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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나 Oct 11. 2024

T라 미숙해...

티라미수케이크 마치...

(지난여름에 써 두었던 글을 게으름으로 이제야 올려봅니다.)


여름이다. 그리고 환영하지는 않았지만 여름 방학이다. 여름 방학 주말에 뭔가 하긴 해야 한다. 그래야 개학하고 난 후 아이가 유치원에서 뭔가 할 말이 생길 테니까. 이럴 때 게으른 뚜벅이 엄마는 참 미안하다. 부지런한 엄마 같았으면 체험장이든, 박물관이든 어디든 떠났읕 텐데 불쌍한 우리 둘째는 자의 반 타의 반 붙박이다. 집 붙박이. 하지만 절호의 찬스가 왔다. 방학에 맞춰 개봉한, 어린이들은 특히 여아들은 환호하고, 엄마, 아빠들은 경악할 만한 바로 그것. 티니핑 영화 말이다.

우리 집 천둥벌거숭이 같은 7세 남아는 남아들이 자동차파나, 공룡 파냐라고 나뉠 때 평화주의자 파였다. 악당을 물리치는 만화영화는 멀리했고, 로봇 장난감을 들이밀 때면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 만난 것이 티니핑이다. 주인공 로미와 하츄핑이 힘을 합쳐 새로운 티니핑을 캐치하고, 어질러진 마을을 정리하고 있는 모습을 몇 시간이고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애가 저래도 되나… 걱정이 앞서긴 했지만 뭐.. 아직 유치원 생이고.. 남녀평등시대 아닌가. 만화의 기호에 남녀가 어디있겠으며 평화로운 것을 좋아한다는데 말릴 수는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행인 것은 굿즈를 사달라고 조르지 않았다는 것. 요즘 티니핑의 또 다른 별명.. 바로 파산핑 아니었던가. 티니핑의 집, 학교, 병원.. 게다가 종류별로 나오는 티니핑까지… 부모들의 지갑을 파산으로 이르게 하는 바로 그것. 굿즈를 사달라고 조르지 않는 것이야말로 우리 아이는 큰 효도를 하고 있었다.

어쨌든. 


개봉하기 전부터 광고를 본 우리 둘째는 영화관에 언제 가냐고 매일 묻더니 영화관 가는 날은 아침부터 설레었는지 빨리 가자고 재촉이다. 역시 방학이다. 영화관에는 아이들로, 아이들을 데리고 온 어른들로 북적였다. 괜히 마음이 들뜬다. 음료수, 팝콘까지 준비 완료다. 상영관에 자리를 잡고 보니 역시 여아들로 북적였다. 내년이면 입학할 유딩 남아인데 화면에 티니핑이 나오자 표정이 한껏 상기되었다. 아무리 남녀평등시대고 유니섹스시대라고 하지만 온통 핑크로 도배된 하츄핑을 보며 신나 하는 아이의 표정을 보니 남자아이인데 이래도 되나 싶은 마음 반, 남자는 핑크 아닌가!라는 마음 반이다. 그래.. 네가 행복하면 되었다.




영화는 티브이에서 방영하는 하츄핑의 프리퀄이다. 주인공 로미 공주가 어떻게 짝꿍인 하츄핑을 만나게 되었는지 그 여정을 그린  내용. 10살인데 짝꿍 티니핑을 찾아 집을 떠난다. 거기에서부터 소문자 t인 이 어미의 마음은 찜찜해지기 시작했다. 하츄핑을 찾아 모험을 떠나는 10살 로미. 게다가 로미의 할머니는 로미가 혼자 떠나는 이 모험을 지지해 준다. 엇! 미성년자 아동인데, 게다가 10살짜리 아이가 혼자 집을 나가게 하는데 그냥 둔다고? 게다가 응원해 준다고? 어미는 1차로 놀랐다. 


그다음. 로미가 하추핑이 있는 마을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이윽고 버스는 여느 만화에서처럼 하늘을 붕 난다. 역시 도로로만 가기에는 교통체증이 너무 심하지. 이리저리 하늘을 날고 있는 동안 비가 오고, 천둥이 친다. 버스가 이리저리 휘청 거린다. 엇! 버스 안의 로미를 보니 안전벨트를 하지 않았다. 벨트를 하지 않으면 위험해. 자칫 아이들이 따라 하면 어떡하나. 어차피 하늘을 날아다니는 버스 자체가 없으니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나? 


