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8년 일관 최천벽이 만든 천동상위고(天東象緯考)는 하늘이 임금의 정치가 잘되고 못 되는 것을 경계하는 조짐이라 보는 천인감응론 사상에 맞추어 고려사에 존재하는 천문 기록을 재편한 책이다. 즉, 고려사에 등장하는 천문 현상 기록과 그에 대해 점친 기록들이 당시의 역사적 사건들과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철학에 따라 만들어진 책이다. 천동상위고는 권 1에 하늘의 변이, 권 2에 땅의 변이, 권 3·4에 해의 변이, 권 5에 달의 변이, 권 6∼13에 달과 행성과 항성 등의 접근현상, 권 14에 혜성, 권 15∼17에 유성, 권 18에 그 밖의 여러 변이 등이 수록되어 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천동상위고
그런데 권 1의 하늘의 변이, 즉 천변이점(天變異占) 편의 첫 장의 서(序)를 보면 우리가 잘 이해할 수 없는 천변에 대한 해석이 나와 있는데 바로 천렬(天裂), 즉 하늘의 갈라짐 또는 찢어짐이라는 현상이다.
"하늘이 갈라지는 것(天裂)은 양기(陽氣)가 부족하기 때문인데, 이것을 ‘신강(臣彊)’이라고 한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도모하려고 하여 나라의 군대가 분열한다. 하늘이 빛깔이 변하거나 갈라지는 그 아래에 있는 임금이 해당된다." - 천동상위고
천동상위고의 국역 자료를 볼 수 있는 한국고전종합 DB에서는 주석으로 천렬이란 '보이지 않던 유성(流星)이 폭발하여 보이게 되는 자연현상을 일컫는 말'로 해석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하늘에 갑자기 파이어볼(Fireball)이 튀어나와 가로지르는 현상으로 풀이될 수 있다.
파이어볼 출처 : BBC news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파이어볼로 보이는 현상에 대해 '하늘의 갈라짐'이란 말을 항상 쓰지는 않는다. 예컨대 고려사 천문지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강종(康宗)〉 2년(1213) 8월 계유 해질 무렵에 어떤 별의 크기가 해[日] 같았는데, 건방(乾方, 서북)에서 나타나더니 갑자기 땅에 떨어졌다.' - 고려사 천문지
이 기록은 강종이 붕어하기 며칠 전에 땅에 떨어진 유성에 대한 기록인데 해처럼 밝았던 유성이 등장했어도 하늘이 갈라졌다는 말은 쓰지 않고 있다. 따라서 유성이 떨어져도 어떤 특정한 형태의 모습으로 보였기 때문에 '하늘이 갈라졌다'라고 표현했을 것이다. '천렬'에 해당하는 고려시대 천문기록으로 최천벽은 다음의 세 가지 사건을 들었다.
'성종(成宗)
11년 임진년 12월. 밤에 천문(天門)이 열렸다. 점사(占辭)에는 “양기(陽氣)가 부족하니 그것을 ‘신강(臣彊)’이라고 한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도모하리라.”라고 하였다. 이듬해에 거란(契丹)이 침입하니 사신을 보내 강화를 요청하였다.
현종(顯宗)
5년 갑인년 11월. 천문(天門)이 열렸다. 점사에는 마찬가지로 말하였다. 이듬해 11월. 사신을 보내 송(宋) 나라에 가서 방물(方物 특산물)을 조공하고, 거란이 해마다 침입한다고 알렸다.
- 현종 5년(1014)에 있었다는 위 기록은 사실 고려사 천문지에 현종 15년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듬해 송나라에 사신을 보낸 것도 현종 6년의 일이기 때문에 이것은 최천벽이 날짜를 완전히 잘못 보고 해석한 것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한 점은 현종 15년 11월에는 일식이 있어야 하나 일어나지 않았다는 '일당식불식' 기록이 있는데, 발생해야 하는 일식이 발생하지 않은 것을 당시에는 임금을 상징하는 태양의 기운이 강해 벌어지는 사건이라 길조로 해석되었기 때문에, 신하의 기운이 강해 생긴다는 천렬 기록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따라서 이것을 가지고 헛갈렸던 최천벽이 고려거란전쟁과 동시에 김훈, 최질의 난이 일어난 현종 5년으로 급하게 들고 오지 않았나 싶다.
