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자의 교만과 잃은 자의 분노

by 김지숙 작가의 집

가진 자의 교만과 잃은 자의 분노



세상을 살아가는데 아무 덕이 되지 않는 감정이 바로 가진 자의 교만과 잃은 자의 분노가 아닐까 가진 자의 교만은 가지지 못한 자에게나 혹은 여태 가져 보지 못한 자, 가져보고 잃은 자에게조차도 이해되지 않는 감정이며, 자칫 상대에게 상처를 주거나 영원히 용서되지 못하는 감정을 품고 살게 만든다

세상에는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고 간혹 뜻한 바를 이룬 자들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경우를 맞게 된다면, 그리고 그 사람이 설익은 인품을 지닌 교만 덩어리라면 더우기 피하기에 급급하다면 함께 살아내기란 힘들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굳이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사이라면 참고 인내하며 바뀌기를 바라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럴 필요가 없는 경우에는 가급적 함께 하는 시간을 줄이거나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 상책이 될지 모른다 왜냐하면 가진 자의 교만은 시시 때때로 비수가 되어 가슴을 찌르기도 하고, 묘하게 감정의 미세혈관을 끊어 위급한 상처를 내기 일쑤이기에 삶의 의욕마저 저버리게 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가졌다고 해서 다 그런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지고도 성숙한 사람들은 참으로 다정하고 따뜻하고 배려심 깊으며 인품 있게 행동하는 노블리스오블리주의 영역에 속하는 사람들을 가뭄에 콩나듯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류의 사람들을 만나기란 정말 쉽지 않다 그렇다고 영 없지 않지만 그 깊은 내면에 어떤 교만을 누르는 더 큰 영웅심 비슷한 그 무엇이 있는 것인지 혹은 정말 그게 진심인지는 꽤 여러 번을 만나야 알 수 있는 감정이기도 하다

가진 자라고 해도 무난하게 겉으로 하는 행동이 예의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그나마 지내기에 불편한 정도는 아니지만 교만의 이빨을 수시로 드러내고 <내가 냅네>하며 혹은 <내가 너의 우위네>라는 자신의 감정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경우에는 그간 쌓아온 온갖 정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자괴감이 느낌이다

우주에서 바라보면 인간의 부와 생명은 도토리 키재기에 불과하며, 한점 먼지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우리는 자신들의 삶을 끝없이 비교하고 비교당하며 살아가고 있으며, 교만하거나 비굴해하며 자신의 처지에 알맞다고 생각하는 행동들을 서슴없이 하고 있다

나이대별 평준화의 법칙이 있다고들 한다 40대는 욕망의 평준화, 50대에는 지식의 평준화, 60대에는 외모 학벌의 평준화, 70대에는 성의 평준화, 80대에는 부의 평준화, 90대에는 생사의 평준화, 100대는 자연 속의 평준화라는 말들을 하곤 한다

미모란 부지런하게 성형외과를 드나들거나 가꾸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0대가 지나면 누구나 자신이 가진 외모에 대해 스스로가 노화를 얼굴로 가장 먼저 느끼기 마련이다 요즘에야 우리나라 60대는 예전에 비해 혹은 열대지방 사람들에 비해 10년은 족히 덜 들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부의 평준화도 건강이 뒷받침 될 때 이야기이다 60대에도 요양원에서 보내는 사람들에게 부란 무슨 의미이며 지식이나 학벌 외모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따라서 사람마다 다 다르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나마 딱히 기준을 정한다면 평균적으로 그렇다는 이야기이며, 그 평준화를 맛보기 위해서는 무조건 건강하게 오래 살면 이기는 인생법칙인 셈이다

또한 요즘이야 다르겠지만 60대면 대체로 사회생활을 접고 퇴직하는 시기이니 만큼 학벌에 대한 자각조차도 흐려지는 나이이니 만큼 그럴 수 있고 학벌이 더 이상 사회 생활을 하는데 어떤 이점이나 감점으로도 작용하지 않는 시기인 만큼 평균을 넘어섰다고 해도 부족하다고 해도 별반 차이가 없는 시기인 셈이다

누구나 나이가 들고 살면서 높은 산처럼 여겨지던 어떤 기준들이 저절로 낮아져서 혹은 높아져서 혹은 필요의 의미를 상실하면서 자연 속으로 사라지는 비슷한 결말을 가져오게 된다 이런 삶을 살다 가는 것이 인간이고 그 삶 속에서 정말 더 나은 삶을 산다고 달라지는 점은 무엇일까

여태 무언가를 한껏 지니고 살다가 단한순간의 잘못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들은 그런 사람들의 심정을 겪어보지 않아서 전혀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 그기에서 생겨난 분노는 그것이 어디를 향하든 다량으로 드러난다면 스스로나 혹은 주변 사람들을 잃게 만드는 독이 된다 가진 자의 교만만큼에 해당되는 해악을 끼치게 된다

