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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하노이 Dec 08. 2023

어떤 사람들이 해외주재원으로 선발되나

[서울의 겨울] 인사팀에서 걸려온 한통의 전화




영업 2팀 이수민 과장님 맞으시죠?
인사팀 김정인 과장입니다.




수민은 거래처들의 밤낮 없는 전화와 

상사의 실적압박에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한 겨울 불어 닥친 거센 눈보라를 

맨몸으로 맞고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수민은 그저 누군가 자신을 구원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왔다. 


악성거래처의 전화가 끊기기 무섭게 

익숙한 듯 낯선 번호로 전화가 들어왔다.

인사팀이었다.




이번에 베트남 하노이로 이동하실 것 같아요.
지원하신 내용을 검토로 선정이 됐어요.




수민은 갑자기 심장이 쿵쾅거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구원자







등장인물 소개 [수민]
89년생 여자, 입사 10년 차 빅스퀘어 상사의 과장
인생이 오늘과 내일이 똑같은 그저 그런 시시한 직장인으로 굴러가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인생이 만족스럽지 않다.
마음속에 늘 경험해 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을 품고 있다. 파랑새 증후군 말기. 
그녀에게는 탈출구가 필요하다!




'간절한 나의 바람을 그가 들었음이 분명하다'

묻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애써 태연하게 전화를 끊었다.



수민은 최근 3년간 계속해서 

사내 해외주재원 모집에 도전해 왔지만

주재원은커녕 해외영업팀에서의 근무 기회도 

잡지를 못했다.

그저 국내 영업팀의 '과장 1' 정도로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 없는 생활을 계속해왔다.


그런데 수년만에 어떻게 수민은 

인사팀의 연락을 받았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주재원으로 나간 직원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었다.


첫째, 해외에 살았던 경험이 있거나 

그를 능가하는 외국어 실력이 있어야 한다.

(전공이 외국어이면 선발에 더욱 명분을 더한다.)

가만 보면, 수민의 동기 중 유년시절 가족을 따라 

해외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구매팀 재형은 

본인이 가고 싶어 하지 않음에도 

계속해서 인사팀의 러브콜을 받았고 

결국 주재원 대신 해외영업팀으로 가는 것으로 

극적 타협을 보았다.


사실 그 흔한 어학연수 한 번 다녀오지 않고 

오직 한국에서만 살아온 수민에게

지금까지 기회가 없었던 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구직 시절 강남 유명 영어학원 해*스 새벽반에서 만든 

800점대 토익점수는

해외주재원 선발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

주재원을 희망하는 사람 중에서 

그 정도 영어 하는 사람들은 널리고 널렸기 때문이다.  


작년에 일본으로 주재원을 나간 회계팀의 상민 선배는

전공이 일본어학과로 일어로 

최소한의 의사소통이 가능한 유일한 회계직원이었기에

그 희소성으로 선발이 될 수 있었다.


몇 년 전 수민은 과장진급에 계속해서 누락하면서 

높은 어학성적을 받으면 승진 가점을 준다는 얘기에

구직시절에도 하지 않았던 개인과외까지 받게 되었고 

뜻밖에 토익 만점을 받게 되었다.

덕분에 승진도 하였고 주재원 선발에도 

이 부분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둘째, 해외에서 쉽게 그만둘 것 같지 않은 직원을 보낸다.

아무리 주재원이 '상사의 꽃'이라고 해도

막상 현실은 기대와 많이 다르기 때문에

2~3년에 한 번 부적응하는 해외주재원이 

꼭 한 명씩 나타나며 조기귀국을 요청하곤 한다.

이것은 회사의 입장에서 매우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주재원을 선발하여 교육을 시키고 비자를 발급받고

정상적인 주거와 업무환경을 세팅하기까지

최소한 6개월에서 1년 가까이의 시간이 소요되며

해외에 나간 주재원이 

현지 직원과 업무에 적응하는 데에도

최소 3개월 이상이 걸린다.


그런데 그렇게 공들여 보낸 직원이 

갑작스럽게 귀국을 요청한다면?


회사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이며

예고치 않은 요청에 추가로 비용과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리스크 때문인지 

해외에 적응하지 못해 조기귀국한 

마케팅팀 주현민 대리는

3년이 넘도록 진급을 하지 못하고 있다.


수민은 지난 몇 년간 굴하지 않고 

주재원 공모에 지원해 온 점,

그 과정에서 필요한 역량(외국어) 키워온 점, 

아직까지 미혼에,

향후에도 조기귀국에 영향을 미칠 만한 

특별한 개인 대소사(결혼, 육아 등)가 없다는 점 등을 

지원동기에 충분히 어필을 하였고

공교롭게 이번에 영업 파트의 주재원 공고가 나면서 

선발이 될 수 있었다.



인사팀의 전화를 끊자마자 

다시 악성거래처의 전화가 들어왔지만

이제 수민에게는 어떠한 타격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수민은 누구보다 밝고 경쾌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네 빅스퀘어 상사 이수민입니다









《간절한 나의 바람을 그가 들었음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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