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 육아맘의 시점
귀농인의 집에 일단 살아보기로 결정하면서 남편에게 걸었던 조건이 "2개월 안에 집과 땅의 구매"였다. 2016년 12월 28일에 귀농인의 집에 입주하고 약속했던 2개월이 지나가고 있었다. 우리가 귀농했던 2016년 말과 2017년 초, 해남의 겨울은 온통 하얀 세상으로 가득했다. 도시에서 보던 하얀 세상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달력에서 보던 눈 덮인 흰 산의 느낌 그대로를 볼 수 있었다. 그렇다 보니 아는 사람 1도 없는 이곳에서 친분을 쌓기 위해 돌아다니기도 힘들었다. 그때 남편이 선택한 집 구하는 방법은 "전화번호부"의 활용이었다.
당시 해남에는 면마다 전화번호부를 발행했었고, 이장님들의 연락처가 기재되어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전화번호부가 집 구하는 용도로 쓰일 줄은 몰랐다. 이장님들께 전화를 해 우리의 상황을 설명하고, 빈 집이 있는지 소개를 부탁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우리가 외지인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었다. 나중에 남편에게 들은 말이지만, 시골에서 집이나 땅은 대부분 알음알음 거래가 된다고 한다. 그나마 1월에 비닐하우스 300평을 임대해 농사는 시작해 볼 수 있게 되었다.
날씨가 조금씩 풀리고, 멘토링 시스템에 들어간 남편은 선도농가에 출근해 낮엔 농가의 일을 도우면서 밤호박 재배에 대해서도 배우기 시작했다. 밤에는 지역정보를 살펴보느라 아침이면 토끼눈이 되어 일어났다. 핏줄이 터진 눈을 보고 있자니 미안하기도 했다.
귀농인의 집 입주 초반에, 우리를 해남으로 이끌어주신 귀농귀촌센터의 사무장님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팔이 저렇게 가늘어서 농사하겠어요?"
게임회사에 다니며 책상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며 일했던 남편의 손은 나보다도 곱고 예뻐서 사무장님의 말씀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하지만 귀농인의 집에 살면서 농사를 배우고, 하나씩 해내는 걸 보시더니 사무장님도 여러 가지로 많은 도움을 주셨다.
지인들을 통해 빈 집과 임대가 가능한 집들을 소개해 주셨다. 면에서 이름 꽤나 알려져 있다는 분도 소개를 해 주셨고, 그분을 통해서도 많은 집들을 보러 다녔다. 부동산을 통해 잔디정원이 있는 예쁜 집을 둘러볼 기회도 있었다. 집을 보러 다니면서 느낀 것은 옛날 집들이다 보니 천장이 낮았다. 외관이 멀쩡해 보여 들어가 보면 방 개수가 부족하거나 불편한 구조의 집일 때도 있었다. 우리가 임대한 비닐하우스는 귀농인의 집에서 차로 15분 걸리는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하우스 일터까지 오가는 것도 불편했다. 그래서 되도록 집 근처에 땅이 있는 조건을 찾으려니 시간이 더 필요하기도 했다. 트럭을 타고 하우스로 가는 길에 많은 집과 땅들을 바라보며 이 중에 정말 우리 것은 없을까..라는 탄식 섞인 말을 삼키곤 했다.
졸린 눈에 힘을 부릅 주고 부동산 사이트를 체크하며 보내던 2월 말, 남편이 드디어 마음에 드는 집과 땅을 찾았다고 했다. 아슬아슬하게 턱걸이로 약속기한을 지켰다. 부동산을 통해 소개받은 농가주택은 방 3칸, 널찍한 욕실, 부엌, 거실 그리고 집 옆에 작은 창고도 있었다. 뒷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땅이 있었다. 오래된 농가주택이었지만, 전주인이 입주 전 보일러 공사도 다시 하고 관리를 잘해 준 덕분에 생각보다 많은 수리가 필요해 보이진 않았다. 천장이 낮으면 답답함이 느껴지는데 천장이 높아 마음에 들었다.
총알이 부족한 관계로 일단 계약금을 걸고, 지원사업서류를 준비해 저금리의 대출을 받아 계약을 완료했다. 드디어 해남에 우리의 집과 땅이 생긴 것이다! 시세보다 조금 비싼 몸값을 지불했지만 진입이나, 집 바로 옆에 땅이라는 매력적인 조건은 그만큼 지불할 가치가 있었다. 초보농부인 남편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이었다. 육아맘의 시점으로 보자면 넓은 마당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드라마에서 보던 나무로 된 흔들의자도 하나 들여놓고 싶었고, 마당을 아이들 놀이터로 만들고 싶었다. 아이들이 실컷 뛰놀 마당을 보며 꿈에 부풀었다.
귀농을 하면 제일 넘기 힘든 허들이 집과 땅 문제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면야 큰 걸림돌 없이 쉽게 구입이 가능하겠지만, 우리의 형편에는 따져봐야 할 것들이 많았다. 시골에서 필요한 것은 인맥인데 아는 사람 1도 없는 해남인지라 계란에 바위치는 심정으로 많은 발품과 손품을 팔았다. 마땅히 꿀팁이라는 것도 없었다. 열심히 알아보고 다녀보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2017년 3월, 우리에게 집과 땅이 생겼지만 2024년 12월 현재까지 여전히 은행이 집주인이긴 하다. 열심히 농사지어 내 발자국 하나 찍힐 정도는 우리의 것이 된 것 같다. 온전히 우리 집, 우리 땅이 될 때까지 오늘도 열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