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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전문가윤담헌 May 11. 2023

Vela Junior의 최초 발견은 어쩌면 고려일지도?

1350년 충정왕 2년 낮에 보였던 별의 정체는

 지난 글에서 13-14세기에 폭발이 일어났을 것으로 보이는 돛자리 초신성 잔해 Vela Junior에 대하여 이야기 하였다. 남극의 빙하에서 감마선 폭발이 원인으로 보이는 질산 이온이 급증했던 지점이 지금으로부터 680년 전인 1320년으로 추정되며 현재까지 발견된 초신성 잔해 중 Vela Junior가 가장 근접한 대상인 것은 맞지만 문제는 이 시기에 어느 역사 기록에서도 이 시기 초신성 폭발을 정확히 묘사한 기록이 없었다는 것이다.

 폴리네시아 문명을 연구하는 남아공 프레토리아 대학의 Wade 교수가 1271년 일본 기록이 Vela Junior 가 폭발한 기록이라는 주장을 들고 나온 적이 있었다. 기록인 즉 일본 가마쿠라 시대의 승려였던 니치렌이라는 승려가 종파 분쟁으로 인해 다쓰노구치라는 곳에서 1271년 9월 13일 처형되기 직전 갑자기 보름달만한 신성이 나타나 집행관이 칼을 버리고 도망갔다는 일본에서는 제법 유명한 이야기가 초신성과 연결되었다는 것이다.

일본 승려 니치렌이 처형당하기 직전 신성이 나타난 장면

 이 신성에 대한 기록은 이후 니치렌이 9월 21일에 쓴 편지에 현재까지도 '나를 축복하고 있다'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 후 언제까지 신성이 보였는지는 모른다. 아무튼 Wade 교수는 이 기록이 곧 Vela Junior 일 것이라고 주장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 기록 외에 다른 나라, 즉 남송의 역사서나 고려사에는 같은 기록이 없다. 1271년은 고려 원종 11년인데 고려사 천문지에서 원종 시기 기록은 다른 시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천문 기록이 있다는 점에서 돛자리 부근에서 그렇게 큰 신성이 몇일이나 나타난 것을 보지 못했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것도 당시 일관이 오윤부인데!)

 또한 신성이 관측 가능했던 기간도 다른 유명한 신성보다도 관측 기간이 짧다.

SN1604 케플러 신성

 예컨대 남극 빙하에서의 또다른 질산 이온 피크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1604년 케플러신성(SN1604)은 다른 기록도 아니고 무려 선조실록에 관측기록이 자세히 나타나 있는데, 선조실록에서 '객성'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했을 때 1604년 음력 9월 21일부터 1605년 음력 3월 15일까지 6개월 가까운 관측 기록이 존재한다. 물론 초신성을 육안으로 관측할 수 있었던 시간이 남극 빙하의 질산 이온 농도와 정확히 비례한다고는 볼수 없다. 그러나 1320년으로 판단하는 Vela Junior에 의한 질산 이온 피크와 1604년의 질산 이온 피크의 강도가 비슷한 수준이란 점에서 1604년 선조 실록과 비슷한 수준의 관측 기간이 존재해야 한다는 점은

논리적으로 합당하다.

 그렇다면 1320년 전후의 역사 기록 중 좀 더 관측된 기간이 오래 된 것은 없을까.

 이러한 목적으로 고려사를 뒤지던 와중에 1350년 충정왕 2년의 기록을 찾게 되었다.


2년 3월 을축일. 헌원성좌에서 달무리가 있었으며 달이 태미원으로 들어갔다. 병인일. 달과 형혹성이 함께 머물렀으며 또 태미원으로 들어갔다. 5월 기사일. 월식(月食)이 있었다. 7월 정축일. 어떤 별이 낮에 나타났다. 무인일. 또 그런 현상이 나타났다.

二年三月乙丑 月暈軒轅, 入太微. 丙寅 月與熒惑同舍, 又入太微. 五月己巳 月食. 七月丁丑 有星晝見. 戊寅 亦如之.

[네이버 지식백과] 충정왕 [忠定王] (국역 고려사: 지, 2011. 10. 20.,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1350년 음력 7월 정축일은 24일로 양력으로는 8월 27일이다. 다음날에도 보였다고 한다.

 천문기록에 태백주현(太白晝見)이라는 말은 자주 나온다. 금성이 낮에 보였다는 말인데, 문헌통고에 따르면 해가 지기 전 금성이 미(未)-신(申)방향(남서쪽)에서 출현하는 것을 주현(晝見)이라 하고, 오(午)방향(정남쪽)에서 나오면 경천(經天)이라고 한다. 옛날에는 이것을 태양의 양기가 약해서 생기는 일이라고 보았는데 특히 금성이 정남쪽에서 보이는 것은 태양으로부터 금성이 아무리 동쪽으로 떨어져 있어도 아직 해가 지려면 한참인데 보인다는 것으로 매우 불길한 징조로 보았다.

