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농부아내 Dec 01. 2024

남편에게 빌드업당한 귀농

전지적 육아맘의 시점


눈물 콧물 쏟으며 작성할지도 모르겠지만, 미루고 미뤘던 농부아내의 귀농이야기를 잊어버리기 전에 기록으로 남겨 보려 합니다.






2015년 말, 게임회사에서 퇴근해 오는 남편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지 않는 남편인지라 얼굴 상태만으로 체크를 하고 있었다. 2015년 둘째가 태어나 내 몸 하나도 추스리기 힘든 시기였다. 그런데 남편의 상태가 심상찮았다. 시간이 갈수록 어두워지는 얼굴에 긴장을 하고 있을 때쯤 슬며시 남편이 먼저 말을 건넨다. 회사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상황이 어떤지.... 며칠간 얘기를 건넨다. 회사일은 말하지 않던 남편이 내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넬 만큼이면 많이 힘든가 보다 싶었다. 나도 아직 젊고 가끔 프리랜서로 집에서 일도 했었으니 잠깐 쉬었다가 다시 자리를 잡아도 되지 않을까 싶어 남편에게 퇴사를 권했다.


미쳤었나 보다.

얄팍한 동정심과 젊은 날의 혈기(내가 벌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에 일을 그만두고 좀 쉬라고 하다니.......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나 님의 입을 꿰매 버리고 싶다. 그렇게 2016년부터 남편은 실직자가 되고 잠깐 쉬었다가 재취업을 할 것이라 생각했다.


남편이 일하고 있는 게임업계나 내가 몸담고 있던 직종도 이직이 잦은 편이라 재취업은 쉬울 거라 생각했다. 남편과 나의 나이도 잊고 말이다. 그리고 몇 달은 육아에 정신이 없어서 남편은 알아서 잘하리라 믿고 있었다.



2016년 9월



2016년 4월. 이때까지만 해도 좋았다.

남편이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겨 아이들과 나들이도 다니고 육아도 도와주니 좋았다. 따뜻한 햇살을 만끽하며 아이들과 거닐던 기억은 행복이었다. 2번이 아직 걷지 못해 매달고 다녀야 하는 고통 속에서도 완전체가 되어 낮 시간에 거닐 수 있다는 것이 행복이라 여겼다.


2016년 6월. 남편이 면접을 보러 다니며 재취업을 시작했다. 그때쯤 2번은 다리 힘이 좋아 집 앞 놀이터에서 낯선 이의 손을 잡고 걷기도 했다. 1번이 어린이집을 가고 2번이 낮동안엔 아빠와 시간을 보내면 나에게는 자유가 주어졌다. 너무 좋은데? 생각이 들면서도 마음 한편엔 찝찝함이 남는다.



2016년 10월



2016년 9월쯤이었나 보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남편이 귀농을 하자고 했던 것이 이맘때였던 것 같다. 2016년엔 지병으로 6개월마다 병원을 방문을 해야 했던 때였다. 늘 혼자 다니던 병원이었는데 진료가 끝나고 아이들, 남편과 함께 보라매공원에 가서 뛰놀기도 했다. 아이들도 너무 좋아했고, 나도 이 포근함이 좋았다.


남편의 계략이 아니었을까. 육아를 함께 하며 완전체가 되어 보내는 시간이 행복이고, 그 시간이 많을 수 있다는 걸 내가 마음으로 느끼고, 귀농에 찬성하게 하려는 수작이 아니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한 스텝 한 스텝 빌드업을 한 게 확실해 보인다.


남편이 귀농을 얘기했을 때, 나의 행복감은 최고조에 달해 있었고 흔쾌히 수락을 했다. 의논이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통보여서 불만이었지만, 우리 네 명이 완전체로 지낼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2016년 12월 초



귀농을 쉽게 생각했었다.

1번이 태어나고, 2번이 19개월 간격으로 세상에 나와 온통 나의 세상은 육아뿐이었다. 육아의 일상에 지쳐 있던 나에게 "귀농"은 남편의 빌드업과 함께 뭔가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듯 설레는 단어였다. 그리고 농사는 하지 않았지만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나의 경험으로 미루어 생각해 볼 때 딱히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걱정되는 건 아이들의 교육문제뿐이었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마찬가지이니 그냥 살면 된다라는 생각이 컸다. 그렇게 우리는 귀농 예정지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