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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전문가윤담헌 May 09. 2023

고려 의종이 절했던 가짜 노인성은 무엇일까?

무신정변의 원인이 될 수도 있는 절정의 탐욕

 고려 시대를 전기와 후기로 나누는 가장 큰 사건이라 한다면 두말 할 것 없이 무신정변이라 할 수 있다. 무신정변은 1170년 가을 무신이었던 정중부, 이의방 등이 당시 임금이었던 의종을 끌어내리고 명종을 왕위에 앉혔던 사건이다. 너무나 유명한 사건이고 이 사건을 주제로 했던 '무인시대'라는 인기 드라마가 방영되었기에, 이의방, 정중부, 경대승, 이의민, 최충헌 등의 이름이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잘 알려져 있다.

 무신들은 의종의 사치와 향락으로 인한 과도한 낭비와 노동력 착취, 그리고 문신과의 차별로 인한 갈등이 원인이 되어  보현원에서 환관과 문신들을 모조리 살해하였고, 의종은 거제도로 유배보냈는데 3년 뒤 의종의 복위를 시도한 김보당의 난이 벌어지면서 이의민에 의해 시해당하고 만다.

고려 의종 (출처 : 무인시대)

 고려사는 무신정변이 일어나기 전 의종과 문신들이 정변을 맞이할 수 밖에 없던 이유를 적나라하게 서술하고 있다. 고려사 의종 24년(1170), 경인년의 기록은 의종이란 인물이 임금으로서 24년을 재위한 것이 무색할 정도로 사치와 향락의 연속을 그린다. 정월 초하루부터 문신들의 아첨질이 가득한 신년 하례문을 보면

안 본 눈을 사고 싶을 정도로 민망할 지경이다. 그리고 2월, 무신정변의 단초가 되었을 수도 있는 사건이 벌어진다.


'2월 갑신일. 낭성(狼星)이 남극(南極)에 나타났다.

서해도안렴사(西海道按廉使) 박순하(朴純嘏)는

이것을 노인성(老人星)이라 여기고 역마(驛馬)를 띄워 급히 보고해 왔다.'

[네이버 지식백과] 의종 24년(1170) 경인년 (국역 고려사: 세가, 2008. 8. 30.,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안렴사는 고려시대에 각 지방에 파견한 지방장관을 의미하는 관직이다. 서해도의 위치는 아래 그림과 같이 개경의 서쪽, 즉 지금의 황해도와 같다.

고려시대 행정구역

 위 그림의 안서 도호부가 설치된 해주가 안렴사가 재직하던 곳으로 개경과는 위도 차이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해도 안렴사 박순하가 노인성(老人星)을 발견하였다며

급하게 파발까지 띄운 것이다. 노인성은 수성(壽星)이라고도 하며 용골자리 알파별, 카노푸스(Canopus)를 말는데 지금도 제주도 끝자락에 볼 수 있는 수성을 본 사람은 무병장수한다는 말이 있어 이것이 나타났다는 것은 길조로 여겨졌다. 따라서 소식을 들은 의종은 다시금 노인성을 보기 위해 각 지역에 관리를 파견하고 본인이 초제를 지내기도 한다.


'3월 기사일. 지문하성사(知門下省事) 최온(崔溫)을 서경(西京 : 지금의 평양특별시) 노인당(老人堂)으로 보내 제사를 지내게 하고, 우부승선(右副承宣) 임종식(林宗植)은 해주(海州 : 지금의 황해남도 해주시) 상산(床山)에서 노인성(老人星)에 제사를 지내게 했다. 또 전국에 노인당이 있는 곳이면 모두 사자를 보내 제사를 지내게 했다.


4월 초하루 신사일. 왕이 내전(內殿)에서 친히 노인성(老人星)에 초제(醮祭)를 지냈다.'

[네이버 지식백과] 의종 24년(1170) 경인년 (국역 고려사: 세가, 2008. 8. 30.,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지성이면 감천일까.

 얼마 지나지 않아 의종에게 노인성을 보았다는 소식이 전해져 온다.


'4월 갑신일. 충주목부사(忠州牧副使) 최광균(崔光鈞)이, 지난 달 28일에 죽장사(竹杖寺)에서 노인성에 제사를 지냈는데, 그 날 저녁에 수성(壽星 : 노인성)이 나타나더니 술을 석잔 올린 후에 사라졌다고 보고했다. 왕이 크게 기뻐하고 백관들은 하례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의종 24년(1170) 경인년 (국역 고려사: 세가, 2008. 8. 30.,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얼마나 기뻤는지 진관사(眞觀寺) 남쪽에 사당을 짓고 4월 내내 잔치를 열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그런데 서해도 안렴사 박순하, 충주목부사 최광균이 본 것이 노인성이 맞을까?

