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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남자인 아빠도 정이 들어버렸어

반려동물은 책임을 끝까지!

by 필명이오


“우리 ㅇㅇ(둘째냥 이름 앞글자 두 번)! 누나 3일 동안 집에 없어서 어떡해. 누나 가방에 쏘옥 넣어 갈까요? 기차 타고 서울 갈까요?”


“아, 저 꼬라지 3일은 안 봐도 돼서 내 속이 시원하다. ‘걔방예 쬭 너가까요’ 같은 소리 하네.”


“우리 애정 표현인데 왜 비꼬고 그래.”


“니랑 고새끼들 그럴 때마다 속이 부대낀다. 내 출근하고 느그끼리 있을 때만 해라.”


“엄마도 가방에 쏘옥 넣어 갈까요?”


“저리 꺼져.”



외삼촌 No.4의 집에 머물며 어떻게 관리해야 아빠가 알레르기로 고생을 덜 할지 논의했다.(‘사람 셋, 고양이 셋, 공기청정기 셋’ 글에 나와있듯이, 삼촌은 버스기사를 하고 있으며, 결혼하면서 숙모가 20대부터 키우던 고양이의 집사가 되었다. 지금은 그 고양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넜고,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숙모, 혹시 주변에 알레르기 있는데 고양이 키우는 사람 보셨어요?”


“어, 직접 본 적은 없고. 인터넷에 고양이 카페에서 많이 봤어.”


“아빠가 기침 때문에 집에서 잠을 못 주무실 정돈데, 그 사람들은 어떻게 키워요?”


“보통 털을 다 밀던데? 그렇게라도 해야 털이 안 날리니까.”


“아… 보기 안 좋더라도 밀어야겠네요. 아빠가 너무 힘들어하니까. 아빠 출근 못 한 날에 삼촌하고 얘기했는데 세 마리 다 회사로 옮길 생각까지 하고 있어요. 근데 아빠가 집에 두라고 해서 문제죠.”


최근 새 아파트에 입주할 때부터 맞춘 타일식 아기 매트에 누워 폰 게임을 하던 삼촌이 말했다.


“그니까 그게 왜 그러냐면, 매형도 고양이들이 집에 살면서 회사에 있을 때보다 정이 더 많이 든 거야. 그리고 딸이 고양이를 너무 좋아하니까 그냥 본인이 참는 거야. 매형 몸을 생각하면 빨리 옮기긴 해야 돼. 내가 처음부터 얘기했잖아. 반려동물은 엄~청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라고. 누나가 반대할 때부터 너네 집에서 동물은 절대 시작해선 안 됐어. 너 혼자 사는 자취방이었으면 스스로 다 했다고 쳐도, 지금은 엄마 아빠랑 다 같이 살잖아.”


“맞아. 형님이 집안일 많이 하시니까. 안 된다고 반대하신 이유가 되지. 원래 집에서 한 사람이라도 반대하면 데려오면 안 돼. 엄마는 요즘 고양이들 어떻게 생각하셔?”


“옛날부터 엄마도 영상으로 보는 건 즐기는데, 집에서 직접 키우는 건 절대 안 된다고 했거든요. 근데 요즘은 엄마가 애들 때문에 집안일이 힘들긴 해도 예쁘니까 만지고 해요. 특히 성격 좋은 막내를 예뻐하죠. 아빠도 그렇고. 아빠는 고양이들이 싫어하든 말든 막내만 보면 번쩍번쩍 들어서 안고, 나중에 기침하니까 엄마가 걱정하죠. 저는 솔직히 엄마 아빠 출근하면 그냥 청소해 놓고 제 할 일 하면 되지만, 엄마는 일하는데 옆에서 아빠가 기침하면 계속 신경 쓰이니까 엄마가 아빠 못지않게 힘들죠.”


(모두의 최애 막내. 넓은 현장 생활이 그리울까 비싼 캣휠을 사줬더니 잘 안 쓴다.)


“누나는 니가 집안일해 놓은 게 10%도 안 된다고 느낄 거야. 니 나름대로 잘했겠지만, 고양이가 집에 온 순간부터 환경이 확 달라지잖아. 청소를 해도 해도 끝이 없다고. 누나는 매형이랑 24시간 같이 있는데 잘 때도 얼마나 기침에 신경 쓰겠어.”


