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빙: 어떤 인생>이 그리고자 했던 것
흠! 영화 평론을 하고자 함은 아니다. 그럴 능력이 안된다.
다만 영화 속의 음악 얘기를 하고 싶었다. 스코틀랜드 민요로 알려진 영화에서 매우 중요하게 쓰인 노래와 관련된 이야기를.
(줄거리)
윌리엄스는 런던 시청에서 일하는 평범한 공무원이다. 매일 같은 시간에 기차를 타고 출퇴근하는 규격화된 기계적인 일상을 반복한다. 영화는 2차 세계대전 후의 영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윌리엄스를 포함한 시청 공무원과 그들이 속한 각 부서는 서로 일을 미루고 묵혀두어 가급적 나서서 일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서로 협력하지 않는 극심한 부서 이기주의를 보여준다. 부서의 장이었던 윌리엄스 또한 전형적인 만년 과장의 수동적 업무처리 모습을 그린다.
윌리엄스는 어느 날 암으로 인한 시한부 선고를 받게 된다. 이를 계기로 그는 난생처음으로 삶을 즐겨보기로 결심한다. 해변 휴양지에 가서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며 일탈을 감행한다. 또한 젊은 직장 동료인 마거릿과 고급 레스토랑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던 중 윌리엄스는 사무실에 방치되어 있던 주민들의 놀이터 건설 요청 서류를 떠올린다. 그는 삶의 남은 기간 동안 이 프로젝트를 완수하기 위해 노력하며, 그 일을 통해 자신의 삶에서의 의미를 찾고자 한다.
윌리엄스의 변화된 태도와 열정은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의 정신과 일을 대하는 자세는 동료들을 통해 이어지게 된다. 이 영화는 너무나도 평범했던 한 사람이 죽음을 앞두고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주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장면은 그러니까 윌리엄스가 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고 그동안 전혀 해보지 못했던 일탈을 감행하는 장소에서였다. 저축한 돈의 반을 찾아 바닷가로 훌쩍 떠나온 그가 음식과 술과 쑈를 하는 곳을 전전하던 중 어느 술집에서 노래를 청한다. 그가 피아노 연주자에게 주문한 노래는 스코틀랜드의 민요로 알려진 <로언 트리>(The Rowan Tree)이다.
(링크 : https://youtu.be/B-XJjAZ1OW8?si=1wsJTmeoyS1Q6emf )
목이 메어 노래를 마저 하지 못하는 윌리엄스의 이 장면에서는 충분한 감정 이입을 경험한다.
노래가 흐르는 동안, 주인공이 아니라 지나온 나의 삶이 스쳐간다. 눈은 영화의 장면을 보고 귀는 장면에서의 노래를 듣고 있으나, 생각은 저 멀리 지나왔던 수많은 나의 기억들을 소환하게 된다. 기억 속의 수많은 인물들이 교차되는 경험 속에 빠져든다. 그러다가 윌리엄스가 목이 메어 노래를 멈출 때는 나 또한 기억을 멈추고 그의 감정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참 묘하다.
아주 가끔 '나의 죽음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진다. 내가 시한부의 삶이라면 어떨지, 혹은 내가 치매라면 어떨지를 생각하기도 한다. 결론은 늘 같기는 하다. 만약 내가 암에 의한 시한부라면 그건 차라리 다행이겠다. 정해진 종말 아닌가. 차라리 축복일 수도 있겠다. 다만 최악인 건 치매를 앓는 상황이겠다. 기약 없는 병이자 통제할 수 없는 삶의 모습이라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끔찍하다. 그런 종말을 맞이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 경우라면 좀 더 적극적인 스위스행을 도모해 볼 것 같다는 생각이 아직은 지배적이다.
영화는 결말 부분에서 또 한 번의 <로언 트리>를 노래한다. 윌리엄스는 그가 만든 놀이터의 그 그네에 앉아 이 노래를 부른다. 영화는 그렇게 윌리엄스의 삶이 그곳에서 끝났음을 암시한다. 노래를 하는 윌리엄스의 표정은 행복하다. 그는 그렇게 행복한 결말을 맺은 것이다.
(링크 : https://youtu.be/4ea8IKMNxck?si=dn8W-uHol5Kicgj9 )
영국 배우 빌 나이(Bill Nighy)가 연기한 영화는 올리버 허머너스 (Oliver Hermanus) 감독이 연출했으며, 각본은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즈오 이시구로 (Kazuo Ishiguro)가 맡았다고 전해진다.
원작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이키루>(生きる)로 알려진다. 1952년작으로 패전 후 일본의 모습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링크 : https://youtu.be/O6GkFP_-loU?si=ZIOt6vAJeA_1QS7d )
원작을 살펴볼 기회는 없었다. 아마도 더 일본적인 요소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을 것으로 추측할 따름이다. 어쩌면, 그 영화도 좋아했을 수도 있겠으나 음악 때문에라도, <이키루>의 와타나베보다는 윌리엄스 때문에라도 <리빙: 어떤 인생>을 더 좋아했을 것임이 분명하다.
영화는 '삶의 행복이란 평범한 일상에서 찾을 수 있다'는 말을 하고팠던 것 같다.
지난 12.3 계엄 사태로 촉발된 국가적 혼란에서도 느낄 수 있었던 것처럼 극히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한다. 매일 반복적으로 할 수 있는 그 자잘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돌아보게 한다.
영화는 그 일상성에 나타난 소소한 행복을 얘기한다.
역설적이게도 그래서 그 여운이 더 오래 남는 것 같다.
https://youtu.be/7PVx0Hn2Rqc?si=gH-LCeI-Ecq5FiS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