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아홉 번째 장 ( crush on you )
인정할게
그래, 나 반했어.
아주 홀딱
너한테 반했어.
또다 또
또 네가 보고싶어
또
왜 자꾸 생각나는거야
왜 자꾸 보고싶은건지
괴로워
자꾸만 내가 천년의 사랑이라도 하는 것처럼 만들어, 네가
오늘의 네 생각은
네가 나한테 처음 적극적으로 인사했을 때 말이야.
우리가 세 번째로 본 날이었던가?
오늘은 주말 작업하다 말고 문득 그때 네 얼굴이 생각났어.
있잖아, 그 날 너가 굉장히 힘주고 왔던 날.
머리 염색하고 음... 그 다음은 말 못하겠다.
네가 특정될까봐.
난 그때는, 그날따라 네가 왜 밝고 적극적으로 인사를 건네는지 의문이었거든.
그래서 어정쩡하게 인사를 받아주었단 말이야.
솔직히 그때는 너한테 관심이 없었어서
' 갑자기 왜저러지? ' 생각했어. 미안.
그때의 너는 나에게 기대하는 반응이 있었는지
나의 건조한 반응에 실망한 얼굴이 역력했었거든.
나는 그것도 의문이었단 말이야.
왜 갑자기 표정이 어두워진건지.
복도에서 잠깐 스치며 나누었던 인사라,
세 번째 본 사람이라 왜그러냐고 물어보기도 애매했어.
근데 이제는 알겠어서 문득 웃음이 났어.
네 달라진 점을 내가 알아주길 바랐던건지
예뻐진 네 모습에 내가 반하길 바랐던건지
이제는 조금 알겠거든.
이제는 말 할려고.
내일 말이야
흑발이 잘 어울린다고
혹시 머리 잘랐냐고
예쁘다고
나 너한테 지금 관심표현 하는거라고
그렇게 말해줄려고.
그러니까 실망하지 말아줄래.
내가 다가갈 준비가 된 것 같거든.
흑발
네가 왜 갑자기 흑발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나를 따라서 흑발을 했다고 생각하고 싶어.
내가 흑발을 했을 때 그 공간의 사람들이 관심을 많이 가졌잖아.
무슨 심경의 변화냐고. 왜 흑발한거냐고. 앞머리도 잘랐냐고
온갖 질문세례를 받았었던 거 너도 알지. 네 시선 그때도 느껴졌는데.
그러고나서 다음번에 우리가 볼 수 있는 요일이 되었어.
회의를 하다말고 잠깐 쉴 때 문을 열고 나왔는데 네 뒷모습이 보였어.
모자를 썼지만 흑발인게 보였거든.
내 직감이 그때 뭐라고 했는지 아니.
' 아, 나 때문에 흑발한거다. '
그 직감이 든 이후 내가 또 설레버려서
곧바로 뒤돌아서 나를 본 너한테 먼저 인사를 못건넸어
너도 그때는 내가 한참 널 피한다는 걸 알았는지
내가 인사를 받지 않을 것 같으면 묵묵히 쳐다만 보더라. 미안.
나는 너를 알게된 후 착각이라는 단어를 습관처럼 경계하게 되었어.
아니라고 네가 말해주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예뻤어
근데 나는 네가 금발이었을 때 말이야.
' 콩깍지가 씌인다는게 이런건가? ' 했던 날이 있었거든.
내가 너에게 설레던 이유는
그러니까
내가 너를 좋아하게된 이유는
네 외모보다는, 네 눈빛과 행동들이었거든.
네 외모에 대해서는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단 말이야.
근데 네가 검은색 모자를 쓰고 왔던 날.
네가 열심히 일 하느라 땀을 흘렸던 날.
네가 도저히 안되겠는지 설명을 하다말고 모자를 벗고 머리를 정리하던 때에.
땀에 젖은 연노란색 앞머리가 참 예뻤거든.
그 모습이 아주 느리게 보였거든.
이거... 콩깍지 씌인 거 맞지.
나는 솔직히 슬로우모션처럼 보였다는 말 안믿었거든.
단기기억에서 장기기억으로 넘어가는 불확실한 과정에서
그 당시에 느리게 본거라고 뇌가 착각하는 거라 생각해왔거든.
사람은 믿고 싶은 대로 보는 경향이 있잖아.
그래서 슬로우모션이 걸린듯했다는 표현은 문학에서나 존재하는 줄 알았거든.
근데 아니라는 걸 널 보고 알았지 뭐야.
정말로 네가 슬로우모션으로 보이더라고.
내 오류를 네가 단박에 부숴버린거야.
그때 네가 참 예뻤다고 말해주고 싶은데
네가 안 믿을 것 같지만,
이 말 한마디만 건넬 수 있다면
더 바랄게 없을 것 같은 기분이야.
나 진짜
너 좋아하나 봐.
그런 건가 봐.
이제야 좋아해서 미안.
늦어서 진짜 미안.
아주 늦은 건 아니길 간절히 바라.
어떻게 해주길 바라
가끔은 말이야
울컥할 때가 있거든
답을 모르겠어서
네가 원하는게 있는 건 분명해보이는데
내가 뭘 해주면 되는지
네가 바라는 반응이 어떤건지
나한테 조금 더 확실한 힌트를 주었으면 좋겠거든
이제 너 혼자서 하게 안 할 테니까
알려주면 안될까
알려주고 싶은데...
이제 조심하지 않아도 된다고
나 안 도망간다고
알려주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어
네가 읽으면 경악할지도 모를 만큼
진심이 되어버렸어.
미안.
조금 무섭다
네가 다른 이유로 거절해버릴까봐.
그만큼 널 좋아한다는 거 아는데
양방향이라는 이유만으로는 부족해서
거절당해버릴까봐 무서워.
근데 더 무서운 건 널 못 보는 거니까
지금 이대로 만족하는게 맞을 수도 있겠다 싶거든.
적어도 널 볼 수는 있으니까.
정말 만일에 만일에 만일에 말이야,
이 모든게 다 내 착각일 수도 있잖아.
좋아해.
안녕. 나 너 좋아해.
많이 좋아해, 너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