 1350년 기록은 이와 비슷하게 태백이 아니라 '어떤 별(有星)이 낮에 나타났다'는 표현이 있다. 그렇다면 같은 시기 원사(元史)에는 어떤 기록이 있을까. 1350년 원 혜종 또는 순제(順帝) 18년, 지정(至正) 10년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秋七月辛酉,太陰犯房宿。癸亥,以大護國仁王寺昭應宮財用規運總管府仍屬宣政院。辛未,太白晝見。丁丑,太白復晝見。

- 원사, 권 42 순제 지정 10년의 기록


7월 신미일은 18일이고 정축일은 24일이다. 그러므로 일주일간 태백주현의 기록이 있다. 정축일의 기록은 고려사의 기록이 있는 날과 같다. 이상한 점은 24일의 기록에는 '태백이 다시(復) 낮에 나타났다'라고 되어 있다. 음력 9월에는 다음 기록이 있다.


九月癸丑朔,太白晝見

- 원사, 권 42 순제 지정 10년의 기록


1350년 음력 9월 1일 계축일은 양력 10월 2일이다. 이 때도 태백 주현이라는 말이 있다. 기록이 듬성듬성 있지만 7월과 9월에 금성이 낮에 보였다는 기록을 연결지어 보면 2개월의 시간동안 낮에 별이 보였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때 태백인 금성은 어디에 있었는지 플라네타리움 소프트웨어로 검증해 보았다.

1350년 음력 7월 18일 (양력 8월 21일)의 금성의 위치

 위 그림은 음력 7월 18일 금성의 위치이다. 기록과는 다르게 새벽 동쪽 하늘에서 관측이 가능하였다. 일반적으로 태양보다 동쪽에 있어서 저녁 무렵부터 보여야 되지만 당시에는 서쪽에 있어 새벽에 보이는 '샛별'이었던 것이다.

1350년 음력 9월 1일(양력 10월 2일)의 금성의 위치

 두 달 뒤인 음력 9월에는 새벽에 금성의 고도가 이전보다 더 올라가 있다. 원사(元史)에서 '태백주현'이라고 기록한 1350년 음력 7월-9월은 금성이 새벽에 보이는 기간이었다. 그리고 같은 날 기록되어 있는 고려사에서는 '어떤 별이 낮에 나타났다(有星晝見)' 라고 표현하였고, 다음 날에 '또 그런 현상이 나타났다'고 하는데 아침에 해가 뜰 때까지 줄곧 보였을 샛별을 가지고 해가 뜬 다음에도 보였다고 해서 갑자기 '나타났다'라는 표현을 하지는 못할 것이다. 따라서 1350년 음력 7월-9월의 태백주현, 특히 고려사에는 '유성주현'이라 표현한 기록은 금성을 관측한 기록이라고 보기 힘들다.

 그렇다면 이 때 Vela Junior 가 있는 돛자리는 언제 하늘에 떠 있었을까.

1350년 음력 7월 18일 (양력 8월 21일)의 돛자리 위치

 별자리 위치를 나타내기 위해 밤하늘의 모습으로 보이게 했지만 시각과 해의 위치를 보면 밝은 대낮이란 것을 알 수 있고 돛자리와 Vela Junior 가 남쪽-남서쪽 방향에 위치한 것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태백주현이라 표현하는 곳에 위치한 것이다.

 Vela Junior 를 만든 초신성 폭발에 관한 기록이 역사서에 없는 이유는 돛자리가 너무 남쪽 하늘에 위치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초신성이 폭발한 기간이 낮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일관들도 관측은 밤에 하고 낮에는 업무 보고서를 썼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1350년 7월 정축일 낮에 별이 보이는 것을 보며 원나라에서는 '태백성이 낮에 다시(復) 나타났다'라 하고, 고려에서는 '어떤 별이 낮에 나타났다'라는 식의 결코 평소와는 다른 표현의 '주현(晝見)' 기록으로 존재하게 된 것은 아닐까.

 남극 빙하로부터 판단하는 1320년과 30년의 오차가 있고 추가로 정확한 기록이 없다는 점에서 어디까지나 가설로밖에 설명할 수 없지만 충정왕이 이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임금 자리에서 쫓겨나 독살당한 역사를 보면, 일면 아귀가 맞아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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