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경

by 김지숙 작가의 집


바람경



문밖으로 떠나 온 경 읽는 소리

음각이 밀려들고 활자가 살아나

감춘 말 안에 더 깊이 숨는다


순산한 기억

타지도 녹지도 않는 번뇌


단단하게 뭉치고

엉긴 오욕이 낸

길 앞에 선

정수리의 고요를 싸락 껴안는다


하루가 가고

다시 하루가 튀어 오르며

끈질기게 반복되는 오늘,

바람의 숨소리로 경을 읽는다



내원사 주변 천선상 자락에 작은 암자가 있다 한때 함께 공부하던 학우를 따라 그곳에 간 적이 있다

매우 작은 암자이지만 마치 작은 시골집 같았다 길도 잘 나지 않은 곳이라 산언덕 비스듬히 나 있는 길은 어렴풋이 낙엽들이 덮혀 있었고 이 길을 따라 올라가면서 바람 소리인 듯 불경소리인 듯 비구니의 목소리를 들었다 특정 구절이 나와야 천수경인지 반야심경이 아는 수준의 내게는 어떤 게송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 때가 사시불공 시간이라는 말을 들었다

사시불공? 이라고 묻는 내게 사시공양은 아침 9시-11시 사이의 시간으로 수행처에서 일곱 집을 걸식하고 다시 수행처로 돌아와 공양 드신 시간이라 대개의 절에서는 '마지예불'이라고도 말한다고

지극한 마음으로 머리를 숙이고 공양을 올리는 지심정례공양으로 천수경이나 여러 게송으로 시작한다고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바로 앞에 보이는 절집으로 산을 올랐다

반갑게 맞은 학우의 이모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산을 내려와서도 어떤 말들을 나누었는지 생각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다만 산길을 오르며 들었던, 신비롭기까지 했던, 게송은 바람이 읽는 경처럼 귀가에 들려오던 맑고 너무 맑아서 구슬프기까지 했다 그때의 비구니의 게송은 오랜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고 기억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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