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오면 눈부신 아침 햇살에 비친
그대의 미소가 아름다워요
눈을 감으면 싱그런 바람 가득한
그대의 맑은 숨결이 향기로와요
아침의 공기가 맑고, 차갑다.
길가에는 하나 둘 밟으면 바스락 소리를 내는 낙엽들이 깔려있다.
어느새 나무들도 여름의 푸른빛 대신 가을의 노랗고 붉은빛들로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가을이 오는 것을 느끼고 가장 먼저 이문세 님의 ‘가을이 오면’이 떠오르다니 나도 영락없는 라떼인건가 싶다.. 숨만 쉬어도 헉헉대던, 지독히도 덥고, 힘들었던 여름이 가고 오지 않을 것만 같던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 왔건만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역시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질 수는 없는 것인가. 선선한 가을은 건조함이라는 손을 잡고 함께 우리 곁으로 왔다.
역시 가을이다. 피부가 갈라지기 시작한다. 우리 피부에 이렇게 많은 주름이 생길 수가 있었던가. 새삼 우리 인체에 대해 다시금 놀라게 된다. 아이크림을 여기도 저기도 발라 본다. 다이소에서 인기가 많다는 리들샷도 마구 얹는다. 바를 때 드는 따끔한 느낌쯤이야. 예뻐진다는데, 아니 현상 유지는 시켜 준다는데 이 정도 고통쯤이야 얼마든지 환영이다. 하… 이렇게 로션, 에센스, 크림을 줄줄이 얼굴에 바르고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잠자리에 든다. 내일은 잔주름이 조금 펴지겠지.
어느 날 한참 수다를 떨던 중 친구가
‘어머, 너 목주름이 하나도 없네. 좋겠다.’
그렇다. 나는 운이 좋아서인지 신의 실수인지 신은 나에게 목주름을 주지 않으셨다. 수년 동안 로션을 목까지 꼼꼼히 바른 나의 노력 덕인가. 아무튼 마흔이 넘은 내 목은 얼굴과 달리 탱탱하고 뽀얀 편이다. 하지만 목주름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감사함을 모른 채 당연하다고만 생각했었다. 얼굴의 주름이 있어서 속상한 대신 목주름이 없어 신경 쓰지 않아도 됨을 감사하며 살아야 할 것 아니었을까.
남편과 나의 건강검진날
이른 시간부터 아이 둘을 깨우고 아침을 대충 차려 먹였다. 서둘러 둘째를 씻기고 입혔다. 평소보다 일찍 등원시켜야 검진 예약 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있어 평소보다 더 마음이 급하다. 다행히 큰아이는 아침 식사만 차려주면 혼자서 준비하고 등교할 수 있다. 전날부터 금식으로 인해 몹시 허기진 배를 부여잡고 집을 나선다. 다행히 둘째는 금방 웃으며 유치원으로 들어갔다. 첫째는 알아서 잘 갔겠지. 가는 중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를 걸었다. 아이는 이미 집을 나서 친구와 등교 중이라고 했다. 역시 실망시키지 않는 딸이다.
하지만 요 며칠 난 큰아이 때문에 꽤나 골머리를 썩던 날이었다. 늘 어질러진 방, 벼락치기로 해내는 숙제, 당최 거리가 멀어져 버린 독서 등등 생각하자면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한, 둘이 아니었다.
난 아직까지는 심각하게 관리할 필요 없는 목주름을 가지고 있었고, 스스로 시간 맞춰 등교할 수 있는 딸이 있었다. 그 외에도 한 때 유치원 가는 게 언제 그렇게 힘드냐는 듯 지금은 웃으며 등원하는 둘째가 있고, 은행과 지분을 거의 반반 나누고는 있지만 이자만 꼬박 내면 평생을 편히 살 수 있는 내 집이 있었다. 무뚝뚝해서 극강의 T성향의 남편이 조금만 더 다정다감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늘 가지고 있었는데 생각해 보니 그는 새벽에 동이 트기 전 일어나 누구보다 먼저 성실하게 출근을 하고 있었고, 주말이면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다정다감하지 못한 남편과, 자신의 일에 빠릿빠릿하지 못한 아이들, 치워도 치워도 너저분한 것 같은 집, 그리고 내 나이를 실감시켜 주는 얼굴의 주름들.
모두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다.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한참을 아쉽고, 좋은 면만 보자 하면 또 이렇게 내가 다 가질 수도 있었나 싶게 감사할 따름이다. 분명 똑같은 것이고, 똑같은 사람인데 어찌 이렇게 내가 느끼는 감정은 이렇게 달라질 수 있을까.
글을 쓰고 있는 중에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동료들과 저녁을 먹고 들어오겠다고. 이럴 때는 술을 먹고 오니 화를 내야 할까 아니면 저녁을 해결하고 들어오니 고맙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건조한 날씨 때문에 반갑지 않은 자글자글 주름이라는 손님이 함께 찾아왔지만, 선선한 가을 바람이 참 고마운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