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운동장
홈캄인데이가 있던 어느 날 국민학교로 향했다 모처럼 마음을 다잡고 예전에 살던 집 앞에서 그냥 학교가지 걸어보기로 했다 내가 얼마나 달라진 느낌을 느끼게 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옛날 국민학교에 다니던 때 살던 집은 내 친구 친정아버지가 살고 있었고 대문은 살짝 열려 있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대문으로 올라가던 높은 계단은 사라지고 없었다 서너 계단을 올라가면 바로 대문이 있었다 아마도 새로 집을 지으면서 축대를 내려쌓았나 보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면서 예전에 있던 도랑은 이미 땅으로 변해 누군가의 집으로 변해 있었고 생각보다 학교 가는 길은 멀지 않았다 어른 발걸음으로는 2-3분이면 족히 가는 거리였다
그런데 국민학교를 다닐 무렵에는 그 거리가 그렇게 멀리 느껴졌을까 온갖 볼거리가 많아서 문방구며 길거리 군것질거리까지 다 둘러보고 오면 30분 이상은 족히 걸렸던 것 같다 방향이 바뀐 학교 정문을 열고 들어서자 멀리서 철봉대가 보였다 참 신나게 놀던 곳이었는데 지금 보니 저 좁은 구멍들을 잘 도피해 다니면서 잡기 놀이를 했었네 라며 스스로 놀라곤 했다
예전에는 아주 큰 운동장 같았는데 이제와 보니 크다는 느낌은 없었다 운동장이 저렇게 조그만데 어떻게 그 많은 아이들이 입학을 하고 졸업을 했을까 한 학년이 10반까지 있었고 보통 한 반이 60명 이상을 꽉 채워 있었으며 오전 오후로 나뉘어서 3학년까지는 수업을 했으니 교문을 드나들던 아이들의 수는 짐작을 하게 된다
우리는 늘 운동장이 바글거려서 그 이유를 몰랐지만 뒤늦게 우리는 1차 베이비붐 세대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운동장에서는 구슬치기 고무줄놀이 피구 축구 농구 등 다양한 공놀이를 하곤 했다 기억이 나는 것은 친구들이 고무줄노리를 하면 꼭 어느 남학생이 달려와서는 칼로 고무줄을 끊고 달아나곤 했다 그 남자아이는 그다지 장난기가 많은 아이도 아니었는데 내 친구들이 놀면 어디선가 나타나서 고무줄을 끊고 달아나는 약간 좀 이해가 불가한 아이가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날부터 그 아이가 나타나면 동시에 잡고 있던 고무줄을 놓아버렸다 그러면 순식간에 그 아이는 어쩔 줄 모르다가 도망가고 우리는 모래를 던져 방어를 하곤 했었다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그 남자아이의 심보는 무엇이었을까 지금 생각해도 모를 일이다
고학년이 되자 운동장은 학교수업이 끝나면 피구놀이로 한창이었다 운동회가 가까울수록 학년끼리의 피구 시합에서 이기고 싶어서 각자가 개인기를 연습할 겸 늘 함께 놀았다 피구는 잘하는 아이와 못하는 아이의 차이가 너무 심해서 각자 잘하는 아이들을 자기 팀으로 섭외하려는 가위바위보에서 키가 큰 축에 속하고 운동신경이 발달된 나는 언제나 제일 먼저 뽑혔다
최후로 남아서 점수를 올리는 것은 나의 몫이었다 가끔씩은 이러한 작은 경쟁조차도 압박에 시달리기도 했다 내가 들어 있는 경우는 대부분 이겼지만 그래도 강적을 만나면 간혹 지기도 했다 때문에 경기에 지고 나면 한동안 꿈속에서도 적으로 빙 둘러 싸인 채로 혼자남아 코너에 몰린 내가 공을 얼마만큼 받아낼 수 있느냐에 따라서 점수가 올라가기 때문에 가벼운 두려움과 내가 마지막으로 남아 우리팀이 끝내 이겨낸 에 순간들을 상기하면서 그 추억에 휩싸이곤 했다
학교 운동장은 추억을 담기에 너무 작았다 그 많은 추억들을 이 조그만 운동장에서 쌓았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추억은 사람의 나이만큼 자라지 않고 제자리에 있나 보다 아주 작은 운동장을 돌아보면서 내가 마치 걸리버여행기의 거인이 된 것처럼 뚜벅뚜벅 학교 운동장을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예전의 학교 운동장 뒤편에 있던 매점은 학교 본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학생 수도 반토막으로 줄었다 그러다 보니 교실이 남아돌고 자연이 교실은 다양한 실습실들로 채워져 있었다 국민학교는 흔적도 없고 대신 초등학교라는 교패가 떡하니 이곳저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한 번쯤은 이전에 다니던 학교 교정을 걸어보는 것도 의미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얼마나 자랐고 오래 살았는지에 대해 스스로 그 확인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