가져 본 사람 올라가 본 사람들은 그만큼의 자리에서 뭘 보는 지를 알기 때문에 그 눈높이를 낮추기는 쉽지 않다 경제적이든 인간관계에서든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자들 보다는 어느 순간 한없이 낮아진 자신의 삶이 보잘 것 없고 하찮은 느낌이 들어 견디기 쉽지 않다

그 분노의 향방은 자신을 향한 것일 경우가 가장 큰 원인이 되기 쉽다 하지만 분노의 향방이 자신이든 타인이든 사람에게로 돌리기보다는 상황에 맞추는 노력을 하게 되면 훨씬 용서가 쉬울 수 있다 사람이 아니라 잃어버린 상황을 재현하고 정리하는 것으로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는 지혜를 애써 찾고 누려야 한다

특히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주변인의 영향으로 하루 아침에 생의 사다리가 무너지고 계층이 바뀌는 경우라면 너무 억울해서 견딜 수가 없다면 더욱 이러한 생각에서 멀어져야 한다 <나의 잘못이 아니야 그래 너의 잘못도 아니야>라고 생각을 다 잡고 살아 가야 한다

다만 확실히 다행인 점은 올라 간만큼은 어떻게 올라가는지 그 길만큼을 확실히 깨달은 게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 분노의 방향을 사람에게 돌리지 않고 상황으로 돌린다면 그 분노는 시지프스의 돌처럼 몇 번이고 다시 자신의 분노로 자기 인생은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게 만들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돌의 노예, 분노의 노예가 되지 않기로 결심하는 통 큰 결단을 내리고 그 분노(시지프스의 돌)를 내려놓고 다시 길을 나서는 행동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결국은 자신이 만든 분노에 떠밀려 내려오는 일이 반복되어 스스로를 죽게 만들기 때문이다

결론은 가진 자의 교만이나 잃은 자의 분노는 동급이다 교만 역시 자신이 만든 돌덩이로 끊임없이 밀려 올려도 그 교만은 다시 원래의 위치로 떠밀려 내려올지 모르는 불안감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고 그 교만으로 그 불안을 순간순간 잠재우는 어리석음을 범한다

가끔씩 가진 자의 교만덩어리를 접하면서 그것이 극에 달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 이제 저 교만도 끝장을 보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잃은 자가 분노를 끝없이 자신이나 타인을 향해 보내면 <결국 죽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고 분노의 화살을 허공으로 날리고 과거를 전생처럼 잊고 전혀 새로운 길을 걷는다면 <이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겠구나>라는 판단을 하게 된다

남보다 더 많이 가지고도 여전히 더 가지지 못해서 안달복달하는 사람들의 욕심이나 교만이 가득 찬 사람이나 그리고 잃은 자의 극에 달한 분노는 결국 자신을 해치는 시지프스의 돌덩이를 밀어 올리고 또 밀어 올리는 어리석음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에 불과하다 내려놓지 못하면 달리 길이 없는 영원히 반복되는 뫼비우스의 양면이 되기도 한다

잘 살고 싶다면 먹고살 만큼 가진 자라면 배려와 양심 이해와 아량이라는 덕목을 지니고 좀 더 여유 있고 편안하게 주변을 살피며 상처를 주지 않는 방식으로 살아갈 필요가 있으며, 대부분을 잃은 자라고 해도 목숨이 붙어 있고 건강하다면 아니 건강을 회복할 정도와 그런 의지를 가졌다면 쉽지는 않겠지만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목표치를 낮추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된다

누구 좋으라고 생을 포기하고 생의 목표를 내려 놓을 것인가 세상에 펼쳐진 수많은 길 중 하나를 선택하여 우선 살아 남아야 하고, 살아남아 생존하는 가운데서 떠밀려 내려왔던 그 길을 다시 복기하면서, 잘 잘못을 챙겨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의지를 굳혀 그 보다 더 나은 길을 찾아 나서는 것이 그나마 주어진 환경 속에서 가장 잘 살아내는 방법은 아닐까

세상에는 자신만큼 소중한 사람은 없다 아무리 부자라고 해도 죽어 사라지면 무슨 소용이며, 아무리 억울하다고 해도 세상을 등진다면, 그 억울한 사연은 그저 죽어 없어진 사람들의 수많은 일화에 불과하다 결국은 살 수 있는 만큼 살아서 하고, 또 다시 시도하고 끝없이 시도하면서 생존이라는 발판을 딛고 결국은 다시 일어나는 것이 중요하다

살아있는 동안은 수많은 방법과 노력을 하면서 목표를 향해 죽지 않을 만큼 열심히 시도하고 결국에는 그 목표를 이루어 가진 자의 품위와 여유를 누리며 살길 바란다 또한 이전의 자신처럼 잃은 자의 분노의 방향을 달리 틀고 새로운 길을 여는데 작은 힘이라도 보태는 여유를 부리 것도 괜찮은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되는 방법이기도 하리라

그렇게 한다면 바로 그 사람이 정말 인생 후반을 멋지게 잘 사는 사람들이리라 믿는다 어떤 경우에도 결코 교만하지 말며 더 더욱 분노하지 말자 이는 내가 나를 살리는 방법이며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며 나를 위해 나에게 하는 말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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