 무슨 소리, 절대 아니다.

 첫째, 1170년에 노인성, 즉 카노푸스를 개경에서 볼 수 있었을까?

1170년 개경에서 남중했을 때 카노푸스의 모습

 위 그림은 1170년 2월 갑신일(2월 3일(양력 2월 27일)) 저녁, 노인성인 카노푸스가 남중했을 때 모습이다. 가운데 가로로 그어진 흰색 실선이 지평선이다. 즉, 노인성은 지평선 아래에 있기 때문에 관측이 불가능하다.

 둘째, 최광균이 보았던 장소인 충주 죽장사(지금의 석종사)에서는 카노푸스가 보였을까?

1170년 4월 충주에서의 카노푸스

 위 그림은 최광균이 보았다는 기록이 있는 1170년 4월 갑신일(음력 4일, 양력 4월 28일)의 카노푸스의 모습이다. 아주 살짝이지만 지평선 위로 올라와 있는데, 가장 높이 올라왔을 때 고도는 0.5도 가량 된다. 그런데 시각을 보면 오후 3시 44분, 대낮이다. 이 때는 봄이기 때문에 카노푸스가 지평선 위로 뜨고 지는 시각은 낮이었던 것이다. 설령 보인다 쳐도 지표면에서 0.5도밖에 올라오지 않는 노인성을 보려면 장애물이 없는 넓은 평원이어야 한다. 그리고 최광균이 노인성(?)을 보고 술을 세 잔 올리는 잠깐의 시간동안만 빛났었다는 것은 그가 본 노인성이, 노인성이 아닌 다른 천체였을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박순하나 최광균이 의종의 신임을 얻기 위해 벌인 거짓말일 수 있겠지만, 아첨할 수 있는 다른 것도 많은데 굳이 어렵게 노인성을 봤다고 이 난리를 피웠을까 싶다. 그렇다면 이 시기의 남쪽하늘에는 어떤 일이 있었고, 이 때 보았다는 노인성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1170년 4월의 고려사 기록은 친절하게도 수성으로 판단한 별을 관측한 시각과 위치가 정확히 나타나 있다. 관측 날짜는 1170년 음력 3월 28일(양력 4월 23일)이고 위치는 충주 죽장사(지금의 석종사), 그리고 '수성(?)'을 관측한 시각은 저녁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시각과 위치를 한정시켜 주면 후대에 이를 실증할 수 있는 사람 입장에서도 공간을 한정시켜 구체적으로 알아볼 수 있어 바람직하다.

1170년 음력 3월 28일 충주에서 본 남쪽하늘

 기록 상의 저녁이 해가 지고 난 후인 오후 7-9시라고 보았을 때 보일만한 당시의 하늘이다. 이 때는 이미 실제 노인성인 카노푸스는 지고 난 후이며. 남쪽 하늘에는 돛자리(Vela)와 고물자리(Puppis), 나침반자리(Pyxis)등이 자리잡고 있다. 모두 옛 별자리였던 아르고호(Argo Navis) 별자리에서 파생된 별자리들이다.

 이 곳에는 카노푸스(-0.74등급)만큼 밝은 별은 현재 없다. 그렇다면 당시 고려인들이 수성(壽星)이라고 착각했을 밝은 천체는 무엇이었을까?


 1. 돛자리 감마 별 (γ Velorum)


 첫번 째 후보가 될만한 별은 바로 돛자리 감마별이다. 위 그림에서 지평선 바로 위에 있는 'Suhail al Muhlif'라는 별이다. 이 별은 노인성인 카노푸스와 17도 가량 떨어져 위치해 있고 현재 겉보기 등급은 1.75등급으로 남쪽 하늘을 대표하는 밝은 별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물론 카노푸스의 밝기인 -0.74등급보다 어두운 별이지만 이 별은 특이한 점이 있다. 바로 돛자리 감마별을 이루는 별이 최소 6개로 이루어진 다중성계란 점이다.

