득도 입문, 혹은 허물벗기

by 김지숙 작가의 집

득도 입문, 혹은 허물벗기



여름 가뭄의 낙엽처럼

느티나무 가지에 딱 붙은 매미 허물

오랜 인내의 결과물인가 풍요를 위한 번제물인가

이루지 못한 일로 욕심 비우는 법을 배운다


높은 산을 오른 이도

벼랑 끝에 서면 모두를 내려놓는다

많은 것을 가지면 쉬이 날지 못하고

높은 곳을 바라면 한 번도 쉴 수 없다


익선관은 고사하고

품은 것이 없다고 가벼이 못 날까

땅 밑에서 17년,

수액을 빨다 생전 처음 나뭇가지 위로 올라와

제 허물 어디 걸지 모르는 어린 선연처럼


세상에 첫 발 내밀고

두꺼운 허망을 사람에게 걸까 노을에 보낼까

사방천지 헤매던 날,


걸림과 번뇌 넘어 사려를 끊고 정적을 쫓아 무아에 들고 혼돈이 사라지는 합일의 경지에서 눈꽃이 휘날리는 무위경지까지는 아직 한참 멀었다 나도 모르게 수시로 내 몸 안으로 고여 드는 번뇌의 시끄러움 번번이 벗겨내는 소소한 낮의 일상



시에서 하는 말 그대로이다

아주 오래전에 쓴 시이고 아주 오래전에 일어난 일에 대한 감정들이다 사는 대로 살다가 처음 낯선 세상에 홀로 발을 들여놓으면서 온갖 두려움과 질시 뭐 그와 비슷한 여러 감정들에 시달린 적이 있었다 그 시달림의 문제도 답도 너무 잘 알고 있었지만 나는 그 답을 쓸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세상에는 아무리 노력하고 애를 써도 안되는 일이 있다는 것도 그 때 알았다

말하자면 경력단절 여성의 비애라고나 할까 당시에는 그런 뭔가가 있어 보이는 용어도 쓰지도 않았다 다만 '솥뚜껑이나 운전하지 뭐 하러 뒤늦게 여기 나타나서 혼란스럽게 하느냐'는 등의 말은 예사로 앞담화로 뒷담화로 수도 없이 들었다

그런 말들을 들으면서 임 시작한 다른 사람들과 어깨를 나랗니 하고 그 다른 출발점에서 시작한 나를 힘들게 했다 나는 그곳에서 나의 '인생의 답'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당황했고 늘 내가 설자리는 어디에 있는지 계속 앞으로 가야 할지 물러서야 할지 나의 중심은 어디에 두어야 할지 장작 중요한 일은 제쳐두고 입살에서 힘들었던 적이 있었다 '욕이 배따고 들어오는 것도 아니다' 면서 스스로를 위로하고 때로는 입살에 의연해 하기도 했지만 그것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이 훨씬 더 많았다

잘 하면 잘 할수록 입살의 소음은 더 커지고 못하면 못하는 일에 칼끝은 즉각즉각 무시로 더 가까이 와 닿았다 곁을 주는 사람은 없었고, 도를 통하는 길밖에는 살아남는 법을 알지 못했다 그 상황은 마치 17년 동안 나무뿌리 수액을 빨아먹으며 애벌레로 살던 매미가 처음 성체가 되어 땅 밖으로 나와 어디에 앉을지 헤매는 모습을 닮아 있었다

이런저런 수많은 일들로 나는 어쩌면 지금쯤 그런 일에는 완전히 도가 통해야 하는데, 여전히 유사한 작은 일들이 일어나면 도 통함과 도 통하지 못함의 가운데서 천칭 저울의 추처럼 오가며 흔들리고 있다 트라우마를 믿지 않지만 데자뷰나 기시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유사한 일이 생기면 그 때의 일들이 흑백사진 속에서 떠오르지만 생명감을 가진 기억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그 어떤 일이 있어도 그리 심하게 흔들리지도 그 따위의 입살에 흔들릴 일도 없다 그리고 이제는 그런 사소한 일들은 지나가는 구름이고 가끔 비구름도 섞여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조차도 삶이라는 것을 알고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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