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詩集 『거침없이 내게 왔다』
일상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에
가슴은 휑하니 비어간다며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너의 말들이
오늘은 먼 곳에서
한 걸음에 달려와 내 앞에 서 있다
한 걸음 따라가면
또 한 걸음 멀어지고
한나절 멀어지면
한나절 따라가다
기어이 혼자가 된 삶들이
자꾸 쫓아온다고 말한다
누구나 하루는 거기서 거기야
아무 일 없이도 지나가고
무수한 일들로 지나가고
지나가고 나면 오늘은 부서지고
입을 쩍 벌린 내일이 오는 거라고
그 입안에서 살아가는 거라고
주름진 하루는 그렇게 사라지는 거라고
마음쓰지 말라고 자꾸 말한다
어떤 날은 그날이 그날처럼 다르지 않다 그러다 보니 요일 감각과 날짜 감각이 흐려진다 하지만 밥은 끼니때마다 다른 걸 먹으려고 노력한다 그냥 무의미하게 변화 없이 하루를 보내고 싶지 않아서 먹는 걸로 변화를 주기로 했다. 아침은 가급적 최대한 잘 먹고 점심 저녁으로 갈수록 가난한 밥상이 된다 요즈음은 밥을 먹을 때에도 TV를 잘 켜지 않는다 보고 싶은 방송이 거의 없다. 간혹 채널을 고정시키고 있는 것은 여행 방송이나 자연과 관련된 삶들을 조명한 내용들을 본다
종일 컴퓨터를 켜놓고 산다 모니터와 눈을 맞추고 자잘한 글들을 쓰면서 시간을 보낸다 컴퓨터 속의 세상은 무궁무진하다 그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때로는 다정하다 차가운 기계 속이지만 따뜻한 말들이 오가는 것은 감사할 일이다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는 것은 일출의 풍경이 바뀌기 때문에 단조롭지 않다 늘 다른 얼굴로 다가와 반가운 마음이다 오늘도 여태 본 적이 없는 얼굴로 동쪽 하늘을 빨갛게 물들이고는 돌아서 다시 보면 완전히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자명종이 필요하지 않은 나이가 된 것 같다 날이 어둡기가 무섭게 잠이 오고 날이 밝기 전에 일어난다 가계부를 써 본 적도 없지만 여전히 그런 것을 쓰지 않는다 단조롭고 변화가 없는 일상이지만 일어나서 생각하면 또 전혀 다른 하루가 펼쳐진다
음식을 만들 때에도 볶거나 굽기보다는 찌거나 삶거나 생으로 먹는 식품이 늘어난다 게을러지기보다는 볶거나 굽는 냄새가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다 팬을 틀고 창문을 열어야 하는데 날이 무지 추워서 그러고 싶지 않다
친구에게 전화라도 오는 날이면 말이 길어진다 자잘한 내용이지만 섬세한 마음놀림이지만 전화기 너머로 다 건너온다 주고 받는 내용들이야 일상사이지만 그 일상을 딛고 살아내야 오늘이 있고 내일이 있다
'살아지는 것'과 '사라지는 것' 오묘한 우리 말들이 일상 속을 헤집고 날아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