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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넌들낸들 Jul 24. 2023

대장암 4기라니...

그동안 혼자 얼마나 괴로웠을까...


지난 목요일에 거의 한 달 만에 찾아뵈었더니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보자마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기력이라곤 하나도 없이 멍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던 할머니

"왔나... 들어온나..."



할머니는 오전부터 동네 작은 병원에 가 약을 타오셨다. 작년부터 설사, 소화불량으로 힘들어하셨다. 나도 종종 할머니 약 심부름을 했다. 그때마다 큰 병원 가서 검사받아보자고 늘 졸랐다.

"큰 병 아니다. 괜찮다." 하며 병원을 마다 하셨다.

낮에 찾아뵙고  걱정되어 저녁에 다시 전화 걸어 안부 확인 하는 게 나의 일상이었다.

전화 상으로 듣는 할머니의 목소리는 기운이 돌아오신 거 같아 안심했었다. 할머니 말을 전적으로 믿었다.

그동안 나의 안일함을 반성했다.

아이가 아프다고 내가 아프다고 전화로만 살폈더니

할머니는 얼굴에 살이 쏙 빠지고 어깨도 축 쳐지고 온몸에 근육이라곤 찾아볼 수 없이 모든 살이 다 처져있었다. 꼭 산송장 같아 보였다.


그동안 뭘 제대로 먹지도 못한 듯했다.

난 본죽에 죽을 주문 시켰다. 죽이 올 때까지 다리를 주무르고 또 주물렀다. 내가 우스갯소리를 해도 웃지도 않고 멍해 있었다.

할머니의 눈빛을 보는데..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머지않았다.' 란 말이 뇌리를 스쳤다.

나와 같이 온 엄마는 조용히 할머니 옆모습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엄마의 눈빛에 슬픔과 화가 섞여있었다.

"엄마 제발 큰 병원에 가서 검사 좀 받자. 이런 약 먹어서 될 게 아니다. 엄마가 이 상태인데 형제들끼리 의기투합해도 모자랄 판에 이러고 있다. 속이 터진다."

"됐다. 큰 병 아니다."

엄마는 곧 삼촌과 통화를 나누었다.

죽이 도착했고 할머니 상을 차려드렸다.

입맛이 없으신지 맛나게 드시진 않지만 그래도 뭐라도 드시니 안심이 되었다.

할머니 드시는 동안 부엌에 가보니

반찬들이 엉망이다. 다 음식물 쓰레기였다.

다 치우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다시 전화를 걸었다. 목소리가 좋지 않았다.

"할매 뭐 먹고 싶노? 할매 좋아하는 과일 좀 사갈까? 복숭아? 포도?"

"몰랑한 복숭아 사온나. 지난번에 맛있더라."

"알았다. 낼 보자. 아프면 큰 병원 가보자."

"약 먹고 효과 있다. 진정됐다."

"맨날 같은 소리... 저녁은? 아까 사준 죽 좀 먹지?"

"차려 먹었다. 걱정 안 해도 된다."

"할매가 안 아파야 걱정을 안 하지! 맨날천날 아파서 제대로 먹지도 않고 기운이 빠져 있는데 내가 걱정 안 하게 생겼나? 할매가 안 아파야 같이 놀러도 가고 맛난 것도 먹으러 가지!"

난 할머니한테 속사포로 따져 들었다. 할머니는 내 말이 다 맞다며 웃으시고는 전화를 끊으셨다.


다음날 금요일

그동안 장맛비가 많이 내려 맛난 과일이 있을까? 걱정하며 마트로 가보았다. 비 오기 전에 따놓은 과일들 상태 좋은 과일들만 마트로 가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할머니가 좋아하는 포도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복숭아가 많이 보여 상태 좋아 보이는 걸로 골랐다.

아이 유치원 하원 후 아이랑 함께 할머니 댁에 갔다. 베란다로 내가 오는 걸 보았는지 미리 현관문을 열고는 옷장 안에서 뭔갈 열심히 찾고 계셨다.

"할매 왜 문 열고 있노?"

"어 니 오는 걸 봤지."

"심심해서 베란다 앉아 있었나 보네. 내가 보였으면 얼른 부르지. 그럼 밑에서 신나게 손 흔들었을 긴데."

할머니와 난 서로 마주 보며 피식 웃었다.

증손녀와 손주 사위가 들어오자 환하게 반기셨다.

조용히 있다 누가 오니 반가웠을 거다. 

혼자 얼마나 외로웠을까... 할머니 안색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사 온 호박죽과 복숭아는 쳐다도 보지 않고 그저 증손녀만 보고 있었다.


냉장고에 복숭아 넣어두고 저녁 약속이 있어 일어났다. 할머니는 손에 꼭 쥐고 있던 용돈을 내 가방에 막 쑤셔 넣으셨다.

근데 그 순간 이 용돈이 마지막 용돈이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거절하지 않고 받았다. 할머니가 베란다 창 밖으로 날 발견하고는 그때부터 줄려고 손에 쥐고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할머니 마음을 거절할 수 없었다.

"할매 이 돈 내가 잘 가지고 있다가 할매 배 아픈 거 괜찮아지면 할매 좋아하는 오리 불고기라도 먹으러 가자. 내가 잘 보관하고 있을게."

"됐다. 아 새 옷이나 사 입히라. 난 계속 배 아플 거 같다. 얼른 가라 차 막힌다. "



차로 돌아와 신랑이 한숨을 쉬고는 말을 했다.

"할머니 얼굴을 못 보겠더라. 진짜 네가 느낀 그대로 머지않아 보이더라. 너무 걱정이네. 마음이 너무 안 좋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거운 저녁을 보냈다.


주말에 전화로만 할매 안부 확인했다.

괜찮다고 맨날 하는 말

그저 믿었다.


오늘 아침 눈 뜨자마자 아이가 불덩이라

병원에 다녀오고 온통 아이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도 아이는 열이 39.8도로 높았다.


물수건 해주며 아이 몸을 닦아주던 그때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당연히 손녀 걱정으로 전화했겠지 하며 별생각 없이 받았다.


"할머니... 대장암 4기란다. 장까지 다 번졌다네..

수술도 안되고... 약물 치료만 해야 된다네... "

이 말만 남기고 끊었다.

전화 끊자마자 난 눈물이 쏟아졌다.

작년부터 할머니 아팠는데... 더 챙기지 못한 나한테 화가 났다. 아플 때 억지로라도 병원에 모시고 가서 검사만 받았더라면...

그동안 혼자 아파했을 할머니 생각하면 너무 속상하다.

속 쓰려하고, 소화 안되고, 설사하고 그러다 변비에 시달렸다. 그걸 작년부터 계속 반복했었다.

한심한 나에게 화가 난다.


그 와중에 아이 열은 안 떨어진다.


"율아.. 너까지 아프지 마..

 엄마 너무 속상하잖아... "하며 눈물이 쏟아졌다.

아이도 당황해한다. 그 작은 손으로 내 눈물을 닦아준다.

"엄마 나도 내 마음대로 아픈데 어떻게 해..."


아이를 봐서라도 눈물을 참아야 하는데 절없이 눈물이 쏟아진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아이는 다시 잠이 들었고...

할머니는 수술에 들어가신다.

제발 수술이 잘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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