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이 소년일 때 “KID A”를 들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소년에게 함부로 라디오 헤드를 주어선 안 된다.
‘네가 행복할 때는 음악을 즐기지만, 네가 슬플 때는 가사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라는 말을 프랭크 오션이 했다고 한다. 인터넷에서 떠다니는 사진으로 봤기 때문에 오션이 실제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잘 모르지만, 이 문장은 내 머릿속에 꽤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내 상황에 따라 늘 듣던 노래의 가사가 가슴에 꽂힐 때가 있다. 분명 멜로디가 좋아서 들은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최근 나에게는 라디오헤드의 노래가 그랬다. 그렇게 내 상황을 되돌아보게 되었고, 조금은 안도했다. 지금 나에게 라디오 헤드의 가사에 과몰입하더라도, 그렇게까지 우울하지 않으니까. 라디오헤드의 음악은 허무하고 모호하다. 그리고 공허하다. 어설프고 약한 자아를 가지고 있던 사춘기 시절 톰 요크의 가사에 몰입하였다면, 나는 아마 우울한 소년기를 보냈을지도 모른다. 대단히 우울한 소년기를 보낸 것은 아니지만 나는 예민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었고, 소년들이라면 으레 겪는 우울함 또한 나에게는 더 크게 다가왔었다.
그리고 그들의 공허함은 연약한 자아를 가진 소년을 끌어들이기에 충분히 매력적이니까.
다행히도 나는 15살쯤 라디오 헤드가 아닌 힙합에 빠졌다. 힙합의 셀프 메이드 정신을 동경했고, 나도 그렇게 되길 바랐다. 그들의 단순 무식한 정신. 내가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한다면 이루어질 것이라는 소년에게 긍정적인 마음을 불어넣을 수 있는 그 정신을 힙합으로부터 배웠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 세뱃돈을 받으면 슈프림을 사기 위해 빈티지 샵을 기웃거렸으며 용돈을 모아 나이키 매장에서 새하얀 에어포스를 구매하여 신고 다녔다.
그리고 지금 생각하면 그 맘 때쯤 힙합에 빠지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한 번쯤 힙합에 빠지는 시기가 오는데, 그 시기가 사춘기와 맞물려 준다면 제일 좋다고 생각한다. 이때는 OK computer 보다 마샬 맨더슨 엘피의 18 트랙이 마음에 꽂혀야 한다.
26살이 된 지금은 라디오헤드를 좋아한다. 톰 요크와 조니 그린우드가 함께하는 더 스마일도 아주 좋아한다. 나 같은 사람을 위해 한 노래는 아니겠지만, Creep을 들으며 찌질한 짝사랑을 하지 않는, 15살의 소년을 벗어난 지금이라면 충분히 즐겨도 된다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