문종(文宗)
27년 계축년 9월 경술일. 밤에 천원(天苑)의 남쪽 하늘이 갈라졌는데 폭은 5~6촌이고 속은 적색을 띠었다. 11월 병인일. 밤에 문천(文天)의 서쪽 하늘이 갈라졌는데 길이는 15척이나 되고 폭은 3척이었으며 청적색(靑赤色)이었다. 점사에는 “하늘빛이 붉어지고 하늘이 갈라지니 피가 철철 흐르는 것을 보리라.”라고 하였다. 또 이르기를 “난을 일으키는 신하가 그 나라를 분열시키려 하리라.”라고 하였다. 3년 후 요(遼) 나라가 사신을 보내 압록강(鴨綠江)의 동쪽 땅을 관할하겠다고 요청하였다. 우리나라는 사신을 보내 요나라에 가서 땅을 분할하는 문제를 따져서 정하려 하였지만 결정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 천동상위고
위 기록들에는 서로 다른 특징이 있다. 성종과 현종 때의 기록은 '천문이 열렸다(天門開)'라는 말만 쓰여 있고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자세한 설명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문종 때에는 정확히 '천렬'이란 말을 쓰고 있다. 문종 기록에 따른 하늘이 갈라졌다는 두 곳의 위치와 크기는 아래의 붉은색 영역인 것으로 보인다.
천원 남쪽 (1073년 음력 9월 10일)
문천(문창, 미자르) 서쪽 (1073년 음력 11월 27일)
실제 파이어볼의 모습(Marko Korosec/Solent News/Shutterstock)
해당 기록의 음력 날짜는 고려시대 사료 데이터베이스, 음양력 변환은 한국천문연구원 홈페이지, 척과 촌의 단위는 '창환'이라는 분의 개인 홈페이지 중 '고천문 기록의 각도 변환' 글을 참고로 하였다.
위 그림처럼 일반적으로 유성이 떨어질 때의 궤적과 비슷한 데, 생각했던 것보다 폭이 작아 어떤 형태의 모습을 '천렬'이라 붙인 것인지 잘 모르겠다. 또한 천렬 현상이 벌어진 곳의 색이 적색, 또는 청적색이었다는 모습은 이것이 흡사 오로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도 한다. 오로라 현상은 주로 극지에서 일어나지만 역사 기록에는 '불빛과 같은 기운(有氣如火光)'으로 서술되어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다.
오로라 현상 (출처 : 전자신문)
이렇게 하늘이 갈라졌다, 또는 천문이 열렸다는 말이 정확하게 어떤 현상인지 해석하려면 좀 더 많은 사료가 필요할 것으로 여겨졌다. 우선 천문이 열렸다는 기록을 조선왕조실록에서 찾아보면 1건이 존재하는데 다음과 같다.
'선천군(宣川郡)에서 오시에 날이 맑게 개어 엷은 구름의 자취조차 없었는데, 동쪽 하늘 끝에서 갑자기 포를 쏘는 소리가 나서 깜짝 놀라 올려다보니, 하늘의 꼴단처럼 생긴 불덩어리가 하늘가로 떨어져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 불덩어리가 지나간 곳은 하늘의 문이 활짝 열려 폭포와 같은 형상이었다.'
- 광해군일기[중초본] 7권, 광해 1년 8월 25일 癸酉 3번째 기사
대낮이었음에도 매우 강력한 소리를 내던 불덩어리가 지나갔는데 지나간 곳이 하늘의 문이 열려 폭포와 같은 모양이었다고 한다. 고대에는 우주가 물로 차 있다는 생각을 해서 이렇게 이야기했는지 모르겠지만, 매우 거대한 파이어볼이 지나간 것이 확실해 보인다. 흡사 영화 '딥임팩트'에서 혜성이 충돌하기 직전의 모습처럼 말이다.
영화 '딥임팩트'의 한 장면
조선 현종 9년인 1668년 음력 2월에는 함경도에서 '유성우'를 본 것으로 판단되는 기록이 존재한다. 참봉 박승후라는 자가 상소를 올렸는데 이것에 대하여 좌의정이었던 허적(許積)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여기서 천개, 즉 하늘이 열린 것과 천탁, 즉 하늘이 갈라진 것은 또 다르게 해석되었다. 박승후는 3일 뒤 상소를 다시 올리는 데 이때 '천렬'이라는 단어를 정의하여 사용한다.
