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

by 김지숙 작가의 집

시집詩集 『거침없이 내게 왔다』





화두




까치였다가

군불이었다가

도토리였다가

낙엽이었다가


죽어 만나는 것

살아 만나는 것

사랑으로 만나는 것

미움으로 만나는 것

불러만 보는 것

눈으로만 보는 것


볼 수 없는 것 혹은 있는 것

생각할 수 없는 것 혹은 있는 것

느낄 수 없는 것 혹은 있는 것


저 편에 흙으로 늘려 있는 당신들




세상을 살면서 누구나 자의든 타의든 어떤 단체에 속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속한 단체에서 100% 만족하고 살아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왜냐하면 크든 작든 한 단체를 이끌어가는 영향력은 언제나 몇몇 사람 혹은 단 한 사람의 의지와 역량에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러한 상황에 만족하는 사람은 한데 어울려서 잘 살아가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아웃사이더가 되거나 혹은 찬밥 신세가 되거나 혹은 개밥의 도토리 신세로 전락하여 견디다가 자연스레 관계가 멀어지고 도태되어 단체에서 떨어져 나가게 된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떨어져 나갈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하고 어정쩡한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에는 고통이 따른다 큰 힘이 좌우하는 본류에 휩쓸려 들어간다고 해도 텃세가 만만찮다 그럴 경우에는 그 텃세를 감당하고 그 본류에 합류하거나 아니면 스스로 도를 닦아서 주변에 초연해야 한다

그래서 도를 닦는 과정에서 보면 앞에 놓인 한 사람 한 사람을 어떤 사물에 빗대어 생각하기도 하고 또 어떤 생명체에 빗대기도 하고 눈으로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존재로 변해 버리기도 한다 사실은 그 대상들은 그대로 있지만 그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그들은 사람이라기보다는 사람이 아닌 존재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어쩌면 그래야만 그들과 함께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없는 사람 취급하거나 투명인간이나 좀비 정도로 치부하고 룰루 랄라 잘 지낼 수도 있다 나름의 도를 터득한 사람이라야 가능하겠지만. 그런 정도의 신경 쓰임을 감수하고라도 그 단체에 굳이 남아 있어야 한다면 그렇게 하면 된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뒤도 돌아볼 필요 없이 돌아서 나가면 된다

하지만 자신의 인내심을 테스트하고 싶거나 도를 통하고 싶으면 혹은 그런 모든 일들을 감수하고도 남을 가치가 있는 단체라면 그 사람들과 한번 잘 지내도록 노력해 보는 것도 자신의 의지를 실험할 수 있는 기회이니 만큼 가치가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해 볼만할 지 모른다 과연 얼마나 그들과의 관계를 잘 버틸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면서.


전화기 너머로 관계에 대한 깊은 회의를 호소해 온 친구에게 말했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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