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詩集 『거침없이 내게 왔다』
겨울바람
늘 처음인양
마음껏 흔들어 놓고는
흔적 없이 사라지더니
보이지 않는 길 따라
불현듯 찾아와서는
커다란 가슴 열어
'품어줄게'
라고 말하며
춥고 창백한
자작나무 겨울 숲을
마구 흔든다
이곳에서 보이는 창밖 풍경은 오른쪽에는 소나무 숲이 왼쪽 멀리는 자작나무 숲이 섞여 멀리 바다가 보인다 가을이 들고 겨울이 오면서 자작나무 잎들이 하나둘씩 떨어지기 시작했고 지금은 거의 가지만 앙상한 채로 온몸으로 바람을 맞고 섰다
가을의 자작나무 숲은 마치 잎들이 황금빛 열매를 단 것처럼 햇빛을 받는 모습이 아름답다 처음에는 열매가 열린 줄 알았지만 자세히 보니 잎들이 바람을 안고 반짝이는 것이었다
자작나무가 사는 겨울 숲은 무시로 바람이 지나다닌다 소나무가 많은 곳은 바람이 많으면 잎들이 흔들리고 가지도 따라 출렁거려서 바람이 온 줄을 알지만 잎을 다 떨군 자작나무 겨울숲은 어지간해서 바람이 불지 않고서는 바람이 부는지 아닌지 알기 어렵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바람도 나무 따라 달리 부는 건가 나무가 바람을 달리 맞는 건가 바람이 주체인지 나무가 주체인지 생각하다가 문득 자작나무의 매력이 바로 어지간한 바람에도 꿈쩍 않는다는데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하얀 몸뚱이를 길게 뽑아 올려 키가 큰 아이들처럼 함께 자라서 더 올곧게 바스락거리며 빛나는 모습을 보면서 함부로 아무나 함께 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보면서 자작나무는 저들끼리 도란도란 밤새 속삭인다 하얀 몸통과 가지가 보름달 밝은 달빛 아래서 빛나는 모습이 옥골선풍 인양 환한 세상을 만들어 바라보기만 해도 눈이 부시다
자작나무 숲을 보면 백석의 시 <백화白樺>가 생각난다 산골집의 기둥도 문살도 장작도 박우 물도 모두 자작나무로 만들었다는 평안도 땅이 보이는 자작나무 숲 산골집을 그려본다 어쩌면 내가 그런 산골집에 지금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자작나무가 있는 겨울 숲 속 마을에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눈이라도 펑펑 내려 허벅지까지 빠져드는 날은 자작나무 숲으로 들어가서 백석의 시 <백화白樺>를 생각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