샌 식당에 남자들끼리 와서도 맛있는 거 사 먹고 사진 찍는 모습을 본다. 언젠가 그런 모습이 매우 어색한 일이었던 때가 있었는데. 세상 참 많이 바뀌었다.


세상이 엄청나게 바뀌고 있는 것 같긴 한데. 한편으론 원래 그랬던 것도 같다. 동물의 세계에선 본래 암컷보다 수컷의 화려함이 일반적이지 않던가. 희한하게도 자연이 아닌 인공의 세계에서는, 암컷의 화려함이 일반적으로 득세했다.


인간들이 쓰고 읽어온 고전 문학 속에도 몸치장에 관심 많은 여자가 꽤 나온다. 남자들도 가발이며, 옷차림이며, 마차며, 많이 신경 썼겠지만. 스스로의 가치를 지성이나 자산보다 아름다움으로 증명해야 했던 유럽 귀족 여자들의 몸치장 얘기가 아무래도 수적으로 우세한 듯싶다.



 몸치장이 여자들의 장신구라면
행복은 여자들의 시다.
그녀는 행복했다면
매혹적이었을 것이다.


 


발자크의 1835년작 <고리오 영감>에서 전지적 시점의 작가가 타유페르에 대해 묘사한 말이다. 그렇다. 행복하면 얼굴에서 빛이 난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은 서로에게 빛이 된다. 맞는 말이긴 한데.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여자한테 한정되는 말은 아닌 것 같다. 남자로, 사람으로 변환해도 자연스럽다. 남자건 여자건 사랑에 빠지면 인물이 훤해지지 않던가. 몸치장도 꼭 여자에 국한되지 않는다. 남자든 여자든 옷매무새나 헤어스타일에 관심을 둘 수 있다. 몸치장에 관심을 두는 것은 성별보다 개인차에 따른다. 개인의 시대를 사는 나에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상식이다.


그래서 고전 문학에서는 종종 여자, 또는 남자란 단어를 사람으로 바꿔 읽는 것이 더 의미전달이 잘 될 때가 있다. 직업이 천직이고, 혈통이 끔찍하게 중요했던 시대에 쓰인 하인, 흑인, 인디언, 원시인, 미개인 등의 단어들도 마찬가지다. 그 모든 단어들이 불편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그런 때면 '사람'으로 바꾸면 조금 편안해진다. 그냥 사람인데 하필 여자이거나, 남자이거나, 하인이거나, 비영어권이거나 하는 식으로 생각해 본다. 그러면 작가가 얘기하는 맥락에 더 가까이 가기가 쉽다.


서머싯 몸의 1919년작 <달과 6펜스>에서 스트릭랜드가 타히티에서 결혼한 아타에 대해 한 말이 있다. "여자란 알 수 없는 동물이오. 개처럼 취급하고, 팔이 아프도록 두들겨 패도 여전히 사내를 사랑한단 말이오. 그러니 여자에게도 영혼이 있다는 건 기독교의 망상 가운데서도 제일 터무니없는 망상"이라는 말. 나참. 맞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나. '여자'를 '사람'으로 바꾸면 거부감이 좀 사라진다. 나를 포함하는 어떤 인간 그룹을 싸잡아서 얘기하는 것 아니고, 스트릭랜드 주변의 어떤 개인으로 좁혀서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서머싯 몸이 스트릭랜드를 통해 말하려는 바를 짐작할 수 있을만큼 마음이 쿨해진다.


인간을 열심히 탐구한 과거의 작가들도 일상 깊이 각인된 여러 인간상의 위계질서와 시대상은 완전히 털어내기 어려웠던 것 같다. 비난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들도 한 시대를 살았던 한 사람의 인간이니까.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이 쓰일 당시, 살아있는 개를 반쯤 해부해서 자극을 살피는 실험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상식으로 개는 감정을 느끼지 않으므로, 지금의 냉장고에 자극 실험을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단다. 내게도 지금은 상식이지만 미래의 언젠가 '말도 안 된다' 싶은 몰상식이 될 수 있는 일상이 있을 수 있다. 밥을 세 끼 먹는 일이 불과 30년 뒤 끔찍한 일이 될 수도 있고, 플라스틱 일회용품을 매일 수십개씩 쓰는 일일 수도 있다. 오늘의 상식과 내일의 상식은 다를 수 있다.






