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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부아내 Jan 01. 2025

폭망한 첫 배추농사

전지적 초보농부아내 시점


첫번째 비닐하우스를 임대해 밤호박 농사를 지으며 어렵게 집과 땅을 구했다. 오래된 농가주택은 약간의 보수를 거쳐 이사를 했고, 1400평의 빈 땅은 방치되었다. 처음 해 보는 밤호박 농사에 집중하느라 집 옆의 땅은 잡초가 우거져 숲이 되어가고 있었다. 마침 김장배추 정식 시기가 다가오고 있어 멘토 어르신의 추천으로 김장배추를 심기로 했다.


임대한 비닐하우스에서 봄 재배 밤호박은 수확이 끝나고 그 자리에 깨를 심어 자라고 있었고, 집 옆의 땅엔 김장배추, 그리고 두번째 임대한 비닐하우스 3동엔 가을재배 밤호박 심을 준비를 해야 했다. 당시에는 상상할 수 없는 스케줄의 농사였다. 이 많은 걸 동시에 한다고???? 멀티플레이어인 초보농부님은 가능한 일이었으나, 한 번에 하나씩만 처리가 가능한 초보농부아내는 멘붕상태였다. 급한 불부터 차근차근 꺼 나가기로 했다.



아무리 초보라도 이러면 안됩니다

배추밭을 준비하기 위해 마을에 트랙터를 가지고 계신 분께 부탁했으나 대부분 배추 심을 준비를 하느라 그분이 너무 바쁘셨다. 어쩔 수 없이 초보농부님은 관리기로 1400평의 땅을 여러 번 왕복하며 갈아엎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 있는 동안에는 내가 네기(쇠갈퀴)로 평탄화 작업을 시작했지만 1400평을 혼자서 평탄화하기란 한숨만 나오는 작업이었다. 결국 네기 두 개를 엮어 농부님이 한 마리 소가 되어 평탄화 작업을 했다.



2017년



평탄화 이후 초보농부님과 둘이 비닐 덮는 작업만 해야 할 것 같아 아이들을 봐주십사 시어머니를 소환했다. 애들을 봐 달라고 부탁했는데 일손이 부족해 어머님도 비닐 덮는 것부터 정식까지 함께 했다. 외국인 노동자라도 고용해 작업했다면 2~3일이면 충분할 일을 일주일이 넘게 작업해 배추 심을 준비를 끝냈다. 시간이 남아서 직접 한 것도 아니었고 천천히 하나씩 하면 가능할 것 같으니 비용을 아껴 볼 생각이었다. 초보라 가능했던 무모한 도전이었다. 골병드는 일이니 아무리 초보라도 1400평을 세 명이서 배추밭 준비할 생각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



2017년



초보농부님과 둘이서 심으려고 했으나 정식 예정일에 비 소식이 있어 비닐을 덮은 오후에 바로 김장배추를 심었다. 이장님께 부탁해 마을 어머님들의 손을 빌려 김장배추 12000 포기를 반나절만에 심었다. 역시 사람 손이 무섭다.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는데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폭망한 배추농사

귀농 9년차인 지금은 배추가 자라는 데 90일의 시간이 필요한 걸 안다. 김장배추를 심었던 귀농 1년차에는 심으면 알아서 크는 줄 알았고, 수확시기는 어떻게 알 수 있는지 등 배추농사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었다. 멘토 어르신의 코치에 따라 초보농부님이 바쁜 와중에 약도 치고, 추비도 해서 키웠다.



2017년



내가 할 수 있는 건 나무젓가락과 햇반 그릇을 들고 밭에 나가 배추 애벌레를 잡거나 배추 사이에 자라는 잡초들을 뽑는 것이었다. 날씨가 쌀쌀해지고 배추가 폭풍성장하면서 잡초는 방치되었고, 벌레들의 출몰도 뜸해졌다. 그런데 김장배추에 하얀 눈이 쌓일 때까지 팔지를 못했다. 김장배추를 심기로 결정했을 때는 판매를 위해 농협에 소개를 받기로 하고 12000 포기나 심었다. 일이 꼬였다. 다른 수매업자를 소개받아 우리 배추밭을 방문했을 때는 수확시기가 너무 지나 판매가 되지 않았다.



2017년



망했다. 김장배추는 눈과 함께 녹아내리기 시작했고 하얀 속살을 드러냈다. 가입해 있던 밤호박 주식회사의 어르신 한 분이 우리의 딱한 사정을 알고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상품성이 있는 알배추만을 골라 판매해 주셨다. 외국인 노동자 인건비가 비싸서 통장에는 아무것도 찍히지 않았다.



폭망도 경험

귀농 1년차였던 당시에 주작물인 밤호박 재배기술을 배우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황이었다. 집 옆 노지에 잡초만 무성하게 키우기보다는 적당한 방치와 관심으로 키울 수 있다고 믿었던 배추를 선택해서 심었다. 마을 어르신들과 친분이 쌓인 뒤에 알게 되었지만, 우리가 배추를 만 포기 넘게 심을 때 잘 키울 수 있을지 걱정이 많으셨다고 한다. 처음 해 보는 건데 넓은 밭에 한 작물만 많이 심는 것은 무모했다는 것이었다.

배추는 잘 자랐으나 판매가 문제였다. 수매업자를 소개받기로 했으나 일이 꼬였던 것도 폭망에 한 몫했다. 수매업자를 소개해 주겠다는 분의 말만 믿고 만 포기 넘게 심고, 배추 농사가 망했을 당시에는 초보농부님을 탓하기도 했다. 신중한 초보농부님이 플랜 B가 없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초보였던지라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폭망도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배추라는 작물이 우리의 상황과는 맞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밭에 하우스가 지어질 예정이라 대량재배는 불가능했고, 포기당 저렴한 금액에 판매되는 생배추는 소량만 재배하는 것은 소득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둘째, 어떤 일을 하든 플랜 B가 필요하겠지만, 특히 농사라는 것이 하늘이 도와야 하듯 날씨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 플랜 B 혹은 차후 대책은 필수요소라는 것이다. 더구나 작물의 가격이 매해 달라지니 대책은 늘 필요했다.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나무는 없듯이 폭망도 경험해 가며 단단한 농부가 되어가리라 믿으며 긍정회로를 돌렸다. 통장에 그나마 여유가 있을 때 폭망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우리는 2년 뒤 또 망의 기운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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