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독간
통도사의 서운암에 가면 수많은 장독이 일렬로 잘 정돈된 모습을 본다 그럴 즈음 나는 내 어린 시절 엄마의 장독간이 생각난다 서운암의 장독간처럼 그렇게 양이 많지는 않았지만 크고 작은 장독들이 장독간 안을 꽉 메우고 엄마는 이리저리 비켜가며 장독 속의 고추장 된장 막장 등을 담고 퍼 곤 했다
해가 비치는 맑은 날이면 장독뚜껑을 열고 비가 내린 다음 날이면 장독을 정성껏 닦곤 했다 어린 눈으로 보는 내게 엄마에게 장독간은 정말 애지중지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엄마가 장독 뚜껑을 열어두고 마실 간 사이에 친구들이랑 된장이며 고추장을 찍어 맛을 보며 엄마의 흉내를 내곤 했다
장독간 주변에는 커다란 물통이 있었고 날아든 씨앗들이 낮게 꽃을 피우곤 했다 채송화 봉선화 접시꽃 같은 아버지의 정원에서 키우던 꽃들이었다 그중에서도 나는 채송화가 낮게 피고 해마다 조금씩 주변을 번져나가면서 장독간의 아랫도리를 예쁘데 장식하는 것이 참 기뻤다
어린 시절 살던 그 집은 내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이사를 했고 이가를 나가자 마자 그 집은 모두 헐려 다시는 볼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나의 기억 속에 그 집은 너무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긴 계단을 오르면 모래 위로 그네가 흔들거리고 작은 도랑물이 맑게 흐르는 넓은 마당 주황빛 붕어떼가 한가득 한 연못 송충이가 먼저 알고 반쯤 먹어치운 열매가 더 많있던 앵두나무 낮게낮게 잎 뒤에 숨어서 열매를 달던 달디단 딸기 다자란 감이 자고나면 뚝뚝 떨어져 애를 태우던 감나무 무화과 나무 다양한 종류의 국화 봉선화 채송화 접시꽃 장독간 엄마의 장독간을 닮은 장독들을 보면 언제나 나는 그때의 그곳으로 돌아간다 언제나 반질반질하게 잘 닦인 장독간과 그 장독간에서 행복한 엄마의 모습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