한편으론 남자이기 때문에, 여자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이야기나 문장마다의 뉘앙스 차이가 분명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 사람'과 '그녀' 혹은 '그 남자' 사이에는 분명히 어감의 차이가 있다. 문학 속에서 그것은 향신료와 같아서 이야기의 맛을 더 살리기도 한다.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이나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이 딸들이 아닌 아들들에게 이용당하고 배신당하는 이야기였다면, 그들의 불행이 이 정도로 처참하게 보였을까?

 

딸을 아들로 바꿨다면, 적어도 그 아버지들의 이름은 후손을 통해 남기는 영광이라도 얻었을 것이다. 아들이 아버지의 희생을 딛고 일어서는 이야기는 어쩐지 세상에 흔히 있을법한 이야기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여자였기에 이야기는 더 참혹해졌다. 딸이었기에, 고리오 영감이나 리어왕의 최후가 더 비참해졌다. 더 강도 높은 분노와 허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렇게 애지중지 키운 딸들이 아버지를 '완전히 짜내어져 길모퉁이에 내버려진 레몬껍질 신세'가 되도록 하다니! 그렇게 이야기는 더 특별해지기도 한다.

 

 

여자들의 타락상이 어느 정도인지 그 깊이를 알게 될 테고,
남자들의 비참한 허영심이 얼마나 대단한지도 헤아리게 될 거예요.

 


발자크가 보세앙 자작 부인의 입을 빌려 당시의 시대상을 꼬집은 부분이다. 문장에 감칠맛이 난다. 귀족들도 우아한 백조처럼 물 위에 떠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게 쉴 새 없이 발길질을 하고 있음을 얘기하는 듯했다. 동시에. 사람들이 여자 인간에 대해 얼마나 정절과 청결을 내심 기대하는지 볼 수 있다. 타락은 여자만 하나. 먼 옛날부터 이어져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있는 인간상이다. 바람둥이 남자한테 걸레라거나 너덜너덜하단 욕은 쓰지 않으니까.


'비참한 허영심'은 '허세'에 가깝다. 허세, 가오, 폼 재기 같은 것이 가정 안에서나 혼자 있을 때보다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빠지기 쉬운 늪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 단어가 사회생활의 주체가 되어온 '남자' 사람과 더 잘 결부되는 고리도 보인다. 자동차나 시계, 가방 등의 소품에서부터 의전, 호칭 등 사회적 지위를 보여주는 단서에 민감한 남자들을 주변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남자만 있나? 여자도 꽤 많다. 물론 나는 꼭 허세가 부정적인 늪이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 습기찬 허세는 집단생활에 생명과도 같은 거니까.


나와 너를 포함해서, 인간은 부족하기 마련이고 실수하는 존재이다. 완벽이란 강박은 생명에게 적용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야기 속에는 의식 없이 취하면 위험한. 마약 같은 향신료가 있기 마련이다. 외국 향신료가 힘들게 느껴질 때가 있는 것처럼, 지금 나에게 과거의 감칠맛이 어색할 때가 있다. 그것은 오랜 세월 살아남은 이야기 속에도 당연히 존재한다. 전부 다 섭취할 필요는 없다. 그런 부분은 알아서 거르면서 보자.


오래도록 살아남은 과거의 이야기를

지금 읽으면서 꼭 한 번은

꺼내놓고 싶었던

부분이다.


내가 끄적거린 것들 가운데에도 유통기한 지난 것들이 수두룩하다. 하물며 오랜 시간 살아남은 이야기들에 어떤 독이 있을지 어찌 아는가. 독과 약은 본래 한 끗 차이다.

 

고전 문학 광산 속 굽이진 길에서 질식하지 않고 다이아몬드를 찾으려면, 눈을 더 크게 떠야 한다. 이마에 주름이 지도록. 뭐. 주름은 어쩔 수 없다 치자. 그런데 머리만큼은 아직 젊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미용실에 간다. 머리카락 하나하나 납작 엎드리지 않고 올올이 반항해 보고 자기 의견 가졌으면 한다. 머리에 붙어있는 너희들만큼은 시간에 엎드리지 않는다면.


오래도록 살맛 날 것 같다.


Unsplash - Tim Mosshol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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