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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베짱이 Jan 28. 2023

질리지 않는 매력 [BMW 528I]

자동차 대마왕(11)

매번 보는데도 질리지 않고 오히려 더 알아가고 싶은 매력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잠시 만났는데도 어딘가 모르게 그 끝은 다 본 것 같아 바로 질려버리는
사람도 있다.

물건도 그렇다.
 
어떤 물건은 쓰면 쓸수록 정말 잘 샀다고 스스로 칭찬하며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물건이 있는가 하면, 구매하고 나서 바로 후회하거나 조금 쓰다 보면 싫증이
나는 물건도 있다.


그렇게 시니컬하면서 테크니컬 한 매력에 푹 빠졌던 [아우디]와의 시간이 끝나갈 무렵까지 내 마음을 흔드는 자동차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현실주의자에 가까워 내가 구매할 수 있는 영역의 안에서 맴도는 차량들만 찾다 보니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익어가는 중년의 나이가 내 심장을 심심하게 바꾸어 놓은 부분도 무시할 수는 없겠다. 


[아우디]에서 조금씩 마음이 멀어지면서 대안으로 생각해 본 몇 개의 자동차 브랜드 중 마지막엔 [벤츠]의 E클래스와 [BMW]의 5시리즈만 남았다. 왠지 [벤츠]는 고급스럽지만 나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었고, 한편으론 더 나이가 들고 만족스러운 경제 상황에서 기회가 된다면 마지막으로 S클래스를 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이번에는 꼭 타보고 싶은 차량을 구매하기보다는 몇 안 되는 대안 중에서 지우다 보니 자연스레 남게 된 차가 [BMW]의 5시리즈였다. [아우디 A6]를 타면서 토크와 마력에서 넘치는 강력한 힘은 만족 그 이상이었지만 정차나 저속주행 시 느껴지는 진동과 디젤엔진의 그 거친 음색이 점점 거슬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엔진은 가솔린으로 변경하고, 구동은 [아우디]에서 느꼈던 네 바퀴 굴림의 매력을 이어가기로 했다. 최종적으로 신중하게 선택하게 된 차량이 지금도 타고 있는 [BMW 528i Xdrive]였다. 


이 녀석을 처음 만난 게 2016년 5월이었으니 올해 5월이면 7년 동안 나와 가족을 위해 기꺼이 등을 내어주고 달려준 장년의 나이쯤일 것 같은 구닥다리 애마가 되어간다. 이 녀석은 내가 타본 차량들 중 가장 오랫동안 변치 않고, 오히려 같이 늙어가는 세월을 닮아가는 중이다.


나는 내 인생의 1/3 가량인 16년을 넘게 학원에서 보냈다. 그러다 보니 학원에서 만난 수많은 강사들과 학생, 학부모들을 통해 자연스레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음을 깨닫고 느끼며 살아왔다. 특히, 함께 근무했던 강사들 중에서 기억에 남는 사람들이 여럿 있다. 초보 강사시절 나를 데리고 다니며 친절하게 강사생활에 적응을 시켜주었던 실장은 친해지면서 원장이나 강사들 험담으로 내게 좋았던 첫인상을 180도 바꾸었던 사람이었다. 내가 원장시절 싹싹하고 인상이 좋아 채용했던 A 강사는 오래되지 않아 원생들을 빼가는데 골몰하다 학원을 시끄럽게 휘젓고 들켜서 퇴직한 사람도 있다. 또 한 명의 B 강사는 고등부관을 추가로 개원하기 위한 중요한 갈림길에서 그저 무난한 첫인상이 조금 걱정이 되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진가를 발휘하며 내 마음과 원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B 강사와는 학원에서 5년여를 함께 근무하고 퇴직하고도 올해로 3년째 동생처럼 자주 만나는 귀한 인연이 되었다.


지금의 [BMW 528i Xdrive]는 8년 전 만난 B 강사처럼 첫인상이 그냥 무난한 느낌이어서 내가 금방 질리지 않을까를 살짝 걱정했었다. 사실 공도에서 너무나 자주 만나는 흔한 차량이다 보니 익숙해져서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BMW] 차량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가 적었던 탓도 있었다. 처음 3년은 그냥 조용하고 힘도 만족스러우면서 안락하다는 느낌이었지만, 처음으로 리스를 2년 연장하면서 숨은 매력들을 찾아내게 되었다. 앞에서 보는 [BMW] 특유의 독창적인 키드니그릴, 뒤태의 단정한 심플함은 두고두고 질리지 않는 디자인으로 느껴졌다. 특히 이질감 없는 엔진이 전달하는 부드러운 가속감과 핸들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떨림은 외부의 모습과 중첩되면서 마치, 검은 표범이 먹이를 낚아채기 전 숨을 죽이고 웅크리고 있는 강렬한 느낌마저 들 때가 있다. 


결국, 자동차 대마왕인 내가 연장까지 한 2년의 리스기간을 다 채웠지만 반납해서 다른 차로 교체하지 않고 인수까지 하여 2년여를 더 타고 있으니 이 녀석에겐 질리지 않는 매력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3년 전, 아내의 차로 10여 년 전에 정말 좋은 느낌으로 탔었던 [푸조] 차량 중 [508SW]를 분양받아 가끔 프랑스 감각의 펀(fun) 드라이빙의 묘미를 만끽하고 있는 중이다.


처음 '하얀색 깍두기 [티코]'를 시작으로 '새빨간 [프라이드 베타]', '까망이 [르망 레이서]', '늪에 빠진 [누비라2], '올록볼록 [싼타페]', '난도질당한 [EF소나타]', [트라제 XG]와 [삼성 SM5], '전화위복이 된 [푸조 308SW], [아우디 A4와 A6], [폭스바겐 CC], 그리고 지금의 [BMW 528i Xdrive]와 [푸조 508SW]까지

총 14대 차량에 대한 추억을 소환해 보았다. 군시절 서너 달 잠시 탔었던 [현대 스쿠프]와 학원용으로 끌었던 [카니발]과 [스타렉스]까지 합하면 총 17대를 운전해 본 나는 정말 자동차에 미쳤었던 게 맞는 것 같다.


지금도 누군가 나에게 "당신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 뭐라고 생각하나?"라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자동차"라고 답할 것이다. 

자동차는 나에게 끊임없이 이어진 길 위에서 다양한 세상을 맛보며 수많은 꿈을 꾸게 해 준 인도자면서, 가끔은 슬프거나 기쁠 때 아낌없이 자신의 공간을 내어준 감성의 벗 그 이상이었다. 

자동차와 함께한 30여년간의 추억의 사소한 일부를 꺼내보면서 나는 그때의 색채와, 그때의 소리와, 그때의 냄새를 느낄 수 있어서 행복한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재미없는 <자동차 대마왕> 시리즈를 혹시라도 재미있게 읽어주신 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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