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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부아내 Dec 04. 2024

우리가 선택한 작물, 퍽퍽한 밤호박

전지적 육아맘의 시점



귀농에도 순서가 있다. 반드시 따라야 할 것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귀농귀촌센터에서 홍보하는 순서대로 흘러가게 되는 것 같다. 귀농결심이 서면, 가족과 합의를 하고 그다음이 작목선택이다.


육아맘이었던 나의 세계는 아이들이 전부였다. 남편이 귀농을 얘기했을 때도 큰 반대없이 아이들 교육만 문제 삼았고, 남편은 아이들이 공부에 의지를 보이면 아낌없이 지원하겠노라 약속했다.


귀농예정지를 몇 군데 정하고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남편은 귀농교육을 받고 있었다. 귀농귀촌박람회에 관람 갔다가 우연히 "해남 밤호박"을 접하게 되었다. 친절한 상담으로 농알못인 남편도 재배가 가능해 보여 밤호박으로 작목을 선택했다.


자, 그럼 이제 전지적 육아맘의 시점으로 기억회로를 돌려보자.



© dylu, 출처 Unsplash



작목 선택 당시 나의 추천은 딸기였다. 어떤 작물을 선택할지 고민할 때쯤 딸기가 제철이었고, 무엇보다 딸들이 너무 좋아했다. 그러면 딸기를 재배하면서 우리 딸들은 비싼 딸기를 원 없이 먹어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좁디좁은 시선으로 추천했었다. 하지만 여러 교육을 받으러 다닌 남편은 반대했다.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전투를 할 때 총알이 많아야 여러 방 쏠 수 있지 않겠는가. 우리의 총알은 풍족하지 않았고, 그래서 선택지는 좁아져야만 했다.





그렇다면, 친정아버지가 단감과수원을 하고 계시니 옆에서 농사도 배우고, 단감을 해보는 건 어떻겠냐는 게 나의 두번째 추천이었다. 남편이 싫어했다. 중요한 것은 과수작물은 선택사항에 없다는 것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남편의 선택은 탁월했다. 친정아버지와 남편이 함께 일한다고 생각하면 내가 먼저 짐 싸들고 다시 서울로 갔을지도 모른다.



2017년 우리의 첫 밤호박



박람회에서 밤호박을 발견한 뒤로 남편은 해남을 오가기 시작했다. 그때 우리의 대화는 이러했다.


"왜 호박이야??"

(당시는 밤호박이 생소했다)


"재배가 쉽고, 보관도 꽤 길게 할 수 있대"


재배가 쉽다는 건 해보고 나서야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다. 모든 농작물이 판매를 생각한다면 많은 정성과 노력이 들어가야 한다는 걸 귀농하고서야 알았다. 상담해 주셨던 사무장님은 아무래도 농사고수이시다 보니 "쉽다"는 표현을 하신 것 같다. 초보농부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작물이긴 하지만, 판매를 통해 수익을 얻고자 한다면 손길이 많이 필요한 것이 호박이기도 했다.


우리에겐 판로가 없으니 장기간 보관이 필요할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밤호박은 매력적이었다. 무엇보다 남편이 갖고 온 호박을 먹어보니 맛있었다~! 아이들 이유식을 만들 때 구입했던 국산 호박이 맛이 없었던 적이 있다. 그래서 수입산 호박을 구입해서 먹였었는데 밤호박이 훨씬 맛있었다.





그렇다.

이런저런 이유를 다 떠나서 밤호박이 맛있었다.

그거면 되었다.


귀농에 관해 교육을 들으러 다닌 남편은 작물선택 시 주의해야 할 사항이나 여러 가지를 알고 있어 따져보고 고려해 본 뒤 선택했겠지만, 나는 먹어보니 맛있어서 좋았다. 사실 처음에 남편이 보관이 어쩌고, 판로가 어쩌고 얘기할 때는 딴 세상 이야기 같아서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귀농하고 처음으로 우리가 키운 밤호박을 판매하기 시작했을 때야 이해가 되었다. 작물 선택을 할 때 나의 뇌는 오로지 "딸들"로 가득 차 있던 때라 더더욱 그랬다.


남편을 상담해 주셨던 사무장님 덕분에 밤호박의 신세계를 알게 되었고, 그 맛에 홀릭해 지금까지 밤호박 농사를 짓고 있다. 전지적 육아맘의 시점으로 보았을 때 맛있는 밤호박은 탁월한 선택이었고, 지금도 그 선택은 후회가 없다. 어떤 작물을 선택하든 힘든 건 마찬가지인 것 같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건 그 작물을 이해하고 즐기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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