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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부아내 Dec 15. 2024

첫 주택살이, 귀농인의 집

전지적 육아맘의 시점


우리가 새로 터전을 잡을 곳이 "해남"으로 결정된 데는 "밤호박"의 매력도 있었지만, 귀농할 당시였던 2016년 해남에서 처음으로 운영한 "귀농인의 집"시스템이었다. 현재는 다양한 지역에서 귀농인의 집 혹은 체류형 지원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귀농 이후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일단 귀농인의 집에서 살아보기로 했다. 총알이 부족했던 우리에게 저렴한 보증금과 임대료는 매력적인 조건이었다. 귀농을 결정하면서 남편에게 내가 걸었던 조건이 "2개월 안에 우리가 살 집과 땅 구매"였다. 아는 사람 1도 없는 해남에서 무리한 조건일 수도 있었지만 남편은 도전해 보기로 했다.  


가구 배치와 창고에 넣어 둘 짐을 구분하기 위해 귀농인의 집 방 사이즈와 배치도가 필요했다. 측량을 위해 처음 해남에 발을 디뎠던 것은 12월 초, 눈이 엄청 내리던 날이었다. 별다른 기대 없이 방문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깨끗한 모습에 어느 정도 만족스러웠다. 이 정도면 살 만하겠다~싶었다. 당시 폐교를 수리해 귀농귀촌센터로 운영 중이었고, 귀농인의 집은 교사주택 2동을 개조해서 사용할 수 있게 했었다. 우리는 1호 주택으로 10평 남짓의 단층 주택이었다. 남편과 두 딸을 만나 새로운 울타리를 만들고 첫 주택살이였다.



2017년 1월 1일, 귀농인의 집에서



남편은 농사일 배우느라 아침부터 나가서 집에 없었다. 운전도 할 줄 몰라 아이들과 할 일이라곤 집 안에서 장난감 가지고 놀거나 집 앞에서 뛰놀거나 마을 산책이 전부였다. 1번은 해남으로 내려오고 바로 어린이집을 다녔고, 2번도 한 달 정도 가정보육을 하다가 18개월이 되었을 때 어린이집을 다니게 되었다. 나도 귀농인의 집과 해남살이에 적응하느라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하루종일 아이들에게 시달리니 힘들어서 내린 결정이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농사일을 돕게 되었다.


어렸을 때 주택에서 20년 넘게 살았지만, 주택관리라는 것은 엄마 아빠와 언니들의 몫이었다. 나는 그 집에서 사는 게 전부였다. 그런 나에게 주택은 그냥 살면 되는 것인 줄 알았다. 추운 겨울에 귀농을 해 문을 꽁꽁 닫고 보일러와 온풍기를 돌렸다.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한 아이들이 감기를 앓았다. 환기도 하고, 청결에 더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주택관리에 무지했던 나는 곰팡이를 키웠다. 감기를 앓던 2번은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까지 했다. 1번을 키우면서 한 번도 병원에 입원을 해 본 적이 없어서 처음으로 병원 간병생활을 하게 되었다.





남편도 밤호박 농사가 처음이라 정신없을 시기였다. 1번을 어린이집 등하원시키고 케어하기엔 버거울 것 같아 1번도 같이 병원생활을 시작했다. 매일 호흡기 치료를 해야 했고 링거 바늘을 교체하는 날은 전쟁이었다. 작은 체구에 성량이 어찌나 큰지 2번의 울음소리와 버티는 그 힘을 감당하는 건 심신으로 지치는 일이었다. 울음을 크게 터뜨린 날에는 코피도 터졌다. 남편이 집에서 아이들 장난감, 책, 볼거리 등을 챙겨다 줘서 그나마 아이들은 병원생활에 금방 적응했다. 적응력이 부족한 나만 감옥 같은 병원 간병생활이었다.


온 가족이 힘든 시간이었던 일주일의 병원생활이 끝났다. 주택 관리와 아이들 케어에 신경을 많이 못 써 준 죄책감과 미안함에 많이도 울었다. 퇴원 이후로 아이들 건강과 주택 청결에 더 마음을 쓰긴 했지만 이미 자라기 시작한 곰팡이는 업체의 힘을 빌리지 않는 한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나의 선택은 남편을 독촉해 볼까~였다. 귀농인의 집에 올 때 2개월 안에 집을 구하기로 약속한 것을 떠올려 캐묻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독촉하지 않아도 남편은 해가 떠 있을 땐 농사일 배우느라 바빴고, 밤엔 토끼눈이 되도록 부동산 정보를 찾고 있었다.



2022년 8월 촬영, 우리가 머물렀었던 귀농인의 집



해남군의 도움을 받아 시작했던 귀농인의 집에서의 생활은 힘들긴 했지만, 덕분에 해남살이에 적응하고 농사일도 배우면서 집과 땅을 구할 시간적 여유를 얻었다. 집과 땅을 구하고 이사를 한 뒤 2년 전 그곳에서 행사가 있어 방문을 했었다. 오랜 시간 머물지는 않았지만, 힘든 시간을 함께 견뎌온 귀농인의 집이라 눈물이 터졌다. 주택관리에 무지했던 초보 육아맘이라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귀농을 생각하고 있다면 귀농인의 집에서 살아보고 귀농을 결정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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