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 초보농부아내 시점
첫 농사는 비닐하우스 임대로 시작
2016년 12월 말, 귀농인의 집에 살면서 집과 땅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남편의 계획은 집과 땅 모두 임대로 시작해보려 했으나, 무연고지인 해남으로 귀농한 탓에 임대는 불가능해 보였다. 농알못인 남편은 일단 해남군의 멘토링 시스템을 신청했고 멘토 농가의 일을 돕기 시작했다. 우리가 선택한 작물은 비닐하우스 작물인 "밤호박"이었고, 여러가지 정보를 얻기 위해 협동조합같은 "밤호박 주식회사"에 가입도 했다. 조합에 가입했던 것이 신의 한 수 였다. 가입을 하면서 멘토 어르신도 소개받고, 당시 사무장님 소개로 하우스 2동 300평을 저렴한 금액으로 임대했다.
귀농결심을 하고 작물선택이 끝났다면 지역의 해당 작목반이나 조합을 찾아 가입해 보기를 추천한다. 상황에 따른 판단이 필요하겠지만, 아는 사람 1도 없는 우리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기에 이 또한 한 방법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첫번째 비닐하우스 임대 계약 종료 즈음해서 밤호박 주식회사에서 운영하는 비닐하우스도 임대할 수 있었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다면 땅을 구입하고, 비닐하우스를 지어 대대적인 투자를 통해 첫 농사를 시작해 볼 수도 있다. 여롭지않은 우리의 상황에 임대가 불가피했는데 조합에 가입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첫번째 임대한 곳은 방치되어 있던 하우스인지라 트랙터로 밀고 창가쪽은 직접 정리를 해야 했다. 남편은 초보농부답게 제초제 사용을 꺼려해서 이때부터 나의 손제초 스킬쌓기가 시작되었다. 귀농 8년차인 지금, 잡초뽑기는 귀농생활의 유희 중 하나가 되었다.
하우스 정리가 끝나고 멘토 농가의 밤호박 재배가 시작되면서 임대한 하우스에서 실습을 해 볼 수 있게 환경이 갖춰졌다. 시기적절하게 하우스가 임대되어 준 덕분이었다. 도움주셨던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남편은 한 해의 운을 하우스 임대와 집 구하는데 다 썼다고 말했지만,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고 인맥을 쌓기 위해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초보농부님이 새로운 스킬을 획득하셨습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해 이때부터 나도 남편을 돕기 시작했다. 친정이 감농사를 하지만 농사에 대해선 전혀 아는 바가 없어 남편이 가르쳐주는대로 도왔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남편이나 나나 농알못이라 누가 누굴 가르친다는 게 큰 의미는 없었다. 하지만 그만큼 모르는 것이 많아 선도농가에서 조금이라도 배운 남편이 그나마 나았다.
처음으로 삽질을 했다.
초보농부님이 하는 걸 곁눈으로 컨닝해 대충 흉내를 내보았다. 군대를 다녀온 초보농부님의 삽질은 힘있게 삽을 내리꽂고 가볍게 흙을 퍼 올렸다. 처음으로 삽을 잡아본 내 눈에는 초보가 아니었다. 허리를 반쯤 굽히고 삽을 밀어넣고 무겁게 퍼 올린 흙을 비닐멀칭 위에 올렸다. 첫 삽을 뜨던 그 순간은 아무 생각이 없었다. 어리버리 상태에서 삽질을 시작했다. 몇 번 하다보니 포실포실한 흙을 밟는 것도, 파스스 떠올려 지는 부드러운 흙이 먼지를 일으키는 것도 아직 도시감성이 남아있는 내게는 모든 것이 좋았다. 초보농부님의 속도에 맞추다보니 가빠져 오는 숨과 흘러내리는 땀이 살아있다는 걸 느끼게 해 주는 것 같았다.
"여보, 나 농사체질인가봐~"
초보농부님은 내 말에 한참 웃었지만, 곧 정색을 하며 잔소리를 시작했다.
허리를 굽히지 말고, 발에 체중을 실은 뒤 발로 삽을 밀어 넣어 흙을 퍼 올리라는 것이었다. 허리를 굽혀 손목 스냅으로 삽질을 해서 힘들어 하는 게 보였나보다. 그 뒤로도 내가 하는 게 마음에 안 들었는지 계속 잔소리다.
함께 손발을 맞춰 보는 것은 처음인지라 이렇게 잔소리가 많은 사람인 줄 몰랐다. 초보농부님이 새로운 스킬을 획득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계속 된 협업은 잔소리와 주눅드는 일상이었다. 늘어야 할 농사 스킬보다 초보농부님의 잔소리 스킬만 스탯이 올라가는 듯 했다.
며칠 뒤 임대한 하우스에 정식준비가 끝나 구입한 모종들을 심었다. 정식 하는 날 도와주신 멘토 어르신이 축 쳐진 내 어깨를 올려 주셨다.
"자네, 일 잘 하는구만~"
전문가의 인정이다. 초보농부의 잔소리 따위 날려 버릴만큼 강력했다. 어르신의 칭찬에 힘든 줄도 모르고 인생 첫 정식작업도 끝냈다. 초보농부의 아내 시점에서 보자면,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초보농부님은 태어나서 바로 걸었나 싶을 정도로 잔소리를 들었던 첫 밤호박 농사의 시작이었다. 연애 시절에도 맞지 않는다고 느끼긴 했지만, 함께 농사를 시작해보니 피부에 와 닿았다. 초보농부와 농부아내에겐 서로를 다룰 줄 아는 스킬을 습득하고,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했다.
농부님아, 고마해라~
내도 알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