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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부아내 Dec 11. 2024

서울에서 해남까지 셀프이사

전지적 육아맘의 시점


흙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몇 번이나 이사를 하게 될까. 주택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20년을 넘게 살다가 20대 중반에 서울 사는 언니들에게로 작은 "독립"이란 것을 했다. 친정 엄마가 돌아가시고 생애 첫 이사를 하고 난 뒤 마주한 나의 두 번째 이사였다.

첫 번째 이사를 할 때는 살던 주택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기 때문에 온 가족이 짐을 옮겼다. 집을 알아보고 여러 가지 부수적인 일들은 막내인 나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어 짐만 열심히 나르고 청소했던 기억이 있다.

서울에 와서 셋째 언니의 집에 살다가, 둘째 언니의 집으로 들어가 꽤 오랜 시간 함께 살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의 짐은 적었고, 이사와 관련된 부수적인 일들은 많지 않았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이사라는 큰 일을 제대로 겪어 보았다. 서울에서 10년 넘게 남편과 살면서 두 번의 이사를 했다. 정말 귀찮은 일 투성이었지만 남편이 어릴 적 잦은 이사를 다녀 여러 가지 부수적인 일들도 알려줘서 해결할 수 있었다.

한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나이기에 남편, 두 딸과 함께 살고 있는 그 동네, 그 집이 마지막이 될 줄 알았다. 전세였지만 집에 대한 욕심은 없어서 우리가 살기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귀농이라는 큰 선택이 결정되고, 귀농지가 땅끝 "해남"으로 정해지면서 "서울에서 해남까지 이사"라는 큰 미션이 생겼다. 육아에만 몰두하고 있던 나는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해야 하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남편이 이사업체를 알아보라고 해서 견적을 몇 군데 받았는데 금액이 꽤 많이 나왔다. 서울에서 땅끝인 해남으로 가는데 그 정도는 당연한 거였다. 견적 금액을 들은 남편은 셀프이사를 결심했다.


해남까지 셀프이사?

셀프 이사를 결정했을 당시에는 입이 부루퉁하게 튀어나와 불만 가득이었다. 아무리 잦은 이사를 다녀 본 경험이 있어도 전문가는 아닐 테고 아이들이 2, 3살이었던 터라 짐이 많아서 포장하는 것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 포장도 직접, 짐을 싣고 내리는 것도 직접 한다고 하니 다칠까 봐 걱정도 되었다. 그때 당시 남편 나이 37살. 청춘이었던 30대라 가능했던 결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불투명한 미래를 바라보고 있자면 한 푼이라도 아껴야 했던 남편의 마음을 귀농 정착을 한 지금은 이해한다.


어린 두 딸을 데리고 서울 둘째 언니네에 며칠 머물고, 진주 시댁에서 또 며칠을 머물렀다. 딸들과 내가 그렇게 이 집 저 집 신세를 진 일주일 동안 남편은 셀프로 짐을 싸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살면서 이사를 할 때도 이사업체에 온전히 맡기지 못하고, TV나 모니터 등 파손되기 쉬운 것들은 직접 포장을 했던 남편이라 꼼꼼하게도 포장을 했다. 무엇보다 살던 집보다 이사 갈 귀농인의 집이 좁아서 남는 짐은 따로 보관을 해야 했기에 내리기 쉽게 차에 짐을 실어야 해서 셀프 이사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5톤 트럭에 가득 짐을 싣고 서울 기사님은 해남까지 운전만 해주시고, 해남에서 짐을 내릴 분을 또다시 섭외해야 했다는 남편의 이사 후일담을 들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에 당황하지 않고, 해남귀농귀촌센터의 사무국장님께 도움을 요청했다는 남편. 해남에 아는 사람이라곤 그분밖에 없던 상황이라 남편의 S.O.S에 도움을 주신 사무국장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육아에만 매진하던 육아맘이자 이사초보의 시점으로 보자면 업체 불러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는 일인데 무리하는 것 같아서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지금 돌아보면 상황과 여건 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 같다. 만약 귀농지가 멀고 당신이 청춘이라면 한 번쯤, 정말 딱 한 번쯤 해 볼만한 귀농지까지의 셀프 이사이다. 지금은 농사용품까지 더해져 5톤 트럭 하나로는 안될 것 같다. 이제는 해남에 뼈를 묻어야 하니 다시는 셀프이사 할 일은 없으리라 짐작해 본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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