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김지숙 작가의 집



키는 곡물을 까부러서 쭉정이나 티끌을 골라내는 농기구의 일종이다 그런데 오래전에는 농사를 짓지 않는 도시에서도 이 키는 필요했다 왜냐하면 요즘처럼 곡식이 돌을 하나도 없이 다 골라내고 파는 것이 아니라 돌도 제대로 골라내지 않은 상태에서 파는 경우도 자주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거제도가 고향이던 엄마의 친정에서 자주 곡식을 보내오곤했기 때문이다

우리집에서 키는 항상 창고의 입구에 걸려 있었다 그리고 어린 시절 철들기전 오줌 한번 싸지 않고 자란 사람이 어디있을까 내가 기억하는 한 아마도 국민학교도 들어가기 전 교회유치원도 다니기 전 대문 바깥놀이는 하기 전 집안에서만 놀았던 가장 어린 나의 어느날 아침 나는 무서운 꿈을 꾸고 오줌을 쌌던 모양이다 당시의 기억은 이것외에는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릇 하나를 주면서 키를 머리에 씌우고 현관 밖으로 내보내더니 아랫채 순이네 집으로 가라 했다 영문을 모르던 나는 키를 쓰고 그릇을 들고 그 집으로 갔다 그 집 엄마는 말없이 빙그레 웃으며 소금을 담아주고는 가라길래 창피한 마음이 돌아서는데 빗자루로 엉덩이를 가볍게 내리쳤다 나는 깜짝 놀라고 부끄러워서 울면서 그 집 부엌을 나왔다 그리고는 집으로 돌아와서는 방으로 달아났다 엄마는 그 모습을 보면서 또 오줌을 싸면 동네 밖으로 소금 얻으러 보낸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너무 충격을 받았고 가장 어린 날의 기억 중 하나로 남았다 그리고 두번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기억을 갖고 자라는 동안 내 동생은 두세번을 키를 쓰고 아랫채며 옆집을 소금 얻으러 다녔다 그런 날이면 어김 없이 오줌 싼 요가 마당에 걸리고 집으로 놀러온 사람들은 또 누가 오줌을 쌌는지 묻곤 했다 키를 쓰고 소금을 얻으러 가는 동생을 바라보면 나는 내 기억을 떠올렸고 지금도 가끔씩 시골에서 키를 보면 어린 시절의 나 오줌 소금 창피함과 더불어 만감이 교차하는 추억을 떠올리게 된다 덕분에 윤동주의 오줌싸개 지도라는 시도 더욱 실감나게 와닿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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