돛자리 감마별과 카노푸스간의 각거리
돛자리 감마별을 이루는 별들 (출처 : star-facts.com)

 이 중 가장 밝은 별인 돛자리 감마A는 또다시 청색 초거성과 볼프-레이예 별(WR11)이 쌍으로 이루어진 이중성이다. 청색 초거성은 우리 태양의 질량의 30배가량으로 알려져 있고, 볼프-레이예 별은 10배 가량으로 알려져 있는데, 질량 손실이 있기 전에는 40배 가량이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볼프-레이에별은 아주 무거운 질량을 가진 항성의 최종 진화 단계로, 어마어마하게 불어난 외피층을 자신의 강력한 항성풍으로 날려보내어 내핵이 드러난 별이다. 표면 온도는 25,000 K에서 210,000 K에 달한다. 광도는 태양의 15만 배에서 현재까지 발견된 두번째로 밝은 별 R136a1의 경우 태양의 약 6백만배까지 다양하다. 질량 역시 태양의 20배에서 최대 태양의 215배 이상에 달한다. 아직 발견되지는 않았으나 일부 볼프–레이에 별은 이보다도 더 클 수 있다. 수명은 매우 짧은 편이며, 반지름은 중력 때문에 질량에 비해 작다. (출처 : 나무위키) 현재까지 알려진 대표적인 볼프-레이예 별 중 하나가 바로 돛자리 감마 별, WR11이다. 이 별은 태양보다 훨씬 많은 질량(40배 추정)을 가진 청색 초거성에서 가지고 있던 외피층을 날리고 남은 진화 단계인 셈이다. 

 앞으로 수 년 또는 수천 년 이내 초신성 폭발이나 볼프-레이예 별로 진화할 것으로 판단하는 별이 있는데 바로 용골자리 에타(η) 별이다. 남반구 하늘에서 가장 유명한 에타카리나 성운 내에 '호문쿨루스 성운'이

바로 용골자리 에타별이 내뿜는 가스로 만들어졌다. 이 별은 현재 극대거성으로 앞으로 초신성 폭발을 일으킬 지 아니면 돛자리 감마A와 같이 볼프-레이예 별로 진화할 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용골자리 에타는 별의 밝기가 급격하게 밝아졌다가 다시 어두워진 별로도 유명하다. 아래 그림은 관측 천문학이 생긴 이래 관측된 용골자리 에타의 광도 변화이다.

용골자리 에타 별의 밝기 등급 변화 (출처 : 위키피디아)

 유명한 천문학자 애드먼드 헬리가 1677년 이 별을 항성 목록에 수록했을 당시에는 4등성이었는데 1730년 밝아졌다가 1782년에 다시 돌아갔고, 이 후 1843년 -0.8등급까지 밝아진 것이다. 이 밝기는 카노푸스를 뛰어넘어 시리우스 다음으로 밝은 등급이었다. 그러나 이후에는 다시 어두워져서 7등급까지 내려간 적도 있다. 우주의 시간 차원에서 볼때는 매우 짧은 시간동안 별의 밝기가 급격히 변한 것으로 그만큼 불안정한 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는 볼프-레이예 별이 되어 주변으로 가지고 있던 가스를 내뿜은 돛자리 감마별은 볼프-레이예 별이 되는 순간까지는 불과 얼마전 까지만 해도 용골자리 에타별과 같은 거동을 보였을 확률이 매우 높다. 1170년 4월의 밤하늘에서 밝게 빛나던 낭성(狼星)은 바로 볼프-레이예별이 되기 전 용골자리 에타별처럼 불안정하게 타오르던 돛자리 감마 별이 아니었을까?


2. Vela Junior


 1979년 12월 Nature 지에 버지니아 대학의 Rood 연구팀의 논문이 실린다. 제목은 'X- or γ rays from Supernovae in glacial ice', 내용인 즉슨 남극의 얼음에 존재하는 초신성의 X-선 또는 감마선의 흔적에 관한 논문이다. 남극의 빙하는 마치 지층의 퇴적층처럼 얼음층이 서서히 쌓여왔기 때문에 빙하의 얼음을 파내어 각 깊이마다 함유된 여러 성분을 조사하면 과거 얼음이 쌓일 당시 지구의 환경이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남극의 얼음 퇴적층을 채집하는 모습

 우리가 초신성이 폭발하는 모습을 눈으로 직접 관측했다면 폭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가시광선 외에 감마선과 X선 또한 지구에 도달하게 된다. 초신성이나 중성자별의 감마선 폭발은 그 양이 어마어마하여 지구 대멸망 시나리오의 하나가 바로 지구가 중성자별의 감마선 폭발을 만나게 될 때라는 설도 있다. 이러한 감마선을 촉매로 지구의 오존층에서 질소와 산소가 만나 이산화질소를 형성하게 되며 이것이 물에 녹아 질산 이온이 되면 바다의 질산 이온 농도가 급격하게 증가할 것이고 이것이 남극 빙하에 고스란히 담겨 있을 것이라는 것이 이론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Rood 연구진이 얻은 분석 결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남극 빙하 질산 이온 농도와 초신성 관계

