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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부아내 Jan 05. 2025

농알못의 밤호박 육묘 도전

전지적 초보농부아내 시점


2017년, 봄과 가을의 첫 밤호박 농사에 사용한 모종은 육묘장에서 튼실한 녀석들로 구입을 해서 심었다. 귀농 1년차에 두 번의 밤호박 농사를 경험하고 2018년 세 번째 봄 밤호박 농사를 준비해야 했다.


"육묘를 해볼까봐~"


이제 겨우 첫 발걸음을 뗀 아이같은 초보농부님이 일년 농사의 성패를 가늠할 수도 있는 모종을 직접 키워 보겠다는 날벼락같은 선언을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밤호박의 종자가격이 비싸고, 육묘까지 더해지면 모종가격은 더 비싸진다. 우리 농장은 소량 재배이지만 대부분의 농가에서 5000주 이상 재배하니 육묘장에 헌납하는 돈이 꽤 된다. 비용 절감을 위해 한 말이었겠지만, 초보 주제에 육묘를 하겠다는 농부님의 말에 마음 속에는 불만과 불안이 피어올랐다.


"안 해봤잖아~"


농알못에 귀농 2년차인데 해보지 않은 일 천지이니 실패를 하더라도 경험을 쌓는 것은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멘토 어르신 댁에서도 해보지 않았는데 어떻게 육묘를 해보겠다는 건가. 2018년에 초보농부님은 밤호박 주식회사의 사무장으로 일을 하고 있어 농가들과 교류도 잦고 어르신들에게서 밤호박 재배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어르신들이 부채질을 해서 육묘에 도전장을 내민 것 같았다. 그리고, 해남 농업기술센터에서 밤호박 재배 관련 교육도 자주 있어 바쁜 와중에도 열심히 배운 이론을 실습해 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초보농부님의 아무런 설명도 없어서 모든 것은 짐작일 뿐이다.





농장의 일개 직원이 무슨 힘이 있겠는가. 해 본 적도 없는 트레이 파종을 초보농부님의 지휘 아래 마쳤다. 쌀쌀한 2월에 육묘가 시작되기 때문에 열선 세팅을 해야했다. 장비도 새로 사고 배운대로 세팅을 해서 트레이들을 얹어 부직포로 덮어 온도와 습도를 적절하게 맞췄다.





처음으로 파종해 본 씨앗이 싹을 틔웠다.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운 그 모습에 마음이 충만해졌다. 나도 농알못이라 판단할 자격은 없지만, 초보임에도 불구하고 싹을 틔워낸 농부님의 가능성을 발견했다고나 할까. 불만과 불안이 신뢰로 바뀌었다.





한낮에는 부직포를 걷어 햇빛샤워를 시키고, 해질녘에 다시 덮어 보온에 신경을 썼다. 열선의 온도도 조절을 해주면서 정성 들여 밤호박 모종을 키웠다. 가끔 어린이집에 가기 전 아이들에게도 분무기 하나씩 쥐여주고 함께 물을 주었다. 그럴 때면 아이들은 주문처럼 읊었다.


"잘 자라라~"


쪼꼬미 딸들이 쪼꼬미 모종에게 잘 자라기를 바라는 상황이 미소를 짓게 했다. 제대로 육묘가 될 지 미간에 주름을 만든 채 쳐다보던 모종들을 아이들과 함께 바라볼 때면 웃는 얼굴로 마주했다.





파종 후 약 한달 뒤. 드디어 밤호박 모종의 잎이 3~4장이 되었다. 자라는 도중 냉해로 쓰러진 녀석들이 몇 개 있었지만 첫 육묘에 이 정도면 선방했다. 귀농 9년차인 지금 첫 육묘한 모종의 사진을 보면 많이 웃자랐다. 온도 조절이 적절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귀농 2년차, 처음으로 만든 모종을 하우스에 옮겨 심을 때는 감개무량했다.





귀농 후 선택한 작물이 육묘에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는 이상 직접 해 보는 것도 좋다. 모종을 직접 길러 보면서 작물에 대한 이해도도 올라가고, 모종 구매에 대한 비용절감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된다. 2018년에 첫 육묘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모종은 직접 기르고 있다. 초보농부님이 "초보"를 떼고 어엿한 농부님이 되어서 우리 농장 모종뿐만 아니라 가끔 다른 농장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첫 육묘 도전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생각하기 싫은 가정이지만, 실패했더라면 모종을 구입해야 하니 경제적으로도 힘들었을테고, 마음도 싱숭생숭해져 의욕을 잃었을 것 같다. 초보농부님의 정성스런 돌봄으로 선방했던 첫 육묘는 농부로서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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