"2월 23일 초저녁에는 온 하늘 사방에 거의 20곳이나 되는 곳이 일시에 갈라졌는데, 모양이 4, 5척 되는 장검을 세워 놓은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조보(朝報)에는 나오지 않았으니, 이곳에서만 보이고 저곳에서는 보이지 않은 것은 아닙니까. 신은 우러러 그 변고를 보고는 마음이 놀랍고 보기에 참혹하였습니다. 이에 방서를 상고해 보니, 거기에 ‘하늘이 갈라진 것은 양(陽)의 기운이 부족한 것으로, 나라가 분열되려는 상이다.’고 하였습니다. 한 혜제(漢惠帝) 2년에 하늘의 동남쪽이 갈라졌으며, 진 혜제(晋惠帝) 원강(元康) 2년에 서남쪽 하늘이 갈라졌으며, 양 무제(粱武帝) 태청(太淸) 2년에 서북쪽 하늘이 갈라졌는데, 끝내는 모두 병란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니 지금 하늘 사방이 모두 갈라진 것이 어찌 크게 두려운 것이 아니겠습니까."
- 현종개수실록 19권, 현종 9년 4월 29일 丁酉 2번째 기사
박승후의 경우는 매년 양력 4월에 발생하는 리리드(Lyrid), 즉 거문고자리 유성우를 목격한 것으로 보인다.
거문고자리 유성우는 기원전 687년부터 관측된 기록이 있는 오래된 유성우이다. 아직 유성우라는 개념을 알기도 전이었기 때문에 박승후는 이것을 '천렬'로 해석한 셈이다. 동시에 여러 개의 유성이 내리고 때때로 강한 빛을 내뿜는 유성도 나타났기 때문에 단순한 유성으로 보지 않았던 것이다.
중국의 사서에는 비교적 풍부하게 '하늘이 갈라진' 기록이 보인다. 챗GPT의 도움을 받아 각종 사서의 기록들을 아래와 같이 모아 보았다.출처
'융경 3년(1569) 5월, 강주 서북하늘이 갈라졌다. 처음에는 보잘것없고 희미한 상태에서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합쳐졌다.' - 《明書司天志》:「隆慶三年五月絳州西北天裂,自醜至寅乃合。」
'태안(太安) 연호에 하늘이 갈라져 천둥소리처럼 크게 울렸으며, 이때에 장사왕(사마애)은 황제를 호위하여 출정하여 성도왕 사마영에게 맞서려 하였고, 하간왕(사마옹)은 각자의 세력을 발휘하여 반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태안 2년(303) 8월, 하늘이 두 부분으로 갈라지고, 구름이 없으면서 천둥이 쳤다. 목제(穆帝) 승평 5년(361), 하늘이 갈라지며 수 장에 걸친 큰 폭으로 퍼져, 그 소리가 천둥과 같았다. 애제(哀帝)가 처음 왕위에 오르자, 하늘이 서 너 장에 걸친 폭으로 갈라지며 소리는 천둥 같았다. 들판의 새들은 모두 울었다.'
'양 태청 2년(548) 1월, 서북 하늘이 열리고 길이 10장, 폭 2장에 걸쳐 번졌다. 번쩍이는 빛은 번개처럼 나왔으며, 소리는 천둥과 같았다.'
- 《南史梁本紀》:「梁太清二年元月天裂於西北,長十丈闊二丈光出如電,其聲若雷。」
'보대 13년(955) 겨울 12월, 동북 하늘이 갈라지고, 그 길이는 십이 장에 이르렀다.'
- 《續唐書天文志》:「保大十三年冬十二月天裂東北,其長十二丈。」
'대덕 3년 (1299) 기해 가을 9월 말일, 나는 새벽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을 때 아침 별은 아직 나무 끝에 머물러 있었는데, 갑자기 남서쪽에서 천장이 수십, 수백 미터에 이르도록 갈라졌다. 불길처럼 빛나는 불꽃이 땅을 비추어 넓은 들판을 뚫고 나가고, 한동안 마을 개들은 모두 짖어대었고, 밤새 깨어 있는 새들은 날아다니며 울었다. 주목해 보니 그 갈라진 곳은 미끄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가운데에서는 큰 빛이 마치 금속이 제련되는 것처럼 빛나고 있었고, 잠시 후에야 다시 합쳐졌다. 뱃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이건 하늘이 눈을 뜨는 것이다.''
