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향

by 김지숙 작가의 집


실향



어제 오늘 흐린 날의 연속이다 이런저런 혼란스럽고 복잡하고 유치한 일에 휘말려 내 마음이 흐린 오늘은 내게 평온을 선물하기로 했다

고향이란 언제든 달려가면 푸근한 가슴으로 나를 반기는 곳이다 산천 초목 고향 사람 돌멩이조차도 그랬다 그래서 타지에 살면 고향 사투리만 들어도 마음이 쿵쾅거리고 고향 까마귀만 만나도 반갑다 까마귀가 어디 출신인 줄 누가 알겠냐만은 고향에서 본 적이 있으니 그냥 고향의 추억을 끌어내는 힘을 믿고 그렇게 말하는 것이리라

그런데 많은 현대인은 가슴이 메마르고 팍팍하고 여유가 없다 타인에 대한 배려심도 없고 자신에 대한 배려심마저도 없다 이유는 실향민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어디에 무엇을 잃고 살아가는지 무엇을 담고 살아가는지 그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고 살아가는 사람은 대체 얼마나 될까

요즘 사람들은 산후조리원 동문에서 시작해서 요양원 동문으로 끝나는 인생을 살다 간다 그래서 고향인 산후조리원으로 돌아가지 못하니 자연히 더 팍팍한 인생을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실향의 시대에 아예 고향이라는 존재 자체를 망각하고 사는 사람들은 너도 나도 실낱같은 힘만 가지면 열심히 휘두른다 이 얼마나 허망하고 유치한 줄 자신만 모른다 그리고 그게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헛짓인지 그 휘두르는데 본인이 다친다는 사실을 본인만 모른다

어디에도 고향이 없어 실향민들이 똘똘 뭉쳐 거짓 고향을 만들고 그 거짓 고향 안에서 가증스러운 거짓 고향을 이야기한다 누구나 진심을 외면하고 마음을 잃어버리면 실향민이 된다 그런 줄 모르고 그곳에 장기 거주하면서 고향을 운운한다 어불성설이다 가짜 고향을 만들고 가짜가 판치는 세상은 정말 무섭다

누구나 진심을 잃어버리면 마음이 허한 실향민이다 한자리에 모여 같은 뜻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다른 사람을 품을 여유가 없다 목적을 위해 거짓과 참이 뒤범벅된 채 여러 얼굴을 여기저기 내밀며 간간이 살아가기도 한다

그래 그게 뭐 나쁘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 절대로 나쁘지 않다 하지만 자신이 아닌 것을 가로챈다는 것 휘두른다는 것 짓밟는다는 것 이용한다는 것 괴롭힌다는 것 등의 타인 학살 행위들만 배제된다면 중간은 간다

그래 그냥 가만 있으면 중간은 간다 어떤 경우는 중간이 제일 나을 수도 있고 운이 좋으면 중간이 최고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자기 기만을 통해 실향이 가지는 팍팍함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그로써 인격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는데도 그 부끄러움은 남의 몫 인양 던져버리고 모르는 척 살아가는 사람들과 고향을 말하면서 과연 얼마나 더 오래갈 수 있을까

어제 오늘 관계에 대하여 많은 고민을 하게 되는 날들을 보낸다

괜히 어이없이 얽힌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무의미에 시달린다 정말 시시하다 못해 유치하다 한줌꺼리도 안되는 관계에서 오는 이 어이없는 피곤함을 어떻게 풀어야 하나

그래서 결론은 내가 생각하고 내기 기억하는 고향은 어디 있을까

치열하게 살아가도 하루가 모라자는 지금의 내게 그 따위 시시한 실향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전 08화관계의 안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