 남극 빙하의 깊이에 따른 연대 추정은 약간의 오차가 있지만 통상적으로 볼 때는 위 그림과 같다. 100m 깊이까지 팠을 때 연대는 현대로부터 12세기까지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 빙하로부터 크게 4군데에서 질산 이온의 농도가 급격히 증가한 부분이 있음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각각의 피크는 약 50m 지점의 두 피크가 역사적으로 알려진 초신성 SN1604(케플러 초신성), SN1572(티코브라헤 초신성), 그리고 100m 지점이 SN1181 초신성이 있었을 때의 위치와 정확히 들어맞았다. 문제는 1320년 전후로 파악되는 85m 지점인데, 학자들은 이것이 Vela Junior 초신성 잔해 (Supernova remnant RX J0852.0-4622)의 초신성이 만든 것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

Vela Junior 위치

 Vela Junior 초신성 잔해는 위 그림에서처럼 돛자리 감마별보다 위쪽으로, 돛자리의 거의 가운데 위치한 것을 볼 수 있다. 이 돛자리에는 돛자리 초신성 잔해 (Vela Supernova Remnant)라고 명명된 넓은 초신성 잔해 더미들이 있다. 이 안에 비교적 최근에 초신성 폭발로 인해 생겨난 것으로 보이는 Vela Junior 가 1999년 천문학자 Iyudin 연구팀에 의해 발견되었다. 당시 Vela Junior 의 감마선 관측에서 티타늄-44의 붕괴로 인한 감마선이 검출되었고 이것을 바탕으로 초신성의 폭발이 700-800년 전에 있었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그러나 동서양의 어느 기록에도 당시 초신성 폭발로 보이는 기록이 보이지 않아 초신성 폭발이 정말로 이 때 일어났는지에 대해 학자의 의견이 달라지고 있기도 하다. 심지어 후속 연구에서는 실제 Vela Junior는 2,200년-3,200년, 아니 그 이상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에 대해 최근에 폭발했을 것으로 주장하는 학자인 AschenBach는 2017년 오히려 수학 모델을 업그레이드하여 계산한 결과 730년 전임을 예측하며 이 시기에 해당하는 관측 기록도 존재함을 주장하였다.(링크이를 뒷받침하는 학자는 Wade인데 최근에는 마우리 족의 근원이 Vela Junior 와 관련이 있고, 일본에서는 1271년에 마치 달과 같은 큰 별이 밝게 빛났다는 기록과 그림이 발견되었음을 알렸다.(링크)

 Vela Junior의 초신성 폭발 시기는 아직까지도 의견이 분분한데 최근에 폭발한 것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1250년에서 전후 100년까지로 보고 있다. 하지만 남극 빙하에서 100m 지점의 질산 피크가 SN1181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초신성 폭발은 1181년 이후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용골자리 에타별의 예에서 언급하였지만 극대거성은 자기가 가진 질량에 따라 초신성 폭발을 일으키거나 아니면 돛자리 감마별과 같이 볼프-레이예 별이 되거나 둘 중 하나이기 때문에 Vela Junior 초신성 잔해를 만든 그 별이 실제로 13세기 또는 14세기에 초신성 폭발을 일으키기 직전까지 갑작스럽게 광도 변화를 일으켰다면 이것이 1170년의 낭성은 아니었을까?


 1170년 고려 의종은 수성(壽星), 즉 무병장수의 행운의 별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나 기뻐 잔치를 열고 노동력을 착취하여 사당을 지으며 사치와 향락에 빠졌다. 그리고 어마 지나지 않아 그 해 가을 무신정변을 맞이하며 하루 아침에 거제도로 유배되었고 불과 3년 뒤 이의민에 의해 시해당하고 만다. 돛자리 감마가 되었던 Vela Junior가 되었건 간에 당연한 것은 이 때 당시 남쪽 하늘은 온갖 초신성 잔해들을 머금은

아르고호(Argo Navis)의 별자리가 떠 있었다는 것이다.

 무병장수의 노인성이 아닌 죽어가는 별들의 마지막 숨결이 가득한 곳에다 대고 절을 했으니 아르고호의 선장 이아손이 왕현(의종)을 자기 배에 태우고 간 것만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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