'건륭 51년(1786) 8월, 구강 하늘에서 남서쪽으로 갈라져 여러 장에 이르는 크기였고, 빛이 마치 용광로 불빛처럼 화려하게 떠오르며, 시간이 흘러 황색에서 흰색으로 변해가면서, 잠시 후에 서서히 합쳐졌다.'
- 《江西通志》:「乾隆五十一年八月九江天西南裂丈餘,光焰如爐火,旋變黃色繼白色,逾時漸合。」
'가경 13년(1808) 가을 7월, 영주에서 동남 하늘에 몇 장에 이르는 크기로 갈라지고, 바퀴처럼 큰 물체가 돌출되어 붉은빛이 하늘을 비추며, 소리는 천둥소리처럼 울렸다.'
- 《湖南通志》:「嘉慶十三年秋七月永州見東南天裂長數丈,有物突出大如車輪,紅光燭天聲如雷。」
'함풍 3년 (1853) 봄 1월 22일 자정 전, 하늘이 어둡고 구름이 약간의 비를 내리고 있었으나 자정을 넘어가서 갑자기 소리가 마치 비단처럼 찢기는 것처럼 울렸다. 중앙에서부터 넓게 몇 장에 이르는 폭으로 펼쳐지며, 약 1분 동안 동서로 서서히 확장되어 남북으로 진행되었다. 곧이어 금빛 선처럼 직선으로 서로 합쳐지면서 금빛 빛이 하늘 전체에 퍼져 지면을 적시고 있었다.'
'함풍 4년(1854) 갑인 3월, 서쪽 하늘, 왕리압계 일대에서 수백 개의 작은 구멍이 나타났고, 반짝이며 금빛 빛을 내고 있었다.'
- 《續遵義府志祥異》:「咸豐四年甲寅三月西天旺裡鴨溪一帶天開數百小眼,閃爍作金光。」
'광서 6년(1880) 2월 3일, 아직 이상이 일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동남쪽 구석에서 천둥소리처럼 울리는 소리가 나고, 불처럼 번쩍이는 빛이 길이 10여 야드에 이르며,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소멸되었다'
- 《洪洞縣誌祥異》:「光緒六年二月三日未災東南角有聲如雷似天裂者,光如電長十餘丈,逾時始滅。」
'중화민국 7년(1918) 어느 밤, 동북쪽 하늘이 갑자기 갈라졌는데, 양쪽 끝은 좁고 가운데는 넓게 펼쳐져 있었으며, 색깔은 붉은빛이었고, 흔히 '하늘이 눈을 뜨는 것'이라고 불렸다'
- 《大荔縣新志足征錄異征》:「民國七年某夜天東北忽裂,兩頭狹中闊,其色赤,俗名天開眼。」
'중화민국 22년(1933) 6월 12일 자정, 별과 달이 빛나게 만나며, 하늘이 한 틈 열렸고, 기이한 빛이 땅으로 비추어졌다.'
- 《明溪縣誌大事志民國》:「民國二十二年六月十二日夜半星月交輝,天開一隙,奇光射地。」
하늘이 찢어졌다는 말은 성경에도 한 구절이 나온다. 마가복음 1장 10절은 다음과 같다.
'그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쌔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셔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 들더라' - 마가복음 1:9-13
'Just as Jesus was coming up out of the water, he saw heaven being torn open and the Spirit descending on him like a dove' - MARK 1:10
이처럼 하늘의 갈라짐은 왕조, 국가 또는 성인의 새로운 탄생을 나타내는 수식어로 많이 활용되었음을 볼 수 있다. 때로는 파이어볼이, 때로는 유성우가, 또 때로는 알 수 없는 무엇이 '천렬'이란 단어로 기록되어 왔다. 틴들 현상이나 되빛내림 현상 같은 단순히 빛에 의한 기이한 광경을 본 것일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이러한 현상을 과거의 사람들은 일종의 하늘의 계시, 천명(天命)으로 삼았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