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C.S(8)

해군사관후보생

by 글짓는 베짱이

8장. 필승주(1996.06.27; 해군 소위가 되다)


기수 구보가 끝나고 온몸이 몽둥이로 심하게 두들겨 맞은 것 마냥 기상나팔소리에 일어나는 같은 방 동기들의 신음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그렇지만 서로를 쳐다보며 한결 여유로워지고 품위가 느껴지는 동기들을 보면서 내 모습이 투영된 듯 내심 뿌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음~ 멋지다! 김건민"

갈색 해군 근무복을 매만져 주면서 위아래를 훑어보는 훈련관의 눈빛이 어제까지와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악당에서 사람으로 그것도 선한 사람으로 변신한 훈련관들이 낯설었지만, 처음으로 경험하는 따뜻한 말투와 눈빛이 발끝을 시작으로 온몸을 타고 전율을 일으켜 깜빡하면 "형~" 하면서 왈칵 껴안을뻔했다. 그동안 일부러 악당처럼 굴었다는 듯 훈련관들은 점잖고 예의 있는 언행으로 우리를 진정한 해군 장교로 대우하고 있었다.


언제쯤 해군의 경례구호인 '필승!'을 외쳐보나 했는데 어느덧 우리는 진짜 해군 장교가 되어 있었고, 바로 오늘이 그날이었다. 온 전신과 손가락 마디마디까지 정성과 품위를 담아 "필승~!"을 때리자 훈련 관도 지지 않겠다는 듯 평소보다 더욱 멋진 자세로 "필승~!" 하면서 우리들의 경례에 화답했다.

해군사관후보생 훈련과정의 마지막 단계인 필승 주가 활짝 문을 열었다.


이제는 식당에서 직각보행과 직각 식사가 너무나 편안하게 느껴지고 매일 흐르는 두곡의 기생가가 정겹게 들렸으며, 이동시 3 보이상 구보는 몸에 배어 뛰지 않는 게 어색할 정도가 되었다. 어느샌가 이동시 인솔하던 훈련관들이 안 보이고 식당에서도 매섭게 노려보던 훈련관들이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웬만한 기초훈련, 구보 등에도 한 명의 훈련관이 간단히 명령하고는 사라졌다. 그렇지만 우리는 여러 명의 훈련관이 인솔하던 그 모습 그대로 아니, 더욱 질서 있게 각을 잡아가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분열!'(정지된 참관자에게 군대가 이동하면서 예를 표하는 것)

임관식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우리는 분열 연습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임관식 당일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 친구 등이 보는 앞에서 100일간 만들어진 진짜 해군 장교의 늠름함을 뽐내기 위한 마지막 훈련이었다.

분열에서 중요한 건 이동시 걸음걸이와 걸음 폭, 손 높이와 우대각(오른쪽 열), 주대각(대각선 형태의 줄)이 완벽하게 일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상에 앉아서 보는 귀빈들이 느꼈을 때 거대한 행렬이 한 몸 둥이가 움직이듯 정교하고 흐트러짐 없이 이동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당일 최소한 해군참모총장, 국방부 장관도 참관한다는 훈련관들의 말에 더욱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20221027_214336.jpg [1996.06.27 임관식 장면]

1996.06.27 임관식 당일 오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처음 입영 당시 집합했던 바닷가 연병장에서 귀빈들에게 멋진 분열 모습을 보여주기를 갈망했는데 결국 여름 장마가 시작되면서 완벽하게 준비한 분열을 뽐내지 못하게 되어 무척 아쉬웠다. 대신 체육관에서 조촐하게 임관식만 진행되었다.

[임관식 세리모니]

모든 식순이 끝나고 우리는 모자를 벗어 머리 위로 던지는 임관식 세리모니를 하면서 100일간의 고통과 눈물과 웃음과 감동을 한데 섞어 환호를 질렀다.


임관식에 참석한 어머니, 형, 형수와 함께 차를 타고 해군사관학교 교정을 빠져나가는데 훈련관들이 일렬로 도열하여 떠나는 우리들에게 마지막 경례를 하고 있었다.

"필승!" 훈련관들의 경례구호가 차 안에서도 선명하게 들렸고 가슴이 뭉클해졌다.


해군사관학교를 벗어나 삼정 문으로 가는 꼬불꼬불한 길에 보이는 진해의 바닷가는 언제나처럼 햇볕이 쏟아져 반사되는 햇살 조각들로 눈부셨다. 창문을 열자 훅하고 코를 자극하는 바다 냄새가 이제는 고향의 흙냄새처럼 익숙해져 기분이 아주 편안해졌다. 입영식 날 까까머리들로 가득한 해군 버스를 타고 낯선 이 길을 거슬러 들어오면서 느꼈던 그 감정을 이렇게 추억하는 날이 왔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아~ 진해! 그리고 해군사관학교!

그리고 저 검푸른 바다에 내 젊음을 송두리째 갈아 넣어야 한다는 처음의 막연한 두려움을 이겨낸 우리는 강인한 신체와 정신력으로 무장한 '가장 강하고 멋있는 해군 장교'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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