하추핑을 만나러 간 마을에서 로미는 새 친구를 마리를 만난다. 그 친구 집에서 밥도 얻어먹고 잠도 자고,.. 그런데 어랏. 아무리 봐도 친구의 부모님들이 안 보인다. 잠시 아이 두고 일을 나가셨겠지. 다음 장면에서는 짠 하고 나타나서 로미와 마리를 돌봐주시지 않을까? 

그런데 아무리 장면이 지나가도 마리의 부모님은 나타나지 않는다. 엄마, 아빠는커녕 할아버지, 할머니도 안 보이고 심지어 이웃에도 어른이 하나 없다. 이렇게 외딴곳에 초딩 아이 혼자 산다고? 이렇게 또 만화 속으로 빠져들지 못하고 잘못된 점만 하나씩 집고 있었다.


역시 아이들과 나의 차이인지… 로미가 하늘을 날아 악당을 물리치고, 흑화 된 트로핑이 나타나자 극장 속 아이들은 하나둘씩 울기 시작했다. 내 옆에 꼭 붙어있던 우리 집 귀요미도 손에 쥔 팝콘을 놓지 못한 채 얼굴을 나에게 파묻으며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악당이 아직 로미를 괴롭힌 것도 아니다. 나타나기만 했을 뿐인데 저 존재만으로 벌써 무섭다고? 역시 아이들답다. 상상이 풍부해서 그런가. 나만 너무 영화에 이입하지 못하는 것인가.

아이들의 영웅 하츄핑과 흑화 돼버린 트로핑 by NAVER

아이의 팝콘을 하나씩 몰래 맛보고, 라뗴를 홀짝이다 보니 어느새 이야기는 절정에 다다랐다. 인간에게 배신당하고 흑화 한 트로핑이 짓을 하면 할수록 아이는 얼굴을 더 내 품에 파 묻었다. 하나둘씩 영화관을 떠나는 아이들도 생겼다. 무섭다며 울었을 아이들을 생각하니 역시 귀엽다. 그러다 어느새 영화가 끝났다. 다행히 아이는 재미있었다며 엄지 척을 올려준다. 어미로서 의무를 다 한 것 같아 뿌듯한 순간이다.  동시에 불현듯 언제부터 나는 감정이 사그라든 인간이 되었나 생각이 들었다. 만화를 만화로 즐기지 못하고 현실에 대입해서 안 되는 것만 찾아대는지. 이 만화 영화 한 편으로 아이들은 꿈과 희망을 잔뜩 얻었을 것이다. 순간 로미가 되기도, 하츄핑이 되기도 하면서 악당을 물리치고, 그 높은 성의 계단을 뛰어갔을 것이다. 비록 영화관 의자에, 혹은 엄마 무릎에 앉아 있지만 그 순간만큼은 에너지를 많이 쏟기도, 수많은 악당들 틈에서 두려움에 떨기도 했을 것이다. 


아이들과는 또 다른 의미로 대한민국의 부모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이 하츄핑 영화가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고 한다. 아이들이 부모와 같이 왔을 테니 대략 50만의 로미와 하츄핑들이 열심히 상상의 나래를 달고 모험을 떠나는 동안 나는 이 영화가 얼마나 사실과 동떨어진 것인지를 분석하고 있었다. 현실과 얼마나 동떨어졌나, 혹여나 아이들이 따라 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만으로 러닝타임을 보내고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나니 내 모습이 뭔가 우습다. 분명 나도 어렸을 때 극장에서 처음 피터팬이라는 영화를 보며 피터팬이 되기도, 팅커벨이 되기도 했다. 영화 속에서 나온 그 크림이 가득한 음식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영화 더 후크 by NAVER


아이러니하게도 이제 나는 우리 아이들의 상상력을 더 키워주기 위해 내 상상력은 조금 더 접어 두고 현실에 더 집중하며 살았던 것 같다. 하지만 아이와 영화를 같이 보던 그 시간만큼은 나도 함께 로미가 되었으면 어땠을까. 많은 어른들이 함께 보고 감동을 했다던데 어느새 T에 가까워져 버린 난 눈물 한 방울이 나오지 않았다. 다음번에는 잠시 T는 내려놓고 아이와 함께 주인공이 되어봐야지.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마음껏 하늘을 날고, 모험을 해 봐야지. 


엄마가 잠시 티라미수케이크.. 아니 T라 미숙해서 영화에 집중하지 못했던 것 미안. 


그리고 또 하나

여아들을 키우고 있는 부모님들이여. 더 무서운 소식을 하나 전하자면… 곧 있으면 티니핑 시즌5가 나온다던데…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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