“나는 연초부터 애들 옮기려고 마음의 준비를 했는데, 우리 아빠 고집을 누가 말릴 수 있겠어. 우리 엄마는 이제 ㅇ씨라면 상종도 하기 싫대요. 고양이한테 질리게 당했다고 고양이라고 안 불러. 밥 값도 못하는 것, 밥만 축내는 것, 고새끼들… 뭐 많아.”


“하하하, 형님이 욕을 할 줄 아셔? 나는 처음 뵀을 때부터 차분한 분이신 줄 알았는데.”


“엄마는 저랑 비슷하게 사람들 사이에서 소극적이고 조용한데, 진입장벽만 넘으면 재밌어요.”


“누나가 알고 보면 장난기가 많아. 근데 저건 진심인 것 같아. 누나가 대학병원 다닐 만큼 몸도 안 좋은데 그만큼 고양이들 때문에 지쳤어.”


“나도 우리 ㅇㅇ(숙모의 16살 노묘) 무지개다리 건넌 지 몇 년째인데, 아직까지도 뭐 살 때 ‘이건 고양이털 안 빠지겠다. 청소하기 힘들겠네.’라고 생각해. 형님은 지금 셋이나 되니까 그만큼 생각이 많으실 거야.”


(저 시트는 고양이 털이 정말 잘 박힌다.)


며칠 전에 거래처 회장님께서 감사하게도 호텔 뷔페를 대접해 주셔서 다녀왔다. 나는 평소에 밥을 따로 챙겨 먹으니 오랜만에 다 같이 식사했다.


“아빠, 몸이 그렇게 힘든데 고양이들 회사로 안 옮기고 싶은 이유가 따로 있어?”


“책임져야지. 집에서 계속 키울 거야.”


“회사에서 키워도 우리가 책임지는 거는 맞잖아.”


“현장이 너무 추워서 절대 안 돼. 위험해.”


(집사야, 보일러가 뜨끈해서 좋다옹)


“삼촌(외삼촌 No.4) 말로는 그런 것도 다 적응한대. 원래 그렇게 큰 애들이잖아.”


“지금보다 더 좋은 건물로 옮기고 나면 모를까, 지금 건물이 너무 오래돼서 안 돼. 우리 야옹이들 끝까지 책임 질 거야.”


하긴 예전 건물은 이 업계의 용도에 맞게 설계한 신축이었고, 지금 건물은 옛날부터 쓰던 구축 중의 구축이긴 하다. 근데 엄마 아빠가 출근하면 현장에 놔둔 의자에 모르는 길고양이가 자고 있다가 깜짝 놀라 도망가는 걸 자주 봤다. 그러니 아예 고양이들이 살 수 없는 환경은 아니다.


(이런 아기도 낳고 간 걸 직원분들이 발견하셨다. 어미가 어디로 데려갔는지 이후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세 마리만으로 벅차서 못 키워주니 알아서 살아가렴.)


엄마가 음식을 가지고 자리로 돌아왔다.


“엄마, 아빠가 고양이들 옮길 생각 없다는데?”


“… 응~ 아직 살만한 갑제. 있어 봐라. 정말 버티기 힘들면 옮기겠지.”


아빠는 잠깐 음식을 가지러 갔다. 회장님께서 와인도 선물로 챙겨 주셨다. 그 자리에서 더 마셔도 된다고 하셨는데, 아빠가 몸이 안 좋아진 이후로 술을 입에도 못 댔다.


“아빠 며칠 전 회식 때도 술 못 마셨어?”


“어. 꽤 됐다.”


“그럼 어떡해?”


“뭐… 콜라 한 잔? 에휴, 담배를 안 펴야 될 낀데. 저래 기침하면서 피우고 싶을까.”


“그만큼 니코틴 중독성이 강하지. 담배는 못 끊는다. 고양이들을 회사로 옮겨야지.”


“니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마라.”


“진짠데…”



나 말고 다른 고양이가 찾아왔냥?



잠이 확 깬다옹



내 입지가 위험하다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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