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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부아내 Dec 08. 2024

경상도 사람의 전라도 귀농

전지적 육아맘의 시점



귀농예정지 몇 군데를 정해 다니는 것보다 작물 선택이 먼저였다. 작물을 선택한 뒤 적합한 환경인 지역으로 귀농을 결정했다. 농부님이 귀농을 위해 교육을 받으면서 박람회에 참석했다가 우연히 발견한 해남 밤호박. 먹어보니 맛도 좋아 밤호박으로 작물을 선택하고, 우리의 귀농지도 전라남도 "해남"이 되었다. 요즘에야 여러 지역에서 밤호박이 재배되고 있지만, 우리가 귀농할 때쯤엔 해남에서 밤호박이 많이 재배되고 있었다.


당신의 고향은 어디인가.

농부님과 나의 고향은 경상도이다. 나는 경상도에서 태어나 20년을 넘게 살고, 서울로 거주지를 옮긴 뒤에도 사투리가 심했다. 편집 디자인을 하던 터라 거래처와 통화할 일이 많았는데 그때 직원의 말로는, 설명을 해도 상대방이 못 알아듣거나 흥분하면 사투리가 튀어나온다며 귀엽다는 어마무시한 말을 해 주었다. 사투리를 고치고 서울말을 써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10년 넘게 서울에서 살아도 꿋꿋이 지켜온 나의 사투리.





그런데 귀농지가 전라도 해남으로 결정되면서 나의 사투리가 걱정되었을까? 사람들이 말하는 "지역감정"이라는 것이 경상도 사람으로 전라도에서 살아가는데 느낄 버거움에 대해 걱정이 되었을까?





짜달시리~(별로, 그다지).

나는 서울 억양이라고 말하지만 듣는 이들은 한 번에 알아듣는 경상도 억양. 그렇다. 나는 내가 서울↗말을 쓰고 있는 줄 알았기에 걱정이 없었다. 지역감정 같은 것도 옛말이라 여겼기에 1도 걱정이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귀농"이라는 큰 선택 앞에 지역감정은 타격감이 없었다.


해남으로 귀농해서 정착한 마을 어르신들도 다들 좋으신 분들이었다. 우리의 사정을 이해와 배려의 마음으로 대해 주셔서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것 같다. 귀농 후 알게 된 적지만 많은 분들도 내가 경상도 사람이라는 것에 거부감이 없는 듯했다. 내색을 안해서 눈치를 못 챘던 건지도 모른다. 마음속으로는 경상도 사람이라고 선을 그을지언정 나에게 대할 때는 딱히 느껴지는 게 없으니 "지역감정"으로 인한 어려움은 한번도 없었다고 여긴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어떨까.

신기하게도 전라도, 경상도 말을 섞어서 구사한다. 집에서는 엄마 아빠가 경상도 억양과 사투리로 말을 하니 고걸 흉내 내서 말하기도 하고, 전라도 말과 억양으로 말할 때도 있다. 특히 2번이 경상도 사투리 흉내를 잘 내고, 1번은 이제 거의 전라도 말을 쓰는 것 같다. 1번이 제일 많이 쓰는 말이 "겁나 XX해요"이다. "겁나"라는 말을 을매나 많이 쓰는지... 가끔씩 아이들의 혼용된 말을 들을 때면 웃음이 빵 터진다.


경상도가 고향이고 전라도로 귀농을 결정했다면 고민할 것 없다. "지역감정"은 정치적 용어일 뿐 사람이 어울려 살아가는데 거슬리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의 어울림에 지역감정보다는 배려와 이해가 더 크게 차지하지 않던가.





힘 내이소(힘내세요~).

"욕보이소(고생하세요~ 수고하세요~)"라는 말이 있지만 순화시켜서 귀농을 결심한 모든 이들에게 전하고픈 말이다. 당신이 어느 지역에 있든 당신은 당신 자체로 있을 수 있고, 버티다 보면 언젠가는 빛을 볼 날이 올 것이다.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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