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 육아맘의 시점
아이들과 지내게 될 집은 건물이 들어선 지 20년이 다 되어가는 오래된 농가주택이었다. 그동안 몇 번 주인이 바뀌면서 수리를 해서 관리가 잘 된 집이라 우리 네 식구 살아가기엔 적당했다. 몇 년간은 도시에서 살 때보다 구색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불편하기도 했지만,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산다 하지 않던가. 적당히 타협해 가며 살아온 지 8년, 슬기로운 농가주택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생명이 움트는 봄
전투적 생계형 농부인 우리는 쌀쌀한 1월부터 바쁘게 지낸다. 농사에 익숙해지면서 텃밭을 가꾸기 시작했고, 아이들도 동참했다. 함께 여러 작물의 씨앗을 심고, 쑥 캐는 시기에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체험시간을 가져보기도 했다. 마당이 넓다고 여겨질 정도로 코 흘리개 시절엔 흙 파고 놀고, 마당에서 킥보드를 타거나 세 발 자전거 연습을 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집 앞에 언제부터 심어져 있었는지도 모르는 뽕나무에서 따먹는 오디는 농가주택의 봄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집터파크 개장의 계절, 여름
마당이 있는 농가주택의 사계절 중 아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계절은 여름이다. 바쁜 와중에 아빠의 집터파크가 개장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물총놀이도 실컷 하고, 마당에서 고기까지 구워 먹으면 키즈풀빌라에서 즐기는 여름휴가 부럽지 않다.
귀농 초반에는 베란다에 펼칠만한 작은 풀장에서 물놀이를 했었다.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친구들과 물총놀이를 하고 온 날은 물총을 사달라고 떼를 쓰기도 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작은 풀장만으로는 신나지가 않아 남편이 마당의 절반을 차지하는 커다란 풀장을 만들어 주었다. 우리만의 수영장이 생겼다. 집터파크 개장 초에는 튜브와 구명조끼 없이는 물놀이를 할 수 없었다. 지금은 학교에서 생존수영 교육을 받은 뒤로 구명조끼 없이도 수영을 즐긴다.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집터파크는 무더운 여름 아이들의 피난처가 되기도 하지만 열농한 뒤 뜨거운 열기를 식히기에도 좋았다. 땀에 절은 몸을 물에 담그는 날은 수영장 청소하는 날이었다. 아이들이 신나게 놀고 난 뒤 청소하기 전 튜브 위에 둥둥 떠서 열기도 식히고 잠깐의 여유를 즐기기엔 딱이었다.
마당에서 즐기는 배드민턴, 가을
배드민턴은 한여름, 한겨울을 제외하고 어느 때나 즐길 수 있는 스포츠이긴 하지만 우리 집에선 주로 가을에 즐겼던 것 같다. 바람이 많이 불지 않는 저녁나절에 아이들은 아빠를 부른다. 잠자고 있던 배드민턴 라켓을 꺼낼 시간이다. 처음엔 라켓 잡는 것도 어색하고 서브도 되지 않아 재미가 없었다. 몇 년의 가을을 보내면서 매년 배드민턴을 즐기다 보니 아이들도 이제 몇 번은 주고받고가 가능해졌다. 요령은 없고 잘하고 싶은 욕심에 세게 치다가 지붕 위로 올라간 셔틀콕이 몇 개 인지 모른다. 어쩌면 지금도 지붕 위에는 셔틀콕이 굴러다니고 있을 지도..
겨울에도 신나는 아이들
10년 넘는 서울살이의 겨울과 귀농 후 맞이한 겨울은 달랐다. 달력에서 볼 법한 풍경들이 펼쳐지고 온통 하얀 세상이 되었다. 도시에서의 눈은 삭막함이 느껴졌지만, 아이들과 농가주택에서 맞이한 겨울은 따뜻함이 느껴졌다.
5살 이하일 때는 감기 들까 봐 눈 놀이는 생각도 안했지만, 적당히 사이즈도 크고 감기도 견딜만해진 것 같아 한겨울에도 바깥놀이를 하게 했더니 난리도 아니었다. 퍼져 앉아 눈사람을 만들기도 하고, 아빠의 방수 앞치마로 썰매를 타기도 했다. 눈오리 장난감이 유행한 뒤로는 매년 겨울이 되면 평상 위에 오리가족이 줄지어 녹아내리게 되었다. 아빠와 함께 마당을 쓸기도 하고, 겨울마저도 신나게 보내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니 귀농하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오래된 농가주택에서 산다는 것은 여러 모로 힘들다. 여름이면 장마철 습기로 장판 위를 걸을 때마다 쩍쩍 소리가 나고, 겨울이면 웃풍이 심해 집안 온도가 20도가 되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여름에 계곡이나 해수욕장을 찾아가지 않아도 우리만의 집터파크가 개장을 하고, 겨울이면 썰매장이 문 앞에 펼쳐진다. 캠핑장을 찾아서 헤맬 필요도 없다. 겨울이면 작물이 없는 하우스 안에 텐트를 치면 된다. 겨울에 만든 하우스 안 텐트는 한낮의 집보다 따뜻하다. 그래도 잠은 집에서 잤다.
남편이 귀농하자고 할 때 육아맘의 시점으로 제일 걱정했던 것이 교육적인 부분이었다. 하지만 8년의 귀농생활을 해보니 교육적인 부분은 부족할지라도 농가주택에서 사계절을 보내며 쌓은 소소한 추억들이 아이들에게 살아가는 힘이 되어 줄 것 같다. 어린 시절의 소중한 추억들이 밑거름이 되어 따뜻